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런던올림픽이 성대히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오심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메달 13개로 종합 5위의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지구촌은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돼 울고 웃는 감동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해운시장은 달랐다. 공교롭게도 건화물선 시장은 올림픽 기간 동안 극심한 부진의 터널을 지나야했다. 건화물선운임지수(BDI)는 올림픽 개막에 즈음에 1000포인트선이 무너진 뒤 최근엔 800선마저 붕괴됐다. 사상최저치를 기록했던 2월 초의 시황을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월 초 시황 재연될까” 불안 고조
BDI는 지난달 초만 하더라도 1000포인트를 훌쩍 넘은 뒤 1100포인트선에 입성했다. 17만t(재화중량톤)급 안팎의 케이프사이즈와 7만t급 안팎의 파나막스, 5만t급 이하의 수프라막스 등 대형선과 중소형선 가릴 것 없이 모두 상승일로였다. BDI가 2000포인트를 향해 순항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왔다.
하지만 기대는 순식간에 우려로 바뀌었다. 7월9일 1162로 단기 고점을 찍은 BDI는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9일 이후 한 달 이상 하락세가 계속됐다. 한 번도 상승 반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24일(거래일 기준) 연속 하강곡선을 그렸다. 올림픽을 이틀 앞둔 7월25일 1000포인트가 무너졌으며 우리나라 유도 선수 김재범이 금메달을 따던 7월31일에 900선을 내줬다. 8월9일 800선이 붕괴된 뒤에도 BDI의 하락세는 멈출 줄을 모르고 있다. 13일 현재 764를 기록 중이다. 한 달 새 400포인트나 빠졌다.
시황 하락으로 선형별 용선료도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특히 대형선 시장은 한 달 사이 운임이 반 토막 나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7월 고점 당시 8천달러에 육박했던 케이프사이즈 용선료는 최근 들어 3000달러대로 곤두박질 쳤으며 1만달러 돌파가 기대됐던 파나막스 용선료는 6000달러대로 떨어졌다. 1만3000대를 웃돌던 수프라막스 용선료는 최근 9000달러대를 허우적대고 있다.
건화물선의 극심한 부진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약세와 공급과잉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02년부터 5년간 이어진 호황기 동안 발주한 선박들이 대규모로 시장에 공급되면서 현재의 선복과잉을 야기했다.
해운불황에도 불구하고 신조선 공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얼라이드쉽브로킹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전 세계 벌크선대는 9396척 6억684만t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말의 8890척 6억1113만t에 견줘 8.1%가량 늘어났다. 상반기 신조선 인도량은 654척 5588만t이었다. 지난해 연간 인도량 1146척 9584만t의 58% 수준이다. 시황 부진으로 폐선도 급격히 늘어났으나 공급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상반기 폐선된 선박량은 326척 1825만t이었다. 지난해 연간 폐선량인 448척 2429만t의 75% 수준이다. 하반기엔 시황 악화로 폐선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 올 한 해 4천만t의 선박들이 시장에서 사라질 것으로 점쳐진다.
대규모 선복 공습…수요는 약세 지속
하반기에 8천만t가량의 신조선이 인도를 앞두고 있어 시장에 불안감이 감돈다. 선박 해체와 인도 연기, 계약취소 등을 고려하더라도 5천만~6천만t의 선박량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6월 말 현재 전 세계 벌크선 발주잔량은 2150척 1억7131만t에 이른다. 운항선대의 26%가 새롭게 지어지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 1029척 8070만t이 시장에 나오고 내년과 내후년에 840척 6598만t, 250척 2180만t이 인도될 예정이다.
막대한 공급 폭탄이 예정돼 있는 데다 세계 경기마저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기에 해운시황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하다. 수요 측면도 해운시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벌크선 시장은 3분기가 비수기에 속한다. 벌크선 5대 화물 중 곡물과 난방용 석탄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남미와 미국 멕시코만 지역의 곡물 수요 감소가 파나막스 시장의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운 시장의 최대 수요처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철광석 수입량은 지난해에 비해 두 자릿수에 가까운 증가를 보여 고무적이긴 하다. 7월까지 철광석 수입량은 4억2375만t으로, 1년 전의 3억8833만t에 견줘 9.1% 늘어났다. 하지만 월간 실적에선 5월 6384만t으로 고점을 찍은 뒤 6월 5831만t 7월 5787만t으로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띠며 케이프 시장 수요 약세를 부채질했다.
장기적인 시장 부진이 이어지자 향후 전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한 실정이다. 2년 후인 2014년 하반기나 돼야 시황이 턴어라운드를 맞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연 시황회복의 날이 올 것인지 모르겠다는 절망 섞인 시선도 포착된다. 중견 선사 한 관계자는 “해운위기가 처음 터졌을 땐 2~3년 고생하면 다시 시황이 좋아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지금은 시황이 좋아지긴 할 것인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며 “어떻게 버텨낼 지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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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크선사 적자행진 이어져
벌크선사들은 적자의 늪을 헤매고 있다. 올해는 전체 선사의 절반가량이 적자를 낸 지난해보다 더 심한 한파가 예상된다는 게 벌크선업계의 중론이다.
