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에도 러시아의 해상무역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즈리스트는 올해 2월 러시아를 출항한 선박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년 대비 10% 감소했지만, 4~5월 빠르게 반등한 뒤 그 이후엔 제재 전과 비교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튀르키예 등과 러시아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면서 무역량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튀르키예 입항 러시아 선박 45% 늘어
러시아의 해상 무역이 경제 제재에 나선 EU와는 크게 줄어든 반면, 튀르키예(옛 터키) 중국과는 크게 늘어나 주목된다.
지난해 3분기(7~9월) EU에 입항한 러시아 선박은 1610척에 달했지만 올해 450척으로 72% 급감했다. 반면 튀르키예에 뱃머리를 댄 러시아 선박은 전년 774척 대비 45% 늘어난 1119척로 크게 늘었다.
로이즈리스트는 “러시아에서 흑해를 통해 튀르키예와 남부 유럽으로 향하는 무역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러시아에서 개인보트업체들이 흑해를 거쳐 튀르키예로 운항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무역량에 기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 역시 올해 3분기 전년 대비 71% 증가한 391척의 러시아 선박이 입항했다. 이 밖에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해상무역은 전년 대비 소폭 줄어든 반면, 일본과는 증가해 대조를 보였다.
로이즈리스트는 “튀르키예와 중국은 2021년 러시아 선박의 최대 수취국으로 전쟁 내내 사업을 강화했다”며 “러시아와 유럽의 사업이 쇠퇴하는 동안 전통적인 파트너들은 모든 곳에서 러시아와 무역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튀르키예는 이상한 국가다. 우크라이나 편에 강하게 섰지만 무역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노선이 없다. 러시아와 함께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튀르키예 등이 원유 수입을 늘린 것도 러시아 해상무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융정보플랫폼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올 들어 튀르키예는 하루 평균 20만배럴에 달하는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등 지난해 같은 기간 9만8000배럴과 비교해 수입량을 크게 늘렸다.
미국 블룸버그는 “튀르키예 중국 인도 등 3개국이 러시아산 원유 구입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동·중국해 향한 러시아선박 두자릿수 증가
해역별로 보면, 극동·중국해로 향한 러시아 선박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즈리스트에 따르면 EU와 영국 미국 등의 제재로 3분기 167개 러시아 항만에서 출항한 선박은 전년 대비 60% 줄었다.
해역별로 보면, 흑해는 22%, 러시아 연안은 9%, 발트해는 21%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러시아 항만에서 아시아 북서부와 유럽 사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호수인 카스피해로 취항한 선박은 33%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핀란드와 무역량이 많았던 브로스니치누와예항은 가동 중단으로 1년 전 196편에 달했던 선박이 올해 3분기에는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EU 회원국인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로 둘러싸인 러시아 칼리닌그라드행 선박은 전년 대비 60% 감소했다.
다만 극동 중국해로 항해한 선박은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피해 중국과의 협력을 한층 강화한 결과로 해석된다.
러시아의 국제 해상 무역은 서방국가의 제재 체제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대체 무역 파트너를 찾았다는 평가다.
알제리 불가리아 중국 그루지야 인도 멕시코 몰도바 슬로베니아 남아프리카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 모두 올해 들어 지난해 보다 더 많은 수의 러시아 선박을 입항시켰다.
로이즈리스트는 “특히 튀르키예와 중국은 올해 2분기 러시아 전체 선박 중에서 각각 26%와 12%를 입항시켰다. 2021년 이 수치는 19%와 7%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러시아를 향한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가 우호 국가와의 교역을 늘리면서 크게 효과를 거두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탄불에 본사를 둔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보스포러스옵서버의 유륙 이삭은 “러시아는 경제 상황에 적응하고 있으며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무역을 계속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한 곳에서는 이익을 못 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돈을 더 벌어 이익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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