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삶의 무대”
원양어선 船長 천금성(千金成) 海洋소설가 (하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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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남 편집위원 |
이 때 저쪽 발치쯤에 떨어져 있던 허문도씨가 “영부인님, 그건 우리 비서관들이 알아서 다 조치하고 있습니다.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이순자 여사는 “그래요? 그러면 작가 선생님께 잘 해 드려야 해요” 라고 말하고는 “그런데 왜 12·12에 대한 내용은 없나요? 구국의 결단으로 일컬어지는 각하의 인생관이나 애국심을 알려면 그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해요”라고 말을 돌렸다고 했다.
이 여사는 “관련 군 지휘관들에게 취재에 잘 협조하라고 얘기해 놓을 테니 잘 정리하도록 하세요”라고 오금을 박으며 허씨에게 일임을 했었다는 것이다.
▲ 船長 급여에도 못 미치는 傳記집필 사례에 千작가 큰 실망
- 잔뜩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실망만 하고 말았네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허문도씨에게 따졌지. 몇 달이나 부려먹고는 이게 뭐냐고. 선장인 내가 받는 월급이 5백만원인데 지금까지 나에게 준 돈이 2백만원 밖에 더 되냐? 영부인께서 뭔가 주려는 걸 왜 막고 나섰느냐고 큰 소리로 마구 퍼부어댔지”
- 그랬더니 그 양반이 뭐라고 합디까.
“아니 그럼, 너는 영부인님 앞에서 돈 이야기할 작정이었냐? 그리고 그 일을 돈 보고 했더냐. 영광으로 알아야지 그러데.” 그러고는 허씨는 “책이 1백만부쯤 팔릴 거니까 그러면 인세만 해도 1억원은 좋이 될 거”라며 천작가를 달랬다고 했다. 그러나 그 책은 겨우 2∼3만부 나가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것도 공무원 군인 등이 면피용으로 단체구입 해 준 덕이었다. 계산해보니 천작가가 <황강에서 북악가지>로 손에 쥔 돈은 인세 등 모두 합해 1천만 원 남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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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중 부산 중앙동 <40계단기념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千작가 |
배를 타지 못한 그는 수입이 없다시피 했다. 그는 곧 이순자 여사가 말한대로 <12·12>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잘하면 그 책은 돈이 될 것 같았다는 것.
이순자 여사의 요청이 있었기에 취재와 자료수집은 어렵지 않았단다. 신군부세력 개개인과의 면담을 통해 그 날 각자가 맡아 수행한 역할이나 작전내용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사태의 본질을 그림으로 엮어내는 작업이었다.
▲ 출판된 소설집만 20권, 발표한 長短篇 무려 100여편 기록
6개월여의 힘든 작업 끝에 실록 <10·26, 12·12,광주사태>라는 제목의 책이 가인쇄본까지 나왔으나 “이런 내용의 책이 나가면 안 된다”는 허문도씨와 청와대 보안사 등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 때부터 그는 술만 마시면 허문도씨 등 5공 실세들에게 마구 욕질을 해댔단다.
그 일로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사직동팀)에 끌려가 사흘 밤낮을 혼쭐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당시 이수정 민정수석이 그를 문화방송에 부장급으로 취직을 시켜주어 겨우 밥벌이는 하게된 게 MBC 근무의 단초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민주화바람이 불면서 MBC에 노조가 생겼고 어느 날 ‘낙하산으로 내려온 C모 물러가라!’는 대자보가 대문짝만하게 나 붙더란다.
출근길에 그 대자보를 본 천작가는 그 길로 발길을 돌려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생활고도 그를 괴롭혔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문단 쪽의 계속되는 ‘왕따’였다고 했다.
원고청탁이 딱 끊겼고 소설을 기고해도 실어주는 데가 없었다는 것. 광주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의 일대기를 쓴 ‘어용작가’라는 딱지는 그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Scarlet Letters)’였던 것이다. 일정기간 배를 타지 않았기에 선장 면허까지 잃는 신세가 되고 말았고 그렇게 무려 13년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만신창이가 된 그는 수차 전술했듯이 1994년 일개 하급 선원 신분으로 다시 태평양으로 달려가 참치잡이 어선을 탔다고 했다.
