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선사, 국내 선박금융 활용 자금 조달
에버그린·카길 등 세계적인 해운사와 화주가 국내에서 잇따라 선박금융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유럽재정위기 여파로 유럽 금융회사가 선박금융 집행을 축소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양호한 국내 선박금융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세계적인 곡물업체인 카길이 국내 선박펀드 '하이골드오션9호'를 통해 7000만 달러를 조달한다. 카길은 조달한 자금으로 중국 장쑤(江蘇)성의 한통조선소에서 6만4000톤급 벌크선을 매입한다. 투자자 모집·판매와 펀드 운용은 각각 하이투자증권, 국제선박투자운용이 담당한다. 카길의 선박펀드에는 국내 기관투자가 유한책임사원(LP)으로 투자한다. 하이골드오션9호는 투자가는 국내 기관투자가로만 구성됐다.
선단규모로 세계 4위 해운사인 대만 에버그린도 국내 선박금융 자금으로 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한다. 에버그린은 1만38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0척을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2억 달러에 인도받는다. KDB한국인프라자산운용(KIAMCO)은 선박펀드를 조성해 컨테이너선을 인수한 뒤에 에버그린에 용선할 계획이다. KIAMCO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을 10년간 용선할 것"이라며 "펀드가 컨테이너선을 실질적으로 보유하면서 에버그린에 빌려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올 초에는 세계2위 해운사인 스위스 MSC가 국내 연기금과 접촉해 투자금 유치를 협의한 바 있다. 국내 금융회사가 MSC 컨테이너선 2척에 투자하는 펀드 조성을 추진했다. 해당 펀드는 지분투자(Equity) 형태로 MSC의 컨테이너선 2척을 매입한다. 투자규모는 1억4900만 달러 안팎이다. 투자 방식은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 back)으로 MSC가 선박을 펀드로부터 빌려 쓰다가 정해진 기간이 지나서 선박을 되사는 구조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국내 선박금융 시장에 문을 두드리는 것은 유럽 금융회사와 펀드가 선박금융 집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재정위기 여파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가 자본 확충 필요성도 커지고 있어서다. 선박금융 시장의 70~80%를 장악하던 유럽 금융회사의 공백을 국내 기관투자가와 은행이 채우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중순 유럽재정위기 촉발로 유럽 주요은행의 자금조달 여건은 팍팍하다. 신용부도 위험의 시금석인 신용부도스왑(CDS)이 가파르게 오른 게 대표적이다. 조달여건 악화와 아울러 금융규제가 촘촘해지면서 유럽 금융회사는 선박금융 신규대출을 꺼리고 있다.
선박금융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독일·프랑스 금융회사가 대표적이다. 유럽재정위기 진원지인 그리스 채권을 다수 보유한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 크레디아그리콜, 소시에떼제네랄은 지난해 일찌감치 신규 선박금융을 접었다. 독일의 코메르츠방크 등도 선박금융 업무를 중단했다. 지분투자(equity) 형태로 선박금융을 지속해오던 독일의 KG펀드는 수익하락과 자금 경색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유럽 금융회사의 공백은 실적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마린머니가 집계한 올해 1분기 선박금융 리그테이블(신디케이트론 기준) 상위 10개 금융회사 가운데 유럽계는 단 5곳에 불과했다. 반면 일본 금융회사는 3곳, 인도 금융회사도 1곳이 10위 안에 포함됐다. 한국에선 산업은행이 유일하게 15위에 랭크됐다. 선박금융 선두주자였던 독일 HSH노르드방크·코메르츠방크, 프랑스 BNP파리바는 19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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