현대상선은 2분기 동안 벌크선 부문에서 69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 부문 매출액은 2860억원을 기록, 22%의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음에도 화물비와 용선료, 연료비 등 두 자릿수에 이르는 비용 상승이 흑자 전환의 발목을 잡았다. 국내 1위 벌크선사인 STX팬오션도 2분기에 1천억원대 안팎의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파악된다. STX팬오션은 1분기에도 1200억원대의 손실을 낸 바 있다. 삼선로직스는 2분기에 영업손실 76억원 순손실 297억원을 냈다. 상반기 손실 폭은 각각 103억원 322억원을 기록했다.
시황 침체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선사들도 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폐업한 선사는 50여개사에 이르며 법정관리를 신청한 곳도 10곳에 이른다. 법정관리 신청 기업 중 양해해운과 씨와이즈라인 삼호해운 3곳은 회생절차가 폐지됐으며 조성해운은 폐업했다. 이와 더불어 지난달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구조조정 대상 기업 명단에 해운사 1곳이 올랐다. 이 해운사는 가장 낮은 D등급을 받았다. 이 등급은 퇴출대상을 의미한다. 바로 창성해운이다. 창성해운의 부채 규모는 작년 말 현재 1844억원에 이른다. 몇 년 동안의 잇따른 적자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중견 해운회사인 C해운은 패스트트랙 협상으로 해운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해운 불황기 때 금융권의 중소기업 대상 단기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통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11척의 신조선이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통해 무사히 건조됐다. 문제는 올해 9월 패스트트랙의 만기가 도래하며 채권은행 일부에서 더 이상의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C해운의 올해 원리금 상환 규모는 380억원 정도로 파악된다. 신조선들은 선박펀드를 통해 후순위 투자를 받았던 터라 만약 C해운이 은행권과 협상에 실패할 경우 선박펀드 시장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흑자 재정을 일구는 곳도 물론 있다. 화물 수송을 중심으로 하는 선사들은 대부분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괄목할 만한 영업성과를 내고 있다. 벌크선 시장의 우량주인 폴라리스쉬핑은 2분기에 179억원의 영업흑자를 냈다. 1분기엔 182억원의 영업이익을 실현했었다. 폴라리스쉬핑은 화물수송 위주의 안정적인 경영을 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포스코나 한국전력, 브라질 발레 등과 5~10년 정도의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지난해 나란히 흑자경영을 일군 삼목해운이나 하나로해운, 중앙상선 등도 벌크선 시장의 모범기업으로 손꼽힌다. 이 가운데 중앙상선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않고 선박을 발주하는 방식으로 재무건전성을 확보했다. 부채 규모가 56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해운산업 특성상 해운사들의 부채 규모는 자본금을 크게 웃돈다. 해운시장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선사들의 부채 비율도 덩달아 높아졌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규모는 해운 호황기 시절 100% 수준에서 최근 500% 이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중앙상선의 부채 비율은 3.8% 수준이다. 빚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입금을 끌어들이지 않는 독특한 회사 경영으로 이자 부담에서 자유롭다는 게 중앙상선의 큰 장점이다. 최근 인도받은 8만5천t급 캄사르막스 신조선 2척도 1억달러를 은행 대출을 끼지 않고 보유하고 있던 자금으로 모두 결제했다.
컨테이너 선사로 알려져 있는 장금상선도 최근 몇 년 간 벌크선 영업을 강화하면서 이익의 대부분을 벌크선 쪽에서 거두고 있다. 장금상선은 1분기 288억원에 이어 2분기에도 231억원의 영업이익을 일궜다.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석탄 등의 장기수송계약이 벌크선 사업의 핵심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지원책 어떤 게 있나
어려운 해운업계의 유동성 공급을 위한 지원방안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해운업계는 올해 초 정부에 8가지의 해운사 단기유동성 공급지원책을 요청했다. ▲채권 담보부 증권제도(P-CBO) 도입 ▲해운사 회사채신속인수제도 ▲장기회사채 또는 전환사채 발행 지원 ▲국가필수국제선박을 활용한 참가적 우선주 발행 지원 ▲해운사 스탠바이 LC 계좌 개설 지원 ▲해운사 긴급지원 브리지론 ▲패스트트랙 프로그램 개선 ▲캠코(자산관리공사) 선박매입프로그램 확대 등이다.
이 가운데 신용도가 낮은 회사에 대해 정책금융기관이 보증을 하는 P-CBO나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스탠바이 LC 등은 해운사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은 해운업계의 요청에 손사레를 쳤다. 2분기 때 이뤄진 컨테이너선 운임상승을 들어 해운시장이 살아나고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한편 선주협회가 마련해온 금융권-해운업계 간담회는 오히려 해운업계에 대한 금융권의 불신만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따가운 질책의 목소리가 나온다. 선주협회는 2010년 이후 금융권과 해운업계의 스킨십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시중은행 본점 심사팀과 선사 재무팀 담당자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서울 시내 뿐 아니라 카페리선 등 모임 장소도 다양했다. 하지만 간담회가 해운업계가 금융권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해운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선주협회가 나서서 해운시황이 어렵다는 점을 금융권에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설명이다. 해운사 한 관계자는 “선주협회가 금융 문제를 풀려고 금융권과 선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회의를 마련한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회동 이후 해운업에 대한 금융권의 인식만 안 좋아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이 관계자는 “회의 직후 은행의 본점에서 지점으로 해운업계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대출을 제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는 얘길 들었다”고 덧붙였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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