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자에 이어>
나.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수령했다는 취지의 기재와의 관계
선하증권에 운송인이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in apparent good condition)로 수령한 취지로 기재하고 있는 경우 부지약관의 효력이 문제된다. 이에 관해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수령했다는 취지의 선하증권 기재는 설사 운송물의 품질에 대해 모른다는 취지의 부지약관이 있더라도 이를 무효로 한다(override)는 것이 영국법원의 판례라고 한다(The Skarp(1935) p.134, Carriage of Goods by Sea-John Wilson p.132-135 참조).
상법 제854조 제1항에 의하면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선하증권에 운송물이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됐다는 기재가 있는 무고장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인은 그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될 것이다.
그러나 선하증권에 기재돼 추정을 받는 ‘운송물의 외관상태’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검사하면 발견할 수 있는 외관상의 하자에 대해만 적용되는 것이지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발견할 수 없는 운송물의 내부 상태 등에 대해도 위 추정규정이 적용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무고장 선하증권이라도 거기에 이른바 부지약관의 기재가 있다면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인도했다는 점은 운송인에 대해 손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 부지약관의 남용과 효력의 제한 문제
운송인이 자신이 운송할 운송물을 수령하면서 그 화물을 내가 검사, 확인하지 않았으니 책임이 없다고 기재함으로써 무조건 면책이 허용된다면 선하증권에 터잡은 신용장거래 및 국제 결제관계는 변경될 수 밖에 없고, 무책임한 운송인은 보호하면서 선하증권을 믿고 거래한 선의의 화주를 보호하지 아니하는 이상한 결과가 될 수 있다.
화주와의 적절한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아니한 부지약관이나 운송인의 지위남용에 기한 면피용 부지약관은 무효이며, 운송인이 운송물 적입시나 인도시 운송물을 조사·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화물검사의무를 충실히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부지약관은 무효가 돼 면책을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Ⅲ. 대법원 2017년 9월7일 선고, 2017다234217 판결 평석
1. 사실관계
위 대법원 판결의 1심 판결에 설시된 기초사실은 다음과 같다.
(1) A회사는 인도의 B회사와 사이에 A회사가 발주해 C회사가 제작한 500톤 성형절단설비(Blanking Line) 부품 총 19포장(Package), 158,400㎏(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 한다)을 미화 2,417,143달러에 수출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 피고와 2012년 9월1일자로 수출입 복합운송 등에 관한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주선인 D회사가 A회사로부터 이 사건 화물의 해상운송을 의뢰받아 피고에게 운송업무를 위탁하면서 포장명세서에 포장별 화물의 종류와 가액이 명시된 포장별 금액표를 첨부했다.
(3) 피고는 2013년 2월8일 마산항에서 이 사건 화물을 선박 크레인과 육상 크레인에 의해 ‘다이아몬드 스타’호에 선적하고, 화물칸 내부로 적부한 후 E검정회사로부터 이 사건 화물은 관례적인 포장에 따라 포장돼, 외관상 정상적인 상태에서 선적, 적부 및 고박을 마쳐 목적지까지의 인도에 적합하다는 취지의 검정보고서를 받아, ‘송하인A회사, 수하인 B회사, 통지처 F회사, 양하항 인도 첸나이’로 기재한 무고장(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됐다) 선하증권을 발행했는데, 위 선하증권 표면에는 부지 문구 및 “SURRENDER” 문언이 기재돼 있다.
(4) A회사는 2013년 2월6일 원고와 사이에 이 사건 화물에 대해 해상운송상의 위험을 담보하기 위한 적하보험계약 [피보험자 : A회사, 보험금액 : 미화 509,142.91달러(미화 462,857.10.달러 × 110%)]을 체결했다.
(5) 이 사건 화물은 2013년 2월21일경 인도 첸나이항에 도착했고, 2013년 2월22일경 하역작업을 하던 중 그 중 상자번호 5번의 이 사건 5번 화물의 포장상자가 부서진 상태에서 양륙됐는데, 위 5번 화물은 비틀림, 파손 등으로 인한 훼손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수리 불능인 상태가 됐다.
(6) 이에 원고는 손해사정인을 통해 이 사건 5번 화물의 훼손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는데, 손해사정인은 2013년 2월28일 검정을 마친 후 2013년 3월1일 아래 내용의 검정보고서를 제출했다.
*포장 : 5번 화물(레벨러)이 통나무 목재 팔레트 위에 위치해 팔레트에 고정됐고, 비닐포장지와 호일로 완전히 포장돼 있었으며, 봉인 후 합판 상자로 닫혀 있었음.
*검정 : 피보험자 통관직원은 검정을 위해 포장 없이 보호되지 않은 상태로 레벨러가 담겨 있다고 1상자를 제시했는데, 손상된 상태의 기계에 대한 관측결과 ‘5번 화물 위쪽에 고정된 모터는 창고에서부터 손상된 것으로 발견됐고, 원통코일밸브, 판형 금속판, 파이프 연결부분, 컨트롤 패널, 계량기/압력계 등이 구부러지거나 원래 위치에서 이탈되거나 튀어나오고 갈라져 손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손상 원인 : 선적/양하/해상운송 중 거친 작업처리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7) D회사는 2014년 2월13일 피고와 사이의 운송계약에 따른 이 사건 사고 관련 일체의 손해배상채권(미화 313,768.06달러 및 그 지연이자)을 B회사에 양도한 다음 2014년 2월20일 채권양도의 취지를 피고에게 통지했고, 원고는 2014년 2월17일 B회사에 이 사건 사고로 인한 보험금 337,143,780원(미화 313,768.06 달러)을 지급했다.
2. 재판진행경과
가.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년 1월13일 선고, 2014가단37567 판결
원고는 보험금 지급 후 보험자 대위의 법리에 터잡아 이 사건 5번 화물의 손상은 운송인인 피고의 선적, 적부, 운송, 양륙 도중 취급 부주의로 발생했으므로 피고가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책임 또는 불법행위책임에 기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했으며, 위 1심판결은 손해사정인이 제출한 검정보고서에 기초해 화물손상이 포장 불충분으로 인한 것이라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고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나.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년 5월11일 선고, 2016나5565판결
피고의 항소에 따라 진행된 2심판결(원심판결)은 이 사건 손상원인에 관한 감정인의 감정결과 등을 토대로 이 사건 화물손상은 피고의 화물취급 부주의로 인한 것이 아니라 보험자의 면책사유인 ‘보험개시 전 이루어진 포장 불완전’으로 인한 것이라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1심판결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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