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 보험이 어떤 보험인지 궁금해요.”
최근 ‘IG클럽(International Group of P&I Club, 전 세계 P&I보험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는 해외 13개 P&I 보험사 협의체)’의 회원사 중 하나인 “The London P&I클럽”이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초대되어 다녀왔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주한영국대사관의 고풍스러운 건물의 분위기에 취해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운업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에서 종사하는 분들은 보통 ‘P&I 보험’이 어떤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인지조차 낯설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기고에서는 P&I보험이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께, 단국대학교 법과대학의 박영준 교수님의
*논문을 참조해 P&I 보험의 연혁과 법적 성질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드리려고 한다.
해상보험의 초창기에 로이즈(Lloyd’s) 등 영국 내 영리보험자들은 선박소유자들이 부담하게 될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보험인수를 거부하거나 고액의 보험료를 요구했기 때문에, 선박소유자들이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스스로 일종의 공제조합인 P&I클럽을 만들었고, 여기에서 영리보험이 담보해주지 않는 해상위험에 대해 상호 구제했던 것에서부터 P&I 보험이 시작했다.
P&I 보험의 ‘P’는 Protection(보호)이고 ‘I’는 Indemnity(보상)으로, ‘P’는 선박운항에 따른 인명의 손상에 대한 배상책임과 선박충돌로 인해 발생한 배상책임 중 선박보험으로 담보가 불가능한 부분 또는 넘는 부분을, ‘I’는 선박 운항에 따른 적하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전자는 보호조합(Protection Club)에서, 그리고 후자는 보상 조합(Indemnity Club)에서 보험을 담보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존의 P&I 보험이 담보하는 담보위험 이외에도 많은 위험들이 추가됐다. 이에 양 조직이 하나의 조직으로 합병돼 업무가 단일화됐고, 보호위험(Protection Risk)과 보상위험(Indemnity Risk)으로 나뉘어 있던 담보위험부문도 혼합돼, 양자의 구분은 현재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오늘날에 와서는 통합된 P&I 보험과 그 보험자인 P&I클럽만 존재한다.
이와 같은 연혁의 결과로 P&I 보험사는 오늘날까지도 영문으로 ‘Club’이라는 단어를 표시하고 있고 우리나라 선주상호보험조합법에서도 ‘조합’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P&I 보험의 법적 성질을 ‘보험’이 아닌 ‘공제’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만약, P&I보험의 법적 성질을 ‘같은 직장, 직업 또는 지역에 속하는 사람들이 조합을 만들어 조합원 또는 그 가족 등의 길흉사가 있을 때에 공제금을 지급하는 상호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인 ‘공제’의 한 형태로 본다면, 보험계약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거나 이들 단체의 사업이 보험업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주상호보험조합법 제2조에서 “선주상호보험조합은 선주등이 선박을 운항함으로써 발생하는 책임 및 비용에 관한 상호보험인 손해보험사업을 하기 위하여 이 법에 따라 설립된 조합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 P&I보험이 그간 손해율을 계산해 선주에게 보험료를 제시하는 ‘고정보험료(fixed premium)’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 등의 사실에 비춰 보면, P&I보험의 법적 성질을 그 주체의 명칭이 조합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제’로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된다.
대법원도 이와 유사한 취지로, 수산업협동조합법에 의해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가 행하는 선원보통공제(대법원 1998. 3. 13. 선고 97다52622 판결), 자동차운송사업조합이나 자동차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하는 공제사업(대법원 1995. 3. 28 선고 94다47094 판결) 등의 법적성질에 대해 “가입자가 한정돼 있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점에서 보험법에 의한 보험과 다르기는 하지만 그 실체는 일종의 보험으로서 상호보험과 유사한 것”이라고 판시해, 공제조합의 공제를 성질상 상호보험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상법상 보험계약법을 유추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상법 제644조가 개정돼 보험편을 준용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했다. 즉, 법률상 명문으로 상호보험 이외에 P&I보험 등 ‘공제’ 기타 ‘이에 준하는 계약’에도 보험편 규정을 준용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보험계약 법리의 적용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박영준, P&I 보험의 법적 성질, 보험법연구 7권 1호(2013) 참조
▲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경험을 쌓았다. 배에서 내린 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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