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9 13:10

이호영칼럼/ 변화무쌍한 우리집 김치맛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어느 집에나 그 집 고유의 김치 맛이 있다. 헌데 그 말이 우리 집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천하일미였다가 어떤 때는 전혀 다른 김치 맛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 같은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 가정마다의 고유한 김치 맛은 전통문화로까지 승격해 존중 받고 있고, 세계시장을 놓고 일본과 벌이고 있는 김치와 기무찌의 정통성 싸움에서도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오늘날이니 우리 집처럼 맛의 전통문화를 못 지켜 나간다는 것은 면목 없는(?) 일이다.

우리 집사람의 변명을 해 준다면 우리 어머니나 장모님의 담백하고 맛있는 서울김치 맛을 제대로 전수받기도 전에 내가 경상도식 김치 맛을 접목시켜 ‘줏대 없는 김치맛’이 돼버린 우리 집 얼치기 김치솜씨 때문이란다.

평생 입맛을 결정짓는다는 초등학교 5~6 학년을 경남 양산에서 보내 6·25 피난 생활에서 쉽게 얻어먹을 수 있었던 경상도식 멸치젓 김치에 길들여진데다 대학 4년을 부산에서 보냈으니 내 김치취향은 그만 경상도식이 돼버렸다.

결혼 후 우리 집사람이 ‘김치제조권’을 인수받은 뒤에는 내가 옆에서 ‘맛있는 경상도식 김치’를 주문한 것이 우리 집 김치 맛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가 됐나보다. 그 죄로 나는 평생 동안 ‘우리 집 맛있는 김치와는 인연이 먼 팔자’로 굳어진 것 같고 결국 나의 ‘얼치기 기술지도(?)’가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집 김치 맛이 별로라는 비밀이 공공연히 유포되자 우리 형수님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치나 깍두기를 ‘땅에 묻은 김장김치’라는 이유로 퍼주기 시작했다. 내 여동생도 “김치를 너무 많이 담아서 남으니까”, 내 처제는 “김치 담그는데 형부생각이 나서”라며 한 통씩 담가준다.

실제 이유는 맛있는 김치를 못 먹고 사는 우리 집 식구들에게 진짜 김치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겠지만 우리 집 자존심을 생각해서 나름대로 다른 이유를 찾는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이것도 비밀이 아닌 공인사항이 돼버리자 친지들의 부인들도 툭하면 몇 포기씩 터놓고 김치를 준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는 일찍부터 농협김치 등으로 김장을 대신하게 됐고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김치 맛을 칭찬해봤자 그것은 집사람에게 가는 칭찬은 되지 못한다. 그게 어느 집 김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우리 집 식구들마저도 새로운 김치를 보면 “이건 어디 김치야?”하고 묻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우리 집사람이 최근 김치메뉴를 개발했다. 총각김치와 달랑무로 만든 깍두기 두 가지이지만 결국은 달랑무 김치 한 가지인 셈이다. 김치 맛이야 어떻던 시어져도 물렁거리지 않고 아작거리는 씹는 맛 만큼은 인정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이점에 착안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것을 먹을 때면 천하일미라도 되는 듯 “엄마 김치 맛은 최고”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모이는 주말이면 가끔 우리 집은 달랑무 몇 단을 사놓고 아이들과 함께 그것을 다듬으며 마치 명절 상차림 하듯 김치담기 행사를 벌이는데, 그 때 마지막으로 우리 집사람이 그것을 버무릴 때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란 병아리 떼를 거느린 암탉과 같이 늠름해 보인다.

그정도 솜씨를 가지고도 아이들에게 찬사를 듣자 자랑스럽게 뽐내는 우리 집사람이 가끔은 신기하게 생각되면서 소비자의 질이 좋은 건지 집사람의 상술이 좋은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우리 집사람은 김치솜씨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숨기지 않고, 또 김치를 주면 아주 고마워하며 받아온다. 이러니 가까운 사람들이 김치를 쉽게 잘 주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것을 보며 여자들이란 김치 몇 포기로도 잔정을 표현하고 나누며 사는 면에서 남자들 보다는 윤기 있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산다고 생각된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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