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세제가 일몰되면 국내 해운업계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비상등이 켜질 거란 전망이 나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최근 동향분석 보고서에서 올해 말로 일몰 시기가 다가온 톤세 제도를 다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소배출 규제를 앞둔 데다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으로 업계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가운데 현행 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국제 경쟁력 저하와 국적선의 이탈을 불러올 것으로 경고했다.
톤세제는 해운기업의 영업이익 대신 운항 선박 톤수와 운항 일수 등에 따라 법인세를 산출하는 조세 제도다. 1990년대 해운 선진국들은 자국 선사가 파나마, 라이베리아 마셜제도 등 조세 부담이 적은 편의치적국으로 선박을 등록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상선대를 회복하려고 톤세제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1월에 처음 도입했으며, 5년마다 일몰 기한을 둬 2009년 2014년 2019년 3차례 연장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톤세제를 채택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26개국에 달한다. 선복량 기준 1~10위 국가 가운데 덴마크(대표선사 머스크) 프랑스(CMA CGM) 독일(하파크로이트) 일본(ONE) 대만(에버그린·양밍) 한국(HMM)은 톤세제를 시행 중이며, 스위스(MSC)·이스라엘(짐라인)은 톤세제를 도입하려고 입법 절차에 들어갔다. 해운 강국 중 일반적인 톤세 제도가 없는 국가는 중국뿐이다.
국내 해운업계는 ‘톤세제 일몰 연장’에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존과 동일한 규정으로 다시 연장하거나, 일몰 규정을 폐지하고 영구화하자는 주장이다. 한국해운협회는 지난 1월 열린 정기총회에서 톤세제가 연장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1월29일과 2월1일 여야 정치권에 일몰 연장을 공식 요청했다. 이달 13일엔 세종시 코트야드세종에서 해운 톤세제도 유지 및 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KMI 이호춘 해운연구본부장은 세종시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톤세제 유지를 주장하는 근거로 국적 선사의 경쟁력을 확보를 꼽았다. 이 제도가 선복량 증대와 국적 선원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다. 실제로 톤세제를 도입한 후 2004~2021년 사이 외항선대는 536척에서 1154척으로 2배 이상 늘었고, 내국인 외항 선원은 6932명에서 8238명으로 19% 증가했다. 2022년 기준 외항운송업체 166개 가운데 톤세 적용을 신청한 선사는 55%인 91곳에 달한다. 지난 2021~2022년 해운업계는 절감한 세액 중 일부를 모금해 한국해양진흥공사에 4300억원을 출자하고 발전기금 1300억원을 조성했다.
톤세제를 기반으로 국적 선대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 수출입 화주에게 안정적 수송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선대 증강은 국적 선사의 해외시장 점유율을 제고하고, 해운 호황기에 외국 선사의 운임 인상을 저지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반대로 톤세제 연장이 무산되면 국적 선박은 세금을 적게 내는 편의치적국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KMI는 분석했다.
국적선이 이탈하면 우리나라를 기항하는 선박이 줄고 물동량이 감소해 동북아 허브항만인 부산항도 타격을 입을 거란 예상이다. 톤세제를 도입하고 실제로 국적 중소형 컨테이너선사는 수송 능력이 확대됐으며, 한일·한중 피더항로를 기항하는 선박을 확대하고 노선을 확충했다. 그 결과 2004년과 지난해를 비교했을 때 부산항의 한일항로 물동량은 84만TEU에서 178만TEU, 한중항로 물동량은 130만TEU에서 354만TEU로 늘었다.
이호춘 본부장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평평한 운동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려면 톤세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내용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에 맞춰 글로벌 선사들은 친환경 선박과 저탄소·무탄소 연료 확보에 나섰다.
온실가스 규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국제 해운 전체에 소요되는 비용은 수조원에서 수백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르웨이 선급협회(DNV) 자료에 따르면 친환경 선박 투자비용은 80억~280억달러에 이르고 연료 인프라는 280억~9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해양수산부 또한 지난해 2월, 2030년까지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을 하게 되면 국내 해운사는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이 본부장은 탈탄소화·디지털화에 대한 투자가 해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선제적 조치이자 생존 전략이라고 표현하면서 글로벌 선사들이 그렇듯 톤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재투자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톤세제 적용을 받지 못하거나 톤세율 인상으로 세제 부담이 증가하면 국적 선사들은 글로벌 선사들과 비교해 상대적 열위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의견이다.
그는 톤세제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제도를 영구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5년 주기로 일몰을 적용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영국은 8년,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 몰타는 10년을 기본으로 두고 재신청을 할 수 있다. 또 그리스는 선사의 톤세제 적용이 의무다.
이 본부장은 유럽 국가들이 우리보다 낮은 톤세율을 적용하는 것도 참고할 점이라고 덧붙였다. KMI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톤세율은 우리나라보다 최대 10분의 1 수준에 이를 만큼 낮은 편이다. 또한 해운소득 인정 범위도 금융소득, 자산소득, 판매소득으로 확대 적용해 해운기업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유도하는 추세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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