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1 17:44

"세계 5위 해운국에 해사법정이 없어서야···"

무역 규모는 늘었는데, 해상법 수준은 '제자리'

우리나라에도 해사법정제도를 도입으로 국부유출을 막아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해사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운 선진국인 영국, 미국, 중국, 일본 등은 해사분쟁의 특성을 고려한 해사법원·해사중재소가 설치된 반면, 세계 해운 5위국인 우리나라는 해사분쟁 발생시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외화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7일 한국해사법정, 중재활성화 추진위원회가 주최한 '해사법정제도 도입을 위한 국제세미나'가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해법학회, 한국선주협회, 고려대해상법연구센터가 주축이 된 한국해사법정·중재활성화 추진위원회는 해상법의 발전을 이루고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할 목적으로 올해 1월 발족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현재 해사법원제도를 운영 중인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의 전문가들이 초빙돼 주제발표를 진행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가 해사법원 제도도입에 대한 필요성과 구체적인 도입방안을 제시했다.

"2017년까지 1심 해사법원 서울에 설치해야"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는 1990년대 중반인 20년 전에 비해 약 7배 성장했다. 그러나 해상법은 바다나 선박과 관련된 법률분쟁을 전담·처리하는 전문해사법정제도가 없어 수십 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1980년대 30여명이었던 해상변호사가 2014년 현재 약 70명이라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이 때문에 해운조선업 성장으로 파생된 법률적인 수요는 대부분 해외변호사나 외국학교에서 맡아 국부유출을 피할 수 없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사분쟁으로 인해 매년 약 5000억원의 법률비용이 해외로 새어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인현 교수는 '한국해사법원 제도도입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2017년 해사법원 설치를 목표로 단계별 방법을 도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해사법원 설치를 위해 김 교수가 밝힌 첫 번째 단계는 올해 안에 해사사건전담부를 국내 법원에 설치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2017년까지 전문 해사판사를 수개의 법원에 배치하고 마지막으로는 2017년까지 1심 해사법원을 국내에 설치하는 것이다.

해상사건이 가장 많은 서울이 1심법원이 설치될 최적의 장소로 꼽혔으며, 후보지로는 부산이 거론됐다. 이밖에 인천과 광주도 후보 지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해사법원이나 해사판사제도가 없기 때문에 많은 해사사건이 해외에서 처리돼 국부유출이 심각하다"며 해사법정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그는 "해사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도 이제는 독립적인 1심법인으로서 해사법원을 하나 혹은 두개 설치해 해사관련 분쟁을 전문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사법정제도를 만들어 해사사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고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 우리 해운업이 경쟁력을 갖춰야한다는 게 김 교수의 견해다.  해사법원은 해상운송, 운송계약, 해상보험계약, 선박매매계약, 선박의 압류·가압류, 선원의 해고 및 재해보상, 선박건조계약, 선박금융사건, 항만관련 사건 및 선박소유자책임제한 등을 관할한다.

인프라 확충도 해사법원 제도도입의 활성화를 위해 하루빨리 진행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사중재 담당자는 약 50여명이며, 해상변호사도 약 70여명으로 전문중재인 배출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 운송계약, 건조계약의 대부분은 런던해사중재로 처리되고 있다.

김 교수는 로스쿨의 해상법 강좌를 강화하고, 한국해법학회와 대한상사중재원이 제작한 해사표준서식의 활용도가 낮아 '한국해사표준서식 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서식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김 교수는 한국 해사판례의 국내 및 국외 전파를 위해 해상리포트 발간을, '한국해사법정활성화 위원회'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산업계의 인식을 전환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中 해사법원 효과 '톡톡'···年 2만여건 다뤄

"전문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어 해사법정은 현재 중국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해사법원제도를 도입해 온 중국의 사례가 이날 발표되며 청중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중국 상하이해사대학 제임스 후 교수에 따르면 2013년 말 현재 중국엔 10곳의 해사법원이 마련돼 있으며, 활동 중인 해사전문판사만 570여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판사가 상하이해사대학과 다롄해사대학 출신이며, 570여명의 판사가 총 66개 종류의 해상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1984년 6곳의 해사법정 설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중국에서 다룬 전체 사례 수는 22만5000건에 달한다. 이중 종결된 사건은 21만건이다. 10곳의 해사법정에 매년 2만여건의 사건이 접수되고 있다.

제임스 후 교수는 "해사법정을 마련하고 전문판사를  배치한 이후 분쟁사례가 늘고 있다"며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해운과 선박건조에서 강점을 띄고 있기 때문에 해사법정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원과 항만매출 등을 기록하고 있고, 해사분쟁과 소송이 많은 상황에서 해사법정제도는 중국에 매우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는 최종현 한국해법학회 회장, 박현규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소장,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전무, 박영안 태영상선 사장, 김영민 마셜제도 법인·선박 등록처 한국소장, 윤성근 서울남부지방법원장, 석광현 서울대 법대 교수, 김인호 이화여대 교수, 이석행 HIS 전무, 손점열 테크마린 부사장 등 8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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