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이은 해운 지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해운산업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초순께 국내 컨테이너선사들로 구성된 한국해운연합, 즉 KSP를 결성한 데 이어 월말엔 해운산업 종합지원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을 확정지었다. 두 정책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붕괴된 우리나라 해운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KSP는 14개 국적 컨테이너선사가 참여한 한국형 해운 컨소시엄으로 정식 출범했다. 해운산업 컨트롤타워인 해양수산부는 KSP를 통해 국내 정기선사들의 침체된 경영 환경을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운임 폭락으로 수익성 악화의 주범이 된 동남아항로 경쟁 구도를 개선하는 한편 항만 인프라 확보도 KSP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는 구상이다.
선사들은 한국-베트남·태국 등 동남아항로 주요 구간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베트남과 태국은 8개 국내 선사들이 10여개 노선을 운항하며 각축을 벌이는 대표적인 공급 과잉 시장으로 꼽힌다. 한일항로에선 고려해운 동진상선 장금상선 천경해운 흥아해운 등이 배를 띄우고 있는 규슈 노선에 메스가 가해질 전망이다.
KSP 회원사와 해외 터미널 투자 사업도 함께 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해수부는 현재 싱가포르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터미널 투자를 모색 중이다. 항로 합리화가 경영 안정이 목적이라면 터미널 투자는 기업들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지원책이다.
해양진흥공사는 정부의 이 같은 해운 재건 구상을 배후 지원하는 기능을 맡게 된다. 특히 선사들의 선박 현대화와 해외터미널 인수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금융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아울러 해운기업의 회사채 발행 보증, 정부에서 도입할 예정인 국가필수해운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에도 구원투수 역할을 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양진흥공사법은 현재 국회 상임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공사 설립을 마무리 짓는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해운 재건 정책이 구체화되면서 한편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 정책의 방향이 지나치게 대형업체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선사 사이에선 KSP를 두고 현대상선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등 원양선사와 근해 빅3 지원책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시선이 감지된다. 자신들은 대형선사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현대상선과 장금상선 흥아해운은 KSP 출범 이후에도 연초 결성한 HMM+K2 컨소시엄을 그대로 유지한다. 최근 세 선사는 하이퐁항로 공동 개설을 결정했다. 기존 사업 파트너였던 천경해운 동진상선 남성해운 등엔 계약 해지가 통보됐다. HMM+K2 선사를 두고 정작 KSP 차원의 항로 합리화 논의는 뒷전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뿐만 아니다. 현대상선은 공격적인 영업을 배경으로 동남아항로 점유율을 두 자릿수대로 끌어 올렸다. 회사 측은 2분기 아주시장 물동량이 95%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원양선사가 근해시장 공략에만 골몰한다는 중소선사의 볼멘소리가 커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반면 동영해운과 범주해운이 신생선사인 SM상선과 손잡고 하이퐁항로를 개설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해수부가 KSP 체제를 이유로 노선 신설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중소선사 일부에선 해양진흥공사의 금융 지원도 대형선사 위주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31일은 한진해운 사태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부의 해운 지원책이 전방위적으로 가동되는 건 쌍수를 들어 반길 만하다. 해운 재건 계획은 꼭 필요하고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역차별을 받는 곳이 생긴다면 그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기업들과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소통해야함을 의미한다. 정부의 밀도 있는 행정력을 기대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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