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5 09:57

알기 쉬운 해상법 산책(2)/ 장기간 미이행된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은 여전히 유효한가

법무법인 세경 최기민 변호사


2280척. 작년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 해역에 침몰되어 있는 침몰선박의 숫자이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매년 20~30건의 선박 침몰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서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침몰선박은 다른 선박의 항행에 지장을 주며, 잔존유의 유출로 인해 유류오염을 발생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침몰선박을 ‘바닷속 시한폭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선박 침몰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해사안전법(제28조), 공유수면법(제6조) 또는 선박입출항법(제40조)에 근거하여 침몰선박의 제거를 명령하는 행정처분이 내려진다.

그러나 모든 침몰선박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심해에 가라앉은 선박은 다른 선박의 항행에 지장을 주지 않고, 잔존유가 많지 않거나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침몰하여 해양오염의 위험이 거의 없는 침몰선박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가급적 침몰선박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동의하지만, 침몰선박을 제거하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굳이 위험성이 없는 침몰선박까지도 모두 제거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실무적으로 행정 관청이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을 내리더라도 선박소유자 등 제거 의무자는 기술적·현실적인 이유로 제거 명령을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 행정 관청이 대집행을 하고 제거 의무자에게 구상을 할 수도 있지만 그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모든 침몰선박을 제거할 수 없고 제거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해양환경관리법은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제거, 인양되지 않은 침몰선박의 위해도를 평가하여 침몰선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해양오염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제83조의2).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이 장기간 미이행되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선박소유자 등 제거 의무자의 입장에서는 행정처분이 존재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제거 명령을 이행하여야 한다는 부담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거 의무자는 그 제거 명령이 존속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선박 침몰 사고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가해자(예컨대 선박 충돌 사고로 인하여 선박이 침몰한 경우 가해 선박 측)에게 장래의 인양 비용(제거 비용)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을까?

가해자가 행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행정처분이 부과되었다면 그 행정처분이 무효로 되지 아니한 이상 피해자는 행정처분을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여야 하며, 행정처분의 이행에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처분 당시에 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처분을 이행하기 어려운 사유가 있어 장기간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행정 관청도 이러한 사정을 참작하여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경우에는 행정처분의 존재뿐만 아니라 행정처분의 이행 가능성과 이행 필요성도 요구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대법 2020년 7월9일 2017다56455 판결). 

위 법리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침몰선박을 제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렵고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여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제거 명령이 나올 당시의 위험 요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제거 명령이 취소 또는 철회될 여지가 있는 경우는 장래의 침몰선박 인양비용 상당의 손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장래의 인양비용 상당이 손해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위 대법 2017다56455 판결).

 


위 대법원 판결은 침몰선박을 제거하는 것이 기술적·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고, 제거 명령이 나올 당시의 위험 요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등의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제거 명령 자체도 취소 또는 철회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물론 처음부터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 무효가 되는 경우에는 제거 의무자에게 장래의 인양비용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행정 관청이 침몰선박의 제거를 명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침몰선박을 제거할 사유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하고, 침몰선박의 상태 및 발견 장소, 침몰선박으로 인한 해양 사고 및 수질 오염의 발생 가능성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므로(공유수면법 제6조 제2항),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이 무효로 판단될 정도로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에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이 무효로 판단된 사례가 나왔다(부산고법 2022년 4월29일 2021누23824 판결). 필자가 필자의 사무실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침몰선박의 선박소유자 측을 대리하였던 사건인데, 수심 120m인 심해에 선박이 침몰한 사안이었다. 

해저 120m에 침몰한 선박을 통째로 인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고 해저에서 선박을 절단하여 인양하는 방법도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침몰선박은 제거 명령이 내려질 당시 해양환경관리법상의 일반관리 대상선박에 해당하는 위해도 평가점수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인양비용으로 1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 관청의 제거 명령은 선박이 침몰한 지 불과 4일 만에 이루어져 행정처분 이전에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웠고, 제거 명령이 정한 제거 기한(74일)도 기술적으로나 사회 통념상 이행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원은 행정 관청의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이 중대하고도 명백한 하자를 가진 당연 무효의 행정처분이라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은 행정 관청이 상고하지 않아 확정되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선박 침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다른 선박의 항행에 지장을 주거나 침몰선박으로 인한 해양오염이 발생하는 등의 공익적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가급적 행정 관청의 행정처분에 따라 침몰선박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실무상 침몰선박을 제거하는 것이 기술적·현실적으로 이행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제거 명령이 기계적으로 내려지고 그러한 사정을 참작하여 행정 관청도 제거 명령의 이행을 강제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행정 관청도 침몰선박에 대한 제거 명령을 내릴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보다 면밀히 조사한 후에 행정처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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