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물류연구원 김인호 원장. |
우리나라 물류의 길을 개척해 오신 현운 안태호박사님께서 지난 9월 27일 소장하고 계시던 물류와 경영관련도서 약 6천권을 한국물류연구원에 기증해 주셨다. ( 관련기사 : 물류와경영 10월호 41쪽 ). 한국물류연구원장으로서 너무나 감사드릴 일이고 박사님의 뜻을 잘 헤아려 도서를 유지관리하고 물류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과 다짐을 물류업계 원로분들이 모인 자리( 시니어 물류포럼 )에서 상패에 담아 드렸다.
마케팅과 물류의 새로운 지평을 여시고 올곧은 학문의 길을 걸어오신 님.
님은 진정 나라의 보배이시며 물류인의 자랑입니다.
물류의 미래를 개척할 후학을 위해 分身같은 장서를 기증하시니 그 고마움 깊고 높아 헤아릴 길 없습니다.
님의 숭고한 뜻 높이 받들어 한국물류연구원의 전통을 이어가겠습니다.
안박사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책은 두차례에 걸쳐 한국물류연구원으로 옮겨왔다. 중화동에 있는 안박사님 자택 5층 옥상 서재에서 먼지 쌓인 책들을 정리 포장하는 작업을 보시며 시원섭섭해 하시던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책은 “ 김원장 그건 놔두지 내가 좀더 두고 보게 ”하시다가 “ 아니야 두면 뭘 해 다 가지고 가 ”하시며 아쉬운 속내를 보이셨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1940년대의 책들도 있었고 일본어 물류 전문도서도 많았다. 육필로 쓰신 원고도 있고 제자들이 B3용지에 정성들여 쓴 논문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소중한 기록들이 많았다. 모두 색깔이 누렇게 변해 지나온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차분하게 정리를 하고나면 희귀한 책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물류연구원 초대 회장을 지내셨고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계시는 안태호박사님을 처음 뵌 것은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쯤인 1978년 봄이었다. 박사님이 연구원장으로 계셨던 한국마케팅연구원에서 주최하는 “판매목표관리”교육에서였다. 당시 나는 입사 3년차의 판매예산을 담당하는 주임이었는데 판매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품목별, 지역별, 월별로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판매예산은 생산, 구매예산의 기초가 되는 것이어서 어떤 제품의 실적이 판매예산에 크게 미달되거나 반대로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과다재고가 발생하거나 품절로 이어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판촉과 광고 등 영업부의 총력을 기울여 판매했던 제품이 시장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해 대량 반품으로 이어지거나 과다재고로 남아 힘들어 했던 기억 많다. 지금은 판매상황과 재고와 관련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어느 곳에서든지 조회해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원재료의 구매와 발주, 그리고 생산계획을 미리미리 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판매 상황을 2, 3일 후에야 겨우 유선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도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 정보는 아니었다. 월말에 판매가 집중되기도 했고 제품이동이 없는 선매출( 일종의 가공 매출 )등도 성행해 판매예산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교육받은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과거의 실적과 시장상황, 그리고 판촉전략을 연계시켜 좀 더 과학적으로 판매예산을 세우고 관리하여 시행착오를 줄이는 기법이었던 같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선 내용이어서 교육을 받고 돌아와 직원들에게 전달교육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안박사님께서 지으신 마케팅원론을 읽게 되었고 그 책 마지막 부분에 소개되었던 Physical Distribution Management ( PDM : 물적유통관리 )에서 물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창고와 배송부서는 영업부의 지휘감독을 받고 영업부와 함께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시절이었는데 제품의 움직임과 관련된 부분을 떼어내어 운송, 보관, 하역, 포장, 정보등 물적유통이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웠고 상류와 물류를 분리( 商物分離 )해 관리하여야 한다는 이론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후 1982년 지금의 용마로지스주식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신규사업 프로젝트팀으로 발령을 받아 물류자회사를 설립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1984년 9월 한국물류연구원이 설립되어 안박사님과의 인연이 물류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물류연구원 설립 이듬해인 1985년 5월 안태호박사님을 단장으로 모시고 일본물류업계시찰을 함께 떠나게 되었다. 아마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물류시찰단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격년으로 열리고 있는 동경물류기기 전시회를 이틀간 돌아보고 동경 인근의 물류센타와 공장들을 2주일에 걸쳐 견학했다. 그리고 한일 물류교류협력을 위한 일본물류관리협의회와의 미팅도 있었다.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일본의 물류업계 원로분들이 새파랗게 젊은 장발의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던 생각이 난다.
생산공장보다 더 컸던 산토리맥주공장의 고층자동창고와 로봇시스템, AGV등에 열린 입을 다물 수 없었고 24시간 내에 집 앞까지 배송하여 준다는 야마토운수와 세이노, 사가와큐빈의 택배시스템을 보면서 내 환갑 전에 우리나라에서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우리들에게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셨던 안박사님은 일본어 가이드가 통역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하여 주셨고 저녁 식사자리에선 물류에 대한 꿈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물류정보와 표준화, 물류기기 공동이용등 일부 부문에서는 오히려 일본을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두 안태호박사님을 비롯한 업계 원로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초창기 한국물류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셨던 분들, 안태호 박사님, 전만술 박사님, 윤문규 박사님, 김정환 교수님등등 원로분들에게 감사드리고 그 뜻을 이어가는 한국물류연구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다시 이어진 인연은 계속 한국물류협회를 통하여 이어졌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실로 35년에 이르는 끈질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안박사님은 한국로지스틱스학회를 설립하셨고 아시아태평양물류연맹( APLF )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시며 한국물류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물류가 인연이 되어 물류업계에 몸담게 된 내게 안태호 박사님은 어떤 때는 물류의 큰 스승님이 되어주시고 또 어떤 때는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또 어떤 때는 아버지와 같은 푸근한 마음으로 안아주셨다. 한때 정부에서 의약품 물류조합이라는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려 할 때 현명한 판단을 구해주셨고 집사람과 함께 참가한 큐슈 선상물류포럼에서는 아버님과 같은 모습을 우리 부부에게 보여주셨다.
지금도 물류업계 원로들의 모임인 “씨니어물류포럼”의 회장님으로서 식지 않은 물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보여주시어 얼마나 고맙고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65세 이상 물류업계 원로들 스물두분이 매월 3번째 주 금요일 만나셔서 우리나라 물류의 미래를 걱정해 주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건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시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신다.
안박사님께서 기증하여 주신 도서는 향후 RFID 칩을 내장하여 분류 정리를 한 후 “현운도서”로 별도 관리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물류아카데미”와 협력하여 한국 물류의 역사를 함께 쓰신 분들의 책들도 기증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물류전문도서를 가장 많이 소장한 도서관을 만들어 물류연구의 산실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다. 앞으로 안태호 박사님과 물류업계 원로분들과의 오랜 인연을 잘 이어 한국물류발전의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는 큰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진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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