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 정진한 25년간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오후 6시까지 연구와 강의에 몰두하고 밤 11~12시면 다음날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 선장 출신의 학자가 있다. 해상법 전문가로 바다와 관련한 해운조선업 육성에 힘을 쏟아온 김인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김인현 고려대 교수는 1999년 목포해양대학교 해상운송시스템학부 부교수로 부임한 이후 교단에서 근무한 25년을 마무리하고 지난달 정년퇴직했다. 그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CJ법학관에서 ‘나의 해상법 30년’이라는 주제로 정년 기념 강연회를 열었다.
김 교수는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나온 해기사 출신으로 1982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 산코라인에서 항해사와 선장으로 활동하다가 33세에 해상법 연구에 뛰어들어 고려대학교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해양대학교 부산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연구와 강의에만 전념하는 시계 같은 삶이었다.
학술논문 185편 작성, 피인용지수 1위…석탑연구상 3회 수상
김 교수는 이날 25년의 재직 기간 동안 이뤄낸 연구 업적으로 185편의 학술논문을 꼽았다. 이 중에서 국제전문학술지(SSCI)가 12편, 데이터베이스스코퍼스(SCOPUS)가 5편이다. 25년의 교수 생활 동안 연간 7~8편의 논문을 쓴 셈이다. 다른 연구자들보다 2~3배 많은 분량이다.
또 2017년과 2018년 학술진흥재단의 피인용지수 순위에서 두 번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신뢰도와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실무적인 쟁점과 국제적인 동향을 남들보다 빠르게 파악해 해마다 관련 논문을 꾸준히 작성한 결과다.
더불어 기록하고 싶은 연구 성과로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상관습법 ▲선박충돌 과실비율산정 ▲홍콩대학 법과대학에서 <세월>호 사고와 한진해운 사태 영어 발표 및 SSCI 홍콩 저널 수록 ▲해운법의 독자성 인정 등을 들었다.
김 교수는 평소 해상법이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에만 그칠 게 아니라 한국해운업을 육성·촉진하는 기능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분쟁이란 것이 1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해상법에 관심이 없는 거다. 그렇다 보니 20년 전에 30명이었던 해상 변호사가 지금도 40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해상법이 우리 해운업을 육성시키고 진흥시키는 기능이라는 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을 찾아왔다.”
우리 해상법의 해결책을 찾고 바다와 관련한 해운조선업을 육성하는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갔다. 각종 일간지와 해운 전문 매체 등에 100여 편의 칼럼을 기고했으며,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 수산해양레저법정책연구회, 해사경쟁법연구회, 해운저널읽기 등을 결성했다. 더불어 매주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를 비대면으로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사단법인 바다저자전문가와의 대화는 1000여 명의 회원을 둔 해운물류분야 국내 최대 온라인 강의 커뮤니티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02년 바다의 날 행사에서 근정포장을 받은 데 이어 2014년 심당학술상, 2020년 상사법학회 우수논문상, 2020년 자랑스런 한국해대인상 등을 수상했다. 또 고려대에서 연구 업적이 뛰어난 교수를 교내외에 널리 알리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석탑연구상도 3회 수상했다.
이토록 김 교수가 남들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강의한 이유는 뭘까. 그는 32살 때 선장으로 일하면서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1년 6개월 동안 집에 있으면서 정신 요양을 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려고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던 중이었다. 창문 옆에 앉았는데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에 기장의 모습을 보게 됐다. 조금 잘못하면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는데 기장이 초긴장하면서 최선을 다한 결과 안전히 착륙할 수 있었다. 이후 김 교수는 선장을 하면서 매일 매사에 기장처럼 최선을 다한다면 그런 사고가 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교수 생활을 하면서 매번 주어진 일을 할 때는 그때 기장이 하던 것과 같은 그런 태도로 열심히 성실하게 시간을 많이 들여서 해왔다. 그랬더니 좋은 결과가 나와서 이렇게 명예퇴직을 하게 된 것 같다.”
“선장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으로 해상법 연구 매진”
해상법은 국제적인 학문이다. 국제적인 흐름에서 뒤처지면 우리나라 법을 준거법으로 활용할 수 없다. 김 교수는 해상법을 전파하고 자발적으로 연구하는 교수와 연구진이 많아져야 우리나라가 해상법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는 별도로 민간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구원이 자신의 주제를 가지고 깊이 연구해야 산업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영어로 된 저술들도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해상법을 외국인들이 알 수 있을 거 아닌가.”
김 교수는 명예롭게 정년에 이르도록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상법을 연구하고 강의하게 한 것은 숙명이 된 바다와 선장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과 사명감이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정년퇴직 후에도 고려대학교와 한국해운업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해양 강국을 만들기 위해 뜻을 같이해온 바다를 사랑하는 동지들의 도움도 많았다. 그리고 삶의 뿌리인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고향 영덕과 그 사람들, 그리고 많은 것을 희생해 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15년 동안 교수로 있었던 시절 고려대학교는 큰 울타리가 돼 저와 가족들을 지켜주었다. 앞으로도 이를 잊지 않고 고려대학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더불어 우리 해상법이 해운산업 또 바다 관련된 산업, 조선업을 촉진 육성시키는 기능이 더 극대화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황 원장(왼쪽)이 김인현 교수에게 명예 교수 추대패를 전달하고 있다. |
한편, 이날 고려대학교는 재직 기간 동안 대학 발전과 후학 양생을 위해 힘써온 공로를 인정해 김 교수에게 명예교수 추대패를 수여했다. 이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한국도선사협회, 한국해기사협회, 한국선주상호보험(P&I) 등도 학교와 한국해운업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김 교수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더불어 이철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과 송명달 해수부 차관, 노태악 대법관, 정태순 해운협회 회장, 유동근 한국해대 총장, 김광열 영덕군수 등도 축하의 글을 보내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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