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뒤를 잇는 미국 멕시코 캐나다 간 무역협정(USMCA)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과거 미국이 추진하던 관세를 철폐하는 내용의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다양한 국가가 하나의 합의안을 따르는 다자주의식 무역협정과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국가 대 국가로서의 새로운 ‘무역협정’을 맺어, 자국에 유리하도록 재협상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제프리 쇼트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7일 열린 글로벌 신통상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상품무역수지를 균형으로 맞추기 위해 국가별 양자무역협정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여러 다자간 협정을 1940년대부터 맺어왔지만 모두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이라는 분석이다.
주요 교역국과의 상품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하다는 점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지난해 7960억달러(한화 약 883조9580억원)로 미국 GDP의 4%에 해당한다. 이 중 중국이 3760억달러(약 417조5480억원)로 절반을 차지했다.
특히 제조업이 미국 무역적자의 94%(7500억달러)를 차지하며, 중국이 56%(4210억달러)에 달했다. 대미 최대 무역흑자국가는 중국을 이어 멕시코 일본 독일 한국 캐나다 순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30억달러의 대미무역흑자를 기록했으며, 제조업에서 350억달러,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에서 210억달러의 흑자를 각각 기록했다.
올해의 경우 미국 통계청이 1~8월 자료를 바탕으로 집계한 결과, 856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거둘 전망이다. 이 중 중국이 3920억달러를 차지해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제프리 쇼트 선임연구원 |
외교는 ‘동맹’ 통상은 ‘각자’
쇼트 연구원은 USMCA가 다자체제로 출범했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미국의 핵심 산업은 협상조건이 국가별로 제각각이라고 설명했다. 쇼트 연구원은 “미국이 추진 중인 USMCA는 국가 간 무역협정이지만, 자동차를 제외한 주요 조항들은 기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비슷한 게 많다”고 분석했다.
덧붙여 “NAFTA 재협상은 자동차산업 때문에 시작됐지만 (USMCA는) 노동 국영기업 전자상거래 환경 환율 세관 등 그 어떤 FTA에서도 나오지 않는 내용들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며 “투자자 입장에서 일몰조항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때문에 불확실성은 높은 편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동맹국과의 세력 강화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북미를 USMCA라는 하나의 체제에 묶어 동맹관계는 유지하면서도, 통상문제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게 협상한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안덕근 교수는 “미국은 USMCA 일본 유럽연합과 각각 양자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주요 국가들과 경제연합(블록)을 만들어 대 중국 통상압박을 본격적으로 할 거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이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TPP를 탈퇴하고 USMCA를 주도하면서, 일본을 포함한 11개국은 TPP를 ‘CPTPP’로 명칭을 바꿨다. 오는 30일 본격 발효를 앞둔 가운데, 우리나라의 CPTPP 가입 실효성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전개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미중무역분쟁이 심화되고 있고, 미국이 의도하는 새 통상 질서의 상당 부분이 CPTPP에 포함된 만큼 한국도 이 협정에 동참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TPP 대신 USMCA를 주도하는데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경쟁국가 중 하나인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도 상존한다. 특히 국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주춤한 요즘 CPTPP를 가입하는 게 자칫 우리나라에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안 교수는 “자동차산업이 굉장히 어려운 현 시점에서 일본과의 FTA나 다름없는 CPTPP를 가입해야 할지, 아니면 연기해야 할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혹시나 일본이 이 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어렵게 가입한 우리나라로서는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덧붙여 “앞으로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할지, 중국과의 FTA를 유지하는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쇼트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쇼트 연구원은 “한국이 CPTPP에 가입해 제1타자로 나선다면 선두주자로서 이득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 보호무역 내년에도 계속될 것”
미국 트럼프 정부의 주요 수출국에 대한 통상정책은 지금처럼 굳건할 거란 전망이 제기됐다. 하원이 정부의 주요 정책을 반대하고 있지만 통상정책만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쇼트 연구원은 “(미국 의회에서) 하원은 민주당이 장악했는데, 민주당이 통상부문에서 트럼프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중국에 강경하게 조치하는 걸 찬성하고 있는 것이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지지기반이 노조인데, 이것이 민주당의 지지기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무역확장법 232조는 계획대로 진행될 거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철강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율을 부과했으며, 최근 자동차와 관련 부품이 조사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향후 조선이나 전자기기 반도체까지 범위가 확장되면 피해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쇼트 연구원은 “의회에서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한 터라, 232조치는 계획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문에 대해 의회와 등을 돌리지 않는 이상 보호무역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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