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정기선시장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09년에 비견될 만큼 극심한 침체에 떨어야 했다. 운임은 마지노선 아래로 떨어진 반면 연료유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 선사들의 적자폭은 커져만 갔다. 불황타개를 위한 선사들간 다양한 움직임은 정기선 시장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항로 운임 2009년 수준 근접
올해가 시작될 때만 해도 정기선 시장의 전망은 밝은 편이었다. 지난해의 상승 탄력을 올해에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선사들은 내다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시장은 선사들의 전망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물동량 성장세는 둔화된 반면 선박량은 큰 폭으로 늘어난 때문이다.
특히 1만TEU급 이상 선박들이 대거 투입된 유럽항로 시황은 선사들의 집화경쟁이 뜨거워지면서 빠르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금융위기 수준까지 떨어진 참담한 유럽항로지만 정작 물동량 수준은 상승추세다. 현재의 시황하락이 선사들의 무분별한 과잉투자에서 비롯된 것임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주운임동맹(FEFC)이란 구심점이 사라진 뒤 선사들이 현재의 어려운 시황을 자초했다는 혹독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뼈아플 수밖에 없다.
컨테이너트레이드스터티스틱스(CTS)에 따르면 10월까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송된 수출항로 물동량은 2226만TEU로 지난해 같은 기간 2128만6천TEU에 비해 4.6% 성장했다. 유럽 수입항로 물동량도 951만7천TEU를 기록, 1년 전 887만6천TEU에서 7.2% 늘어났다. 이와 비교해 유럽항로 선복량은 올해 들어 43만TEU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1만TEU급 선박 43척이 추가 투입된 셈이다. 증가율로 따져 두 자릿수(12%)에 이른다.
선복과잉으로 운임은 최악의 수준까지 치달았다. 지난해 이맘때 20피트 컨테이너(TEU) 기준 2000달러선을 넘나들었던 한국발 유럽행 해상항로 운임은 연초 1500달러선까지 하락한 뒤 1년 내내 내리막길을 걸으며 12월 들어선 600~700달러선까지 떨어진 상태다. 중국발 운임은 더 심각하다. 상하이항운교역소에 따르면 16일 기준 중국-북유럽 해상운임은 TEU당 499달러로 500달러선이 붕괴됐다.
2009년의 300달러선까지는 하락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연료비 수준을 고려하면 그렇지도 않다. 2009년 연료유 평균 가격(싱가포르항 IFO 380CST 기준)은 460달러선이었다. 1분기 270달러 2분기 360달러 3분기 440달러 4분기 480달러 식으로 서서히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올해는 연초 600달러대를 넘어선 뒤 그 수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3분기까지 평균 연료유가격은 640달러대였다.
21일 현재 연료유 가격은 670달러대를 기록 중이다. 2009년에 비해 200달러가량 오른것으로 연간 310만t의 연료를 쓰는 한진해운의 경우 연간 7천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은 계속될 전망이어서 선사들의 채산성 악화는 앞으로도 심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미항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미서안 운임수준은 40피트 컨테이너(FEU)당 1700달러 안팎을 기록 중이다. 1년 전에 비해 500~600달러가량 하락한 모습이다. 올해 들어 그랜드차이나쉬핑 하이난PO쉬핑 TS라인 등 중화권 신흥선사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선사들의 집화경쟁이 가열된 까닭이다.
결국 시황부진에 적자성적표가 계속 이어지자 2009년처럼 해운시장의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업 철수, 기업 인수합병(M&A)설이 다시금 불거져 나오고 있으며 선사들의 합종연횡도 본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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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항로 3강체제 힘겨루기
말레이시아 선사인 MISC가 내년 상반기까지 정기선 사업을 완전히 접기로 했으며 독일선사인 하파그로이드의 해외 매각설도 제기되고 있다. MISC는 내년 1월 초 극동지역(한국 포함) 서비스 철수를 시작으로 6월까지 정기선 서비스를 모두 철수할 계획이다. MISC는 그랜드얼라이언스에 가입해 유럽항로를 서비스해오다 실적 부진으로 지난해부터 아시아역내항로만 집중해왔다. 시황 악화가 심해지자 아예 정기선사업을 중단키로 한 것이다.