오로지 소설을 다시 쓰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 후 최근까지 천작가는 오직 재기를 꿈꾸며 창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출판된 소설집만 20권에 이른다. 발표한 장·단편만 거의 100여 편에 달한다.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양작품들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집은 출판은 되어도 잘 팔리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신문이나 그 흔한 신간소개 기사조차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부산의 중앙동 40계단 부근에 집필실을 두고 꾸준히 창작에 매달려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소설들이 빛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란 희망 하나를 붙들고서. 이런 그를 두고 문학평론가 송재영씨는 “언젠가는 한국의 허만 멜빌이요, 조셉 콘래드이며 생텍쥐페리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고 자신했단다.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특이한 소재에 구성도 탄탄하여 재미 또한 각별하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졸고를 끝내는 종장에 필자는 천금성 소설가와 ‘손전화’로 안부를 묻는 통화를 했다. 그리고 천 작가의 연보를 일별하는 게 바로 그의 삶의 역정과 작품세계를 필자가 종사하는 해운업계에 널리 알려 해양문학 장르를 일깨우는 길이라 생각하여 코리아쉬핑가제트 독자들을 위해 어렵게 자료정리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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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작가의 마음은 늘 열린 바다를 향해 끝없이 달려가고 있다. |
▲ 지금도 釜山서 創作의욕 불태우며 오로지 집필활동에 전념
다행이 작가가 70년을 살아낸 여정을 집약한 삶과 작품연대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전송해 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비록 천작가의 작품을 다 읽진 못했지만 곁에서 꼼꼼히 지켜 본 듯이 게재하여 산뜻한 말미를 장식할 수 있어 너무나 개운하다. 끝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성식(金盛式) 외항상선 선장 시인,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천금성(千金成) 원양어선 선장 소설가를 겨우 10회에 걸쳐서나마 그들이 남긴 족적을 더듬어 연재로 이어갈 수 있게 취재에 도움을 주신 해운업계 여러분들과 관심을 갖고 격려를 보내준 필자의 교우 및 지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천금성 작가의 연보 >
■ 천금성 작가 학력
○ 1960년 경남중·고교 졸업
○ 1966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 졸업
(재학중 해병대 사병 복무)
○ 1967년 FAO설립 한국원양어업훈련소 어로학과 제5기 수료
■ 천 작가의 수상경력
○ 196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1993년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 주요 활동 및 경력사항
○ 1968년 고려원양 소속 제53 광명호 2등항해사 승선, 인도양 출어
○ 1970년 상기 선박 선장 승선
○ 1973년 고려원양 소속 제93 광명호 선장 승선
○ 1975년 고려원양 소속 제96 광명호 선장 승선
○ 1977년 경희어업 소속 제71 태양호 사무장 승선
○ 1978년 12년간의 해상 생활을 마감함
○ 한국문인협회 기획실장 역임
○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역임
○ 문화방송 편집위원 역임
○ 한국매스컴신문 편집국장 역임
○ 자유일보 편집국장 역임
○ (사) 한국해양문학가협회 초대회장
■ 천금성 작가의 작품 및 저서
○ 196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零 海拔 附近》 당선
○ 1970년 단편 《赤道祭》(현대문학 12월호)
○ 1972년 단편 《꿈틀거리는 地殼》(월간문학 2월호)
○ 1973년 단편 《船積品》(현대문학 7월호)
○ 1974년 중편 《虛無의 바다》(한국문학 5∼8월호 분재)
○ 1974년 단편 《막다른 바다》(월간 해기) 발표
○ 1975년 《두 선장의 경우》(한국문학 6월호) 발표
○ 1977년 단편 《月明에서 月明까지》(현대문학 4월호) 발표
○ 1977년 첫 창작집 《허무의 바다》(문학예술사) 출간
○ 1978년 단편 《야간항해》(현대문학 2월호)
단편 《不開港場》(현대문학 4월호)
단편 《出港練習》(오늘의 문학 3집)
단편 《無人島》(엘레강스 6월호)
단편 《海底 아래로》(월간문학 6월호) 발표
○ 1979년 경향신문에 해양 장편소설 《표류도》연재
○ 1979년 단편 《열 길 물속》(현대문학 5월호)
단편 《천생 너는 뱃놈》(주간조선)
중편 《아르고 船》(월간중앙 7월호)
중편 《가장 긴 航海》(문예중앙 9월호)
단편 《식민지의 항구로부터》(월간문학 11월호) 발표
○ 1980년 창작집 《은빛 갈매기》(고려원) 출간
장편 《표류도》(고려원) 출간
단편 《坐礁船 附近》(현대문학 6월호)
중편 《바다의 끝》(문학과 지성 여름호)
중편 《바다의 시작》(소설문학 8월호) 발표
○ 1980년 쟁점 《노인과 바다, 그 몇 가지 誤謬》(한국문학 8월호) 발표
○ 1981년 전두환 대통령 전기 《黃江에서 北岳까지》
○ 1983년 문화방송 편집위원
○ 1983년 MBC-TV 특집 해양다큐멘터리 《3부작 의지와 도전의 바다- 오대양을 가다》 기획 및 해외제작 참여( 84년 1월 방송)
○ 1985년 MBC-TV 해양드라마 《3부작 남태평양 3천마일》 방송
○ 1986년 《보트 피플》(동서문학 5월호)
○ 1986년 창작집 《바다의 끝》(동서문화사) 출간
○ 1987년 낙하산 인사로 지목, 퇴사함.
