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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0 09:06

논단/ 해상보험에서 보험자의 면책사유인 ‘감항능력 결여’와 인과관계

정해덕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법학박사)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영국해상보험법상의 근인설에 따른 근인관계보다 그 범위가 넓은 광의의 개념이라는 최근의 판례를 중심으로

<12.20자에 이어>

4. 영국 해상보험법상 기간보험에서의 감항능력 결여
영국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의 법리에 의하면 선박기간보험에서 감항능력 결여(감항능력 흠결, 결핍, 부족, 부재, 불비, 불감항)로 인해 보험자가 면책되기 위해는 손해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어야 하고, 피보험자가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감항능력의 결여와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 즉 손해의 일부나 전부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이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돼야 하되, 이러한 요건에 대한 입증책임은 보험자가 부담한다(대법원 2002년 6월28일 선고, 2000다21062 판결).

그리고 면책요건으로서 피보험자의 악의(privity)는 영미법상의 개념으로서 피보험자가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의 원인이 된 사실뿐 아니라, 그 원인된 사실로 인해 해당 선박이 통상적인 해상위험을 견디어낼 수 없게 된 사실, 즉 감항능력이 결여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감항능력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아는 것(positive knowledge of unseaworthiness)뿐 아니라,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turning the blind eyes to unseaworthiness)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Ⅲ. 해상보험과 인과관계

1. 부보위험(peril insured against)과 인과관계

해상보험에 있어서도 보험목적(the subject matter insured)이 멸실되는 등의 손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보험자는 그 손해와 부보위험(담보위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보험금지급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보험법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학설로는 상당인과관계설과 근인설(가까운 원인설)이 있는바, 전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륙법계의 통설이고 후자는 영국의 통설로서 영국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제55조)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해상보험계약실무는 그 준거법을 영국의 법률과 관행을 따르도록 하고 있는(subject to English law and practice) 것이 보통이므로 보험증권에서 달리 약정하지 않는 한 해상보험에 있어서의 손해와 부보위험 사이의 인과관계는 영국의 근인설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근인설(causa proxima-proximate cause)
보험자는 부보위험에 근인해 발생한 손해(loss proximately caused by a peril insured against)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부보위험에 근인해 발생하지 아니한 손해에 대해는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영국에 있어서도 근인(proximate cause)의 개념에 대해는 판례의 변천이 있었으나 1918년의 Ikaria호사건에서 진정한 근인은 효과에 있어 근접한 원인이라고 판시한 이래, 인과관계는 손해에 영향을 준 유력한 원인(dominant effective cause)을 판단기준으로 하고 여기서 유력한 원인은 현실성(reality), 유력성(predominance) 및 유효성(effeciency)을 요건으로 하는 소위 최유력조건설로 정립됐다고 할 수 있다.

3. 복수위험의 인과관계 문제
해상보험은 복수의 위험을 바탕으로 한 보험계약에 그 특징이 있으므로 복수의 원인이 경합하는 경우 그 전부가 부보위험에 해당하면 별문제가 없으나 그 중 일부만이 부보위험인 경우에는 어떤 원인이 근인으로 인정되는가에 따라 보험자의 보상책임이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특히 복수의 인과관계에서는 부보위험과 면책위험(면책사유) 사이에 있어서의 인과관계가 문제된다. 보험자가 보상책임을 지기 위해는 부보위험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할 것을 전제로 하지만, 반대로 보험자가 면책을 주장하기 위해는 면책위험과 손해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함을 요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근인설의 입장에서 사고에 대해 가장 유력한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나 구체적 사안에서 무엇이 근인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이에 관한 영국판결로는 손해의 원인으로 군사작전으로 인한 소등과 좌초가 경합된 경우 원칙적으로 좌초가 근인이라고 한 1863년의 Ionides v Universal Marine Insurance 판결과 선장의 밀수행위로 선박이 억류된 경우 근인은 억류이고 밀수행위가 아니라고 한 1883년의 Cory v Burr 판결 등이 대표적이며, 면책위험인 불감항성과 부보위험인 악천후의 다른 두개의 원인이 사고에 거의 대등한 정도로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보험금지급을 명한 1987년의 Miss Jay Jay 판결과 운임상실은 해상위험자체는 아니며 시간상실의 결과이므로 면책약관에 시간상실을 면책위험으로 규정한 이상 보험자는 면책된다는 1977년의 Naviera de Canarias v Nacional Hispania Aseguradora 판결도 일응의 기준이 될 것이다.

4. 면책위험과 비담보위험의 구별문제
해상보험약관은 일정한 사유에 대해는 보험자가 보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면책약관(exclusion clauses)을 두는 것이 보통이며, 면책약관상의 면책사유는 보험사고의 원인이 된 경우에 한해 보험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소위 면책위험과 인과관계의 유무에 관계없이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소위 비담보위험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사고가 비담보위험에 해당한다는 입증책임은 보험자에게 있으나, 일단 비담보위험에 해당하면 설사 보험사고가 비담보위험에 전혀 관계없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보험자는 책임을 면한다. 즉 비담보위험과 보험사고는 인과관계가 필요하지 아니하다. 이러한 면책위험과 비담보위험의 구별과 관련해, 우리나라 대법원 1995년 9월29일 선고 93다53078판결은 어선보통공제약관상의 면책조항인 불감항사유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요부를 판단하면서 불감항(감항능력의 결여)에 따른 보험자의 면책을 규정한 약관조항을 부보조건(담보)으로 해석해 손해발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의 유무에 불구하고 면책된다고 판시함으로써 약관해석에 있어 면책위험과 비담보위험을 구별해 불감항을 면책위험이 아니라 비담보위험으로 해석한 바 있다. 
위 판결은 종래의 자동차보험에서 무면허운전이 면책되는 이유는 무면허운전이라는 중대한 법령위반의 상황을 중시한 것이므로 무면허운전과 사고발생과 사이에는 인과관계를 요하지 아니한다는 대법원 1991년 12월24일 선고 90다카23899전원합의체판결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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