칠레선사인 CSAV는 12억달러를 증자한다는 내용의 회사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이 선사는 그동안 자사선 중심으로 진행해오던 정기선서비스를 다른 선사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운항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선 컨테이너선 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싱가포르 선사인 APL의 모회사 NOL은 독일 여행회사인 TUI와 하파그로이드의 인수 교섭을 재개했다. 현재 하파그로이드의 지분은 알베르트발린 컨소시엄이 61.6%, TUI가 나머지 38.4%를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 MOL의 최고경영자인 무토고이치 사장은 일본 3대 선사가 정기선 사업부문을 통합해야 한다고 발언해 해운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궤를 같이해 선사들의 얼라이언스(전략적 제휴)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모양새다. 세계 2, 3위 선사인 스위스·이탈리아 선사인 MSC와 프랑스 CMA CGM의 결성, 뉴월드얼라이언스(TNWA)와 그랜드얼라이언스(GA)의 ‘헤쳐모여’는 정기선 시장의 격변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MSC와 CMA CGM은 빠르면 내년 3월 말부터 아시아-유럽항로 등에서 통합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 두 선사의 결합은 세계 최대 선복량을 가진 얼라이언스의 탄생이란 점에서 해운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해운컨설턴트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두 선사의 선박량은 334만TEU로 세계 1위 정기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라인을 50만TEU가량 앞선다. 두 선사는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선을 투입해 아시아-유럽항로에서 5개 노선을 공동운항키로 확정했다.
MSC와 CMA CGM의 제휴가 발표된 지 보름 후인 지난 20일 TNWA와 GA가 새로운 얼라이언스인 ‘G6’을 결성한다는 소식이 전 세계 해운업계에 타전됐다. G6엔 TNWA의 현대상선 APL MOL, GA의 하파그로이드 NYK OOCL 등 6개 선사가 참여한다. G6은 통합 선복 281만TEU로 MSC-CMA CGM에 이어 두번째에 위치하게 됐다. G6은 아시아·유럽항로에 90척 이상의 선박을 배선해 총 9개 항로를 서비스할 계획이다.
새로운 얼라이언스 출현으로 유럽항로는 크게 요동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들 얼라이언스가 선박의 퇴출 없는 서비스 통합을 꾀한다는 점에서 한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선박량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시황회복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을 지 의문이란 견해다.
하지만 얼라이언스 체제가 확대되면서 선사들간 자율적인 선복조절이 가능해지는데다 머스크라인의 독주체제가 3각체제로 변화된다는 점에서 긍정론에 힘이 실린다.
극동아시아-유럽항로 선복 점유율은 머스크라인 26%, 새롭게 출범하는 G6 24%, MSC-CMA CGM 22%로 변화한다. 게다가 데일리머스크 등 해운시장을 주도해왔던 머스크라인은 CMA CGM과 함께 서비스해오던 AE8(CMA CGM명 FAL5)도 철수하게 돼 추가적인 항로 재편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AE8은 두 선사가 1만3000TEU급 선박 5척씩 투입해 상하이와 닝보 등 아시아 5개항과 북유럽을 연결하고 있다. 머스크라인은 내년 2월 중순께 이 노선을 중단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머스크라인의 북유럽 서비스는 주 6항차 체제로 줄어 중국 기점의 매일운항서비스인 ‘데일리머스크’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해 벽두 운임회복 예고
이 같은 상황에서 선사들은 내년 1월부터 유럽항로와 북미항로에서 운임회복에 나설 예정이다. 얼라이언스 재편으로 운임회복을 위한 시장 분위기는 무르익었다는 분석이다.
유럽항로 취항선사들은 TEU당 200~250달러 수준의 운임회복에 나설 예정이다. 선사마다 기본운임인상(GRI)이나 성수기할증료(PSS) 도입 등 형태는 다양하다. MSC와 CMA CGM 연합은 내년 1월1일부터 TEU당 225달러의 PSS를 도입하고 중국 코스코는 이달 26일부터 GRI 형태로 225달러를 인상키로 했다.
북미항로도 운임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취항선사들은 내년 1월부터 FEU 기준 400달러의 기본운임인상(GRI)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GRI엔 한진해운 현대상선을 비롯해 외국선사들도 다수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한진해운은 12월1일 성수기할증료(PSS) 형태로 운임회복을 실시키로 했으나 동력이 분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1월 GRI에 주력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미항로는 하반기 이후 물동량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선사들의 자발적인 선복감축으로 성공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피어스(Piers)에 따르면 1~11월 아시아-미국 해상항로 물동량은 1211만TEU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월간 실적에선 6월 이후 6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선복은 물동량보다 감소폭이 크다. 중화권 선사들이 진출 1년이 채 못돼 서비스 철수를 선언한데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코스코 CSAV 등 기존 선사들도 줄줄이 노선 감축에 동참했다. 서비스 철수로 아시아-북미항로 선복은 주간 2만TEU 이상 줄어들게 됐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선사들의 유동성이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며 “이번에 반드시 운임회복을 관철시켜야 (선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운임회복에 대한 성공 의지를 다졌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많이 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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