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하반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보복 사태에서 촉발된 중국발 ‘한한령’으로 크루즈산업이 얼어붙은 지 2년이 넘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한한령이 곧 풀릴 것이라는 전망과 기대를 높이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 크루즈산업이 활기 넘치기 시작했던 2016년 당시 한국을 방문한 크루즈관광객 중 중국인 비중은 73%에 달했지만, 지난해엔 겨우 3%에 그쳤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크루즈산업 육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크루즈 관광 활성화를 위한 터미널 인프라 확충 ▲크루즈선박 내 오락거리 개발 및 국적 크루즈선사 경쟁력 제고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크루즈산업은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상승가도를 달리다 이후 중국여객의 발길이 끊기며 폭삭 주저앉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를 찾은 크루즈관광객은 225만8000여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1만8000명으로 2년만에 90% 급감했다.
부산과 제주, 인천 등 주요 크루즈항만에서도 중국발 크루즈노선이 줄줄이 예약이 취소되는 상황이 계속됐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지역은 제주다. 2016년까지만해도 총 507척 선박, 120만9000여명의 여객이 제주를 찾았지만, 지난해엔 20회 2만1000여명으로 입항 실적이 대폭 가라앉았다. 부산과 인천도 마찬가지다. 부산항은 2016년 209척 57만3000여명에서 지난해 84척 14만2000여명으로 미끄러졌다. 인천항 역시 2016엔 62척 22만5000여명에서 지난해 17척 3만5000여명으로 감소했다.
인천·부산 부두 새단장…크루즈 유치 적극 행보
2년간 지속된 크루즈 불황을 타개하고자 부산과 인천 등 국내 주요 크루즈부두에서는 인프라 재정비와 선박 유치 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인천항은 오는 4월26일 크루즈터미널의 공식 개장을 앞두고 크루즈항 육성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터미널은 약 5만6000여㎡ 대지에 지상 2층 규모로 22만5000t급 초대형 크루즈선이 15만t급 선박과 동시에 접안 가능한 국내 최대 부두시설을 보유했다.
IPA는 개장일에 맞춰 인천항을 모항으로 출항하는 세계적인 크루즈즈선사 코스타크루즈의 한-중-일 노선 유치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11만t급 선박 <코스타세레나>호가 인천과 중국 상하이, 일본 후쿠오카를 거쳐 부산으로 운항하는 노선이다. 또한, 이 선박은 10월 또 다시 인천항에서 출항해 한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개국 기항도 앞두고 있다. IPA 관계자는 “10월 4개국 프로그램이 확정될 경우 국내 최초 기획 노선이 된다”며 “모항 유치는 정기적인 선박 수리, 급유, 선내 식자재 공급과 인력 교체, 숙박 이용 등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기항보다 훨씬 커 올해 크루즈터미널 개장을 발판 삼아 (모항 유치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6년까지 인천항을 기항한 선박들은 제대로된 크루즈부두가 없어 신항과 북항의 화물 터미널에 기항한 후 별도로 CIQ(세관 출입국관리 검역)를 진행하는 등 불편함이 많았다. 입출국 승객들이 빠르고 안전하게 크루즈에서 타고 내릴 수 있는 터미널인프라는 크루즈 모항 유치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IPA 관계자는 “신속한 출입국 절차를 위해 미국 마이애미항 등 세계 유수의 크루즈터미널을 벤치마킹하며 CIQ 동선까지 세심히 고려했다”며 “수도권에 위치한 장점을 살려 ‘플라이앤드크루즈’ 여객 유치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인천시, 관광공사와 관광프로그램 개발에도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기준 올해 인천항에는 총 18척 입항, 5만명 내외의 여객이 방문할 전망이다.
부산의 경우 지난해 11월 영도구에 위치한 국제크루즈부두 확장 공사를 마쳤다. 기존 8만t급에 맞춰 설계된 부두가 전체 길이 440m, 폭 45m로 확장돼 22만t급 크루즈선이 접안 가능한 규모로 탈바꿈했다. 다만, 부두 확장에 맞춰 국제크루즈터미널도 증축 및 신규 설치를 위한 실시설계에 돌입했다. 2023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이 추진돼 터미널 및 부두의 정식운영은 아직 중단된 상황으로, 올해엔 4척의 크루즈선만 영도부두 입항이 예정돼 있다.
부산은 지리적 여건으로 일본과의 원활한 연결이 장점이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높은 크루즈관광지인 일본은 크루즈선에도 적용되는 ‘카보타지룰’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을 기항지로 포함한 노선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부산항의 올해 첫 모선은 팬스타앤터프라이즈가 용선한 5만7000t급 크루즈선 <코스타네오로만티카>호로, 다음날 16일 부산에서 일본과 러시아를 향한다.
BPA 관계자는 “부산은 일본과 연결된 준모항 상품이 많아 모항 비중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다모항 체제 구축을 위해 이달 내 대만항만공사 측과 업무협약 체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모항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등 유인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아시아, 크루즈 신시장 대두…한국은 갈 길 멀어
아시아는 신흥 크루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크루즈선사협회(CLIA)에 따르면, 전체 크루즈시장에서 아시아의 비중은 10.4%로, 유럽시장을 따라잡았다. 특히 중국은 아시아 크루즈의 핵심이다. 지난해 중국인 여객은 전체 아시아 크루즈노선 여객의 59%를 차지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크루즈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한국인 여객은 전체 크루즈시장의 1%에 그쳤다. 크루즈선 기항 횟수는 2601회인 일본과 1012회인 중국보다 현저히 낮은 134회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곳곳에 마련되는 크루즈부두와 국제여객터미널의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인천, 부산에 들어선 22만여t급 부두시설도 현재 국내에 들어오는 크루즈선박 규모가 최대 16만여t급인 점을 고려하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항만인프라 구축과 동시에 크루즈산업의 국내 안착을 위한 관광상품 개발, 관광지 연계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청운대학교 김학수 교수는 “지난해 국내를 여행한 외국관광객 중 해상을 통한 경우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며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과 치밀한 관광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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