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권 주요 항만들의 전 세계 컨테이너 처리실적 상위권 독식은 여전했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즈리스트가 발표한 2015 세계 100대 항만 순위에서 중화권 지역 항만들이 상위권을 휩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실적은 성장세가 한풀 꺾이거나 대폭 줄어들었다. 세계 경기 침체로 무역량이 줄어든 데다,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선사들이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경쟁적으로 도입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화권 항만, ‘톱5’ 지위 힘겹게 유지
세계 1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국 상하이항이 차지했지만 위태로웠다. 처리량 성장세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 항만들의 경쟁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상하이항의 물동량 처리실적은 전년대비 3.5% 증가한 3653만7000TEU에 그쳤다. 상하이국제항만그룹(SIPG) 관계자는 “세계 경제 침체와 무역량 감소로 선사들의 경영에 어려움이 있는 데다 항만이용료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며 3중고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성장률 회복도 쉽지 않아 보인다. SIPG는 신성장 동력으로 환적 서비스를 꼽았지만, 전체 컨테이너 환적 물량의 6%를 겨우 채우고 있을 뿐이다. 싱가포르와 홍콩보다도 낮은 편이다. 경쟁 항만인 닝보항과 부산항도 환적물량 끌어올리기에 열을 올리며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상하이자유무역지대의 불완전한 개방과, 외국적 선사에 대한 환적 서비스 거부 등이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물동량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지만 항만 인프라 투자는 늘어나고 있다. SIPG는 타이창, 난징, 우한, 주장, 충칭시 등 11개의 피더 항만에 투자했다. ‘양쯔강 전략’으로 불리는 이 투자로 상하이항은 지난해 200만TEU를 추가로 처리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630만TEU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 자동화 터미널에 128억위안(21억달러)을 투입해 빠른 하역 서비스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화물 유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위는 싱가포르가 차지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3092만2300TEU를 처리해 전년 3387만TEU보다 8.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해양항만공사는 “아시아-유럽 노선에서 물동량 처리 실적이 악화한 것이 주요했다”며 “전략적제휴그룹(얼라이언스)으로 물량이 재분배되고, 저유가로 직항노선이 증가하면서 환적 물량이 감소해 전체 컨테이너 처리량 감소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PSA 인터내셔널 그룹 탄총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는 세계 경기 침체로 무역량이 줄어들었다”며 “선복 증대, 공급과잉, 선사얼라이언스 재편,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하반기에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고 전했다.
3위에는 중국의 선전항이 올라 중국 항만의 저력을 보여줬다. 선전항은 지난해 2420만4천TEU를 처리했지만 전년 2403만7천TEU 대비 성장률은 0.7% 성장에 그쳤다. 무역량 감소와 주요 항만들의 경쟁력 강화에 선전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광둥지역의 수출입은 지난해 3.9% 떨어졌다. 치솟는 인건비와 경기 침체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폐업했다. 인접한 항만들이 한정된 물량을 놓고 제로섬 게임으로 항만 확장을 몰고 간 점도 수출입 물량 감소세를 이끌었다.
中 닝보·저우산, 제조업 순풍…6.1%성장
4위는 중국 닝보·저우산이 차지했다. 닝보·저우산은 지난해 2062만TEU를 처리해 전년 1943만TEU 대비 6.1% 늘어났다. 반면 올 상반기 실적은 1160만TEU로 전년 동기 대비 2.9% 늘어나는데 그쳤다. 저장성에 위치한 닝보는 국내 소비 증가와 제조업 순풍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닝보는 76억위안(12억달러)을 들여 추가로 다섯 개 선석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 투자로 430만TEU를 추가 처리하고,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위는 홍콩이 이름을 올렸다. 홍콩항은 지난해 2011만4천TEU를 처리해 전년 2229만3천TEU 대비 9.7% 줄어들었다. 홍콩항은 오래된 인프라, 토지 제약, 높은 인건비 등의 문제로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다. 이에 정책 당국은 올해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연합) 국가와의 FTA 도입, 중국의 신실크로드 이니셔티브(일대일로) 효과, 이란과의 교역 확대 등으로 악재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정책 당국은 최근 前(전) 해양산업의회와 항만개발의회를 통폐합해 고부가가치 해양서비스클러스터 세우기에 나섰다. 홍콩은 ‘국제 해운서비스 허브’가 되기 위해 해양서비스 분야에 중점을 둬 선박경영, 브로커, 리스, 선박금융 서비스를 도입 및 강화할 예정이다.