○ 1988년 《12·12,10·26, 광주사태》(길한문화사) 출간
○ 1988년 《군, 결단 1000시간》(민조사) 출간
○ 1990년 중편 《航海報告書 1》(월간문학 2월호)
중편 《航海報告書 2》(현대문학 3월호)
중편 《航海報告書 3》(한국문학 7월호) 발표
○ 1991년 단편 《제 발등 찍기》(중견작가 14인집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수록
○ 1991년 연작 《航海報告書》를 《지금은 항해중》
○ 1992년 단편 《老漁夫와 소년》(한국문학 5·6월 합병호)
중편 《어느 老漁夫의 회고》(계간문단 겨울호) 발표
장편 《남지나해의 끝》(도서출판 문성) 출간
○ 1992년 정치소설 《6공 청문회》(도서출판 가을) 출간
○ 1993년 한국소설가협회 편 <올해의 우수단편 모음>에 《老漁夫와 소년》 수록됨
전작 장편소설 《인간의 욕망》(3권/자유문학사) 출간
중편 《下船》(월간문학 7·8월호 2회 분재)
대동일보에 장편 《비밀의 바다》 연재
한국소설가협회제정 19회 소설문학상수상(작품 《下船》)
○ 1993년 동원산업 소속 <엘스페스> 호 등 10여 척 원양선망선 편승하여 태평양 어로항해 (6개월간)
○ 1994년 창작집 《이상한 바다》(해성) 출간
○ 1994년 《비밀의 바다》 개작하여 장편 《시지푸스의 바다》(상·하/도서출판 삼문) 출간
○ 1994년 단편소설 《흰 코끼리의 항해》(지평의 문학)
○ 1998년 《병무 가이드》(자유문학사) 출간
○ 1999년 단편소설 《외로운 코파맨》(문학과 의식 여름호)
○ 2000년 논문 《21세기 해양문학의 과제》(울산문학 27집)
○ 2000년 단편소설 《워치 업!》(한국소설 겨울호)
○ 2001년 해군사관학교 56기샐도 원양순항훈련함대 편승, 동남아 10개국 방문
○ 2001년 창작집 《외로운 코파맨》
○ 2002년 해군 함대 편승하여 태평양에서 전개된 림팩훈련 참관
○ 2003년 두 차례 해군함대 항해 경험으로 본격 해군소설 《가블린의 바다》(상·하/ 글마당) 출간
단편 《交戰守則》(해양과 문학 창간호) 발표
○ 2005년 단편 《1968년, 印度洋 흐림》(해양과 문학 여름호) 발표
○ 2006년 중편 《漁夫, 바다로 안 가다》(해양과 문학 6호)
자전적 항해기 《불타는 오대양》(현대해양 5월호∼) 연재
○ 2007년 다큐멘터리 《오대양 개척사》 (현대해양 4월호∼)
○ 2008년 단편 《李선장의 바다》(해양과 문학 10호) 발표
○ 2009년 창작집 《漁夫, 바다로 안 가다》출간
○ 2010년 자전적 항해기 《불타는 오대양》 출간
○ 2011년 다큐 《한국 漁民史》 (현대해양 7월호∼)
○ 2011년 단편 《200마일 領海線 附近》 (해양과 문학 16집)
<최종회 / 끝>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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