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기형(兄), 그는 저에게 형이면서 선배인 동시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다."
지난 2008년 12월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해운 창립 40주년 기념사 도중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2004년 작고한 이맹기 대한해운 회장을 "맹기형"이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잠시 후 그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지난 14일 고 이맹기 회장의 장남 이진방 대한해운 회장(현 법정관리인)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 다녀왔다.
"우리 회사가 그분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 이 회장과 전화인터뷰를 하는 도중, 전화선 너머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한해운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고 박 회장은 "1968년 4월 포스코가 창립하고 그해 12월 이맹기 회장이 대한해운을 설립해 불가분의 관계로 발전하는 동안 40년을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그분이 원래 기업들 창립기념식 같은데 오시는 분이 아닌데…. 제가 와주십사 부탁하니, 단번에 '간다, 내 느그 아버지 보고 간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회장이 말을 이었다.
"또 연초엔 우리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곤, 저를 바로 부르셔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셨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죄송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를 살리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두살 터울인 고 박태준 명예회장과 이맹기 회장은 닮은꼴로 유명하다. 각각 육군사관학교(6기)와 해군사관학교(1기)를 졸업하고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함께 일했다. 하지만 이후엔 정치가 아닌 경제분야로 눈을 돌려 '제철보국'과 '해운입국'의 정신으로 철강과 해운산업을 일으켰다. 이 둘은 바늘과 실같이 사업적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돼 줬다. 포스코는 안정적인 국적수송선사가 필요했고, 대한해운엔 규모와 위용을 갖출 기회였다. 지난 2006년 대한해운이 외국선사로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을 받았을 때 포스코가 적극 백기사로 나서 막아줬던 것도 이 둘의 진한 40년 우정에 기인한다.
"선친은 회사 주식을 직원들에게 다 나눠줄 정도로 기업가라기보단 군인이었고, 강직하고 청렴해 두 분의 배짱이 맞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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