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남 편집위원 |
항해속력(Sea Speed)으로 전진하던 선박이 접안 예정 항만으로 접근하게 되면 항내속력(Habour Speed)으로 속력을 늦춰서 도선사가 타고 도선을 시작하게 되면 앞서 언급한 “어스턴(Astern/후진), 포트(Port/좌측으로), 스타 보드(Star Board/우측으로), 미드 십(Mid Ship/똑바로 전진)” 등의 명령용어(Imperative)를 번갈아 쓰며 부두쪽으로 진입을 하는 것이었다.
전진 방향을 오더하는 어휘 외에도 또 엔진의 속도를 변경하는 용어들로는 “풀 어헤드(Full Ahead/전속 전진)와 하프 어헤드(Half Ahead/중간속력 전진)”에 이어 “슬로우 어헤드(Slow Ahead/천천히 전진), 데드 슬로우 어헤드(Dead Slow Ahead/아주 천천히 전진)” 등의 구령을 써가며 예선을 적절히 사용해서 산더미 같은 거선(巨船)을 정중동(靜中動) 내지는 동중정(動中靜)의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부두와의 거리를 좁혀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엔진의 속도를 감속할 때마다 도선사가 ‘슬로우’니 ‘데드 슬로우’를 외치면 항해사가 이를 전달하고 조타수와 기관원 등 본선 선원들이 이를 복창하며 실시하는 모습이 그저 필자에겐 군사훈련장의 유격훈련 모습 같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한편 이 같이 큰 배들이 좁은 항만으로 비집고 들어가며 입항할 때는 본선 자체의 엔진을 미력으로 줄여 천천히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력으로는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어려워 반드시 거대한 본선을 밀고 당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예선(曳船/Tug)이 동원되어 거의 부유상태로 떠있는 선박을 밀고 당겨서 부두의 안벽에 붙여 접안시키게 된다.
이같이 선박의 항만 안전 입출항을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게 도선업무이긴 하지만 그래도 돈과 관련짓고 보면 이해 당사자 모두가 그리 호락호락한 문제는 아니라 요금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바 없으리란 생각이고 70년대는 그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970년대 후반 필자가 도선 관련업무를 처음 맡았던 당시는 도선업계가 요율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변경된 요율체계를 정부 당국에 제시하고 이를 근거로 합리성과 적정성 여부를 따져 인가를 하게되고 이용자 측에 알려서 시행하는 관허요율이라 할 수 있는 인가요율제도를 채택해 왔었다.
따라서 이용자측, 즉 선주 및 선사나 외국선사 국내 대리점들은 비록 정부가 심사해서 인가한다지만 이를 일종의 독과점 요율로 보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러 옥시각신 할 무렵에 문외한 필자가 업무인계를 맡았던 것 같다.
워낙 선사들의 원성이 높아 어떤 형태로건 요율체계를 바꿔 협정요율 체계로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었던 것이다.
마침 해운항만청 외항과장과 부산지방청 항무국장 및 본청 재무국장을 역임후 선주협회로 내려온 최재수 전무이사 부임을 계기로 도선사협회 대표, 선사의 담당 해기사들, 그리고 해양계 대학 등 학계를 총망라해서 협의체 격의 타스크포스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합리적인 도선요율 체계의 수립을 위한 장시간의 작업에 들어갔던 기억이 선하다.
당시 도선료가 너무 높다고 이를 두고 장난삼아 회자시켰던 이용자측의 우스개로는 도선사를 가르키는 Pilot(파일러트)가 해적을 일컫는 Pirate(파이어러트)와 발음이 유사하다고 해서 도적료니 해적료니 했던 유행어와 에피소드가 생각 난다.
물론 영문으로 스펠링이 비슷한 탓에 발음이 닮아 생긴 조크이긴 하지만 우연치고는 상당한 하이클래스급 센스있는 우연이란 데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생각이다.
선주협회측에서는 사무국의 최재수 전무와 필자 및 이흥범 해무차장(한국해대 전수과)이, 선사 대표로는 범양전용선 방석훈 전무(한국해대 항해과 6기/작고)와 윤희대 이사 (동 10기)등이 이용자 대표로 참가했고 도선사협회 측에서는 정희정 도선사협회장(인천항 도선사/한국해대 항해과 1기)과 김길성 인천항 도선사(동 15기)가, 그리고 학계에서는 한국해대의 윤점동 교수(한국해대 항해과10기), 정세모교수(동 11기/작고), 박용섭 교수(동 15기) 등이 참가했었다.
그 외에도 해운관련 단체나 선사 등 여러 곳에서 참여했고 필요시에는 선장이나 해기사 출신들의 조언도 받아 실제 작업에 들어갔다. <계속> < 서대남 편집위원 dnsuh@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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