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기기 설치를 두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항 노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항만 자동화 추진의 필요성과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부딪히며 합의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거로 예상된다.
최근 영국 로이즈리스트와 LA타임즈 등 외신에 따르면, LA시 에릭 가르세티(Eric Garcetti) 시장은 지난 20일 LA항최대 컨테이너터미널 ‘피어400(Pier 400)’의 자동화 항만장비 도입 승인을 한 달 간 유예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르세티 시장은 “협상 과정이 복잡하게 흘러가는 만큼 더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이번 승인 유예의 배경을 설명했다.
항만위원회는 시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 달 간 유예기간을 가진 뒤 승인 투표를 재실시하기로 했다. LA항만공사는 피어400에서 사용하고 있는 야드트랙터를 전기차량으로 교체하는 계획이 포함된 ‘연안 발전 허가’의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이 통과되면 현재 터미널에서 운영 중인 100여대의 디젤 연료 야드트랙터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전기차량으로 교체된다. 투표일 유예는 지난달 21일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달 가르세티 시장은 터미널운영사인 APM터미널과 항운노조 ILWU 관계자들과 함께 이 사안에 대해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한 차례 투표를 미룬 바 있다.
항운노조는 이 계획이 승인될 경우 야드트랙터 운전자 등 관련 직업이 사라지게 된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고 있다. 지난 20일 항운노조원 2000여명은 자동화 시설 도입 반대 시위를 벌였다.
ILWU의 개리 헤레라(Gary Herrera) 부대표는 “운영사와 항만당국은 자동화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항만근로자들이 발생할 경우 지역을 넘어 국가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APM터미널에 자동화 설비가 도입될 경우 LA와 롱비치항의 남은 13개 부두에도 자동화 시설이 도입돼 수백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에 대한 노조의 반발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들은 2008년과 2015년에 ‘자동화 시설 도입을 허가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노사계약서에 서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에 대해 “우리는 선박대형화로 인한 작업의 어려움을 보조해주는 수준의 자동화를 찬성한 거지,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자동화를 찬성한 게 아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자동화 시설 도입을 추진하려는 APM터미널의 모기업인 머스크와 항만업계 관계자들은 “자동화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는 결국 LA항의 시장점유율을 빼앗기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전기차 교체는 LA와 롱비치항이 추진하는 친환경 항만 조성을 위해 진행되는 사업의 일부로, 차량 교체에 드는 약 140억달러(16조 1000억원)의 비용을 자동화를 통한 비용절감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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