2. 외화표시 손해액의 환산시기
가. 외화채권의 환산시기
당사자간에 지급통화나 적용환율에 관해 약정을 하는 경우에 그 약정은 유효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우리나라 법원은 운임, 체선료 등과 같이 외화로 지급키로 한 약정이 있는 경우 외화청구를 허용하되 이를 한화로 환산해 청구하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고 이 경우 변론종결시의 환율에 의해 환산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 환율은 전신환매도율이 아닌 매매기준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1991년 3월12일 선고 90다2147 전원합의체판결에서 “채권액이 외국통화로 지정된 금전채권인 외화채권을 채무자가 우리나라 통화로 변제함에 있어서는 민법 제378조가 그 환산시기에 관해 외화채권에 관한 같은 법 제376조, 제377조 제2항의 “변제기”라는 표현과는 다르게 “지급할 때”라고 규정한 취지에서 새겨 볼 때 그 환산시기는 이행기가 아니라 현실로 이행하는 때 즉 현실이행시의 외국환시세에 의해 환산한 우리나라 통화로 변제해야 한다고 풀이함이 상당하므로 채권자가 위와 같은 외화채권을 대용급부의 권리를 행사해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해 청구하는 경우에도 법원이 채무자에게 그 이행을 명함에 있어서는 채무자가 현실로 이행할 때에 가장 가까운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의 외국환 시세를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하는 기준시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고 판시한 이래 계속 같은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대법원 2007년 4월12일 선고 2006다72765 판결, 대법원 2008년 7월10일 선고 2008다9891 판결 등).
한편, 위 90다2147 전원합의체판결의 소수의견은 청구시를 환산시기로 잡아야 한다고 하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민법은 제378조에서 외국통화의 채무자에게 우리나라 통화로 변제할 수 있는 이른바 대용권을 인정하면서도 채권자에게는 그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채무자에게만 임의채권으로서의 대용권을 인정하고 있는 우리나라 민법 체계에서는 채권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래의 급부목적인 외국통화의 지급만을 청구할 수 밖에 없으며, 가사 이 사건에서와 같이 원심에서 원고가 청구한 대로 우리나라 화폐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이 선고되고 이에 대한 피고의 상고가 없어 우리나라 통화에 의한 청구를 용인할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민법 제378조가 정한 그 환산시기는 재판상의 청구와 재판외의 청구를 가릴 것 없이 현실지급시로 보아야 하되 이는 같은 법조에 의해 채무자가 대용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그렇다는 것에 그치므로 이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원고가 그 급부의 목적인 외국통화의 지급을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나라 통화에 의한 지급을 구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378조에 의할 것이 아니라 “청구할 때”를 환산 시기로 잡는 것이 옳다.”
나. 외화표시 손해액의 환산시기
우리나라 대법원은 외화표시 손해액(손해배상청구채권)의 환산시기에 관해, 외화채권의 환산시기에 대한 위 대법원 판결과는 달리, “미 달러화로 표시된 그 시가를 멸실 당시의 외국환 시세에 의해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한 금액이 그 멸실 당시의 가액이 되는 것이고, 한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방법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763조, 제394조 소정의 “금전”이라 함은 우리나라의 통화를 가리키는 것이어서 불법행위로 인한 시가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채권은 당사자가 외국통화로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액이 외국통화로 지정된 외화채권이라 할 수 없으며, 미 달러화로 표시된 위 시가를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함에 있어서는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준환율에 의해 환산함이 상당하고 대고객 전신환매도율에 의하거나 대고객 전신환매입율에 의해 환산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5년 9월15일 선고 94다61120 판결, 대법원 1997년 5월9일 선고 96다48688 판결).
즉, 우리나라 법원은 위와 같은 외화지급약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에는 외화청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므로 채권자로서는 설사 동 손해가 외국에서 발생했고 외화로 지급됐다 하더라도 손해액을 국내통화로 환산해 국내통화로 지급청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있으며, 이 경우 외화로 발생한 손해액의 환산시기에 관해 이행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견해, 현실의 지급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견해,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할 것이라는 견해 등이 나뉘어 지나, 위 대법원 판결들은 이행기설에 입각해 손해발생시점의 환율에 따라 손해액을 한화로 환산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해배상은 채무불이행(default)시가 아닌 지급(payment)시의 환율에 의한다는 것이 세계 각국의 판결이며, IMF사태로 인해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있었던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채권자가 사실상 실손해의 대부분을 전보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야기했다. 따라서, 필자의 사견으로는 이 경우에도 지급시 또는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 외화표시 손해액의 외화지급청구의 허용 여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운임, 체선료 등 외화로 지급키로 하는 약정이 있는 외화채권에 대해는 외화지급청구를 허용하고 있으나, 외화지급약정이 없이 계약위반이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달러 등 외화로 청구할 수 없고 국내통화로 지급청구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관해 우리나라 민법은 제377조 및 378조에 외국금전채권에 관해 규정하고 있을 뿐 손해배상을 외화로 지급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는 침묵하고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외국에서는 손해액은 원고의 손해를 가장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통화에 의해 평가돼야 하므로 그 통화가 외국통화일 때에는 손해배상은 당해 외국통화에 의해야 하고 그 통화는 통상 원고가 소비하리라고 예상되는 통화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손해의 충실한 전보라는 배상원칙 및 외국통화의 가치의 계산단위로서의 기능 등에 비추어 볼 때 외화로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라.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이 사건은 계약위반 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이므로 그 청구채권이 외화채권이 아니며, 따라서 외화채권의 환산시기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그 적용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외화채권의 환산시기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에 기초해 변론종결시의 환율을 적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에 관한 종래의 대법원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물론 외화표시 손해액의 환산시기도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필자의 입장에 비추어 보면 그 결론은 일응 정당하다고도 말할 수 있으나, 외화지급약정이 있는 외화채권과 외화지급약정이 없는 손해배상청구채권을 혼동해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지 않고 판례를 변경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끝>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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