성장과 몰락 사이
물동량 처리가 30%대 급성장을 이룬 항만도 있다. 94위를 기록한 중국의 탕산은 지난해 152만TEU로 전년대비 37.1% 늘어나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탕산항의 앞날도 맑을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물동량 처리실적만 전년 동기 대비 49.4% 증가한 84만9000TEU를 기록했다. 지난 7월에는 탕산항만그룹이 세계 10위 항만인 톈진항과 협업하기로 하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95위를 기록한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도 30%대 급성장을 이뤘다. 칼리파항 컨테이너 터미널(KPCT)은 지난해 150만4000TEU를 거둬 전년 113만8000TEU 대비 32.2% 급증했다. KPCT는 중동지역에서 연간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며 눈에 띈 성장을 보이고 있다.
성장세에 맞춰 항만 시설도 확충한다. 아부다비 터미널(ADT)은 선박 수용을 위한 연안 크레인 3개, 자동화 갠트리 크레인 10개를 2017년까지 도입할 예정이다. 2017년 개통예정인 에티하드 철도도 주목할 만 하다. KPCT 측은 항만에 있는 상당수의 화물을 에티하드 철도가 수송할 것이라고 전했다. 철도 수송이 이뤄지면 KPCT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온도크 철도 접근망을 갖춘 첫 항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중국 타이창, 방글라데시 치타공이 20%대 성장세를 보였고, 미국 뉴욕·뉴저지, 사바나, 찰스턴도 10%대의 물동량 성장세를 기록했다.
반면, 물동량 처리가 20%대로 급락한 항만도 있다. 86위를 기록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난해 171만5000TEU를 거두며 전년 237만5000TEU 대비 27.8% 급감해 100대 항만 중 감소폭이 가장 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세계적인 저유가, 루블화 약세, 소비 감소 등의 영향으로 수입 물동량이 급감했다.
벨기에의 지브뤼게항도 지난해 156만9000TEU를 거두며 전년 204만7000TEU 대비 23.3% 폭락했다. 2M의 서비스 기항지에서 지브뤼게항이 제외되면서 타격을 받았다. 그 외 독일 함부르크가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10%대 이상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부산항, 세계 6위 유지했지만...
우리나라 항만들의 지난해 실적은 전년과 비교해볼 때 평이했다.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은 세계 6위를 차지했다. 부산항은 지난해 1946만9000TEU를 처리해 전년 1868만3000TEU 대비 4.2% 늘어나 호조세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는 시작이 좋지 않다. 부산항의 올 상반기 물동량은 962만3000TEU로 전년 동기 대비 1.5% 줄었다. 올해 목표 처리량인 2천만TEU를 처리하기에 빠듯한 상황이다.
부산항은 중국과의 교역 감소를 상쇄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 환적 서비스를 꼽고 있다. 지난해 부산항은 처음으로 1000만TEU 이상을 처리했고, 55개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을 환적허브로 이용한 바 있다.
부산항이 85억달러를 투입한 북항 재개발 사업은 오는 2020년께 완공될 예정으로, 아시아 역내 피더 무역 허브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확장된 신항은 외국적 선사들의 초대형 선박도 수용 가능하다.
67위인 여수·광양은 지난해 232만7000TEU를 거두며 전년 233만8000TEU 대비 -0.5%를 기록했다. 68위인 인천은 지난해 237만7000TEU로 전년 233만5000TEU 대비 1.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진해운 사태가 일어난 지금부터다. 부산항 처리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진해운이 현재 유동성 부족으로 법정관리 상태다. 부산항은 밀린 하역료 등으로 인해 작업이 지연되고 있고, CKYHE 얼라이언스는 한진해운과의 선박공유협정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올해 전국 항만 물동량의 처리 실적은 이번 한진해운 사태의 조속한 수습여부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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