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입증의 정도
피보험자와 보험자가 서로 상반된 사실이나 가설을 주장할 경우, 그 양자의 개연성을 비교하여(the balance of probabilities) 피보험자가 주장한 사실이나 가설이 보다 개연성이 우월하면 입증이 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개연성이 우월하지 못하고 서로 비슷한 정도라고 하면 피보험자는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원인불명의 선박침몰사고 등에 있어 법원이 자연소모(wear and tear), 타 물체와의 충돌, 불감항성 등 여러 가지 제시된 가능한 원인 중에서
확신이 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 하나의 원인이 다른 원인보다 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 하나의 원인을 채택하는 것은 잘못이며 이러한 경우 사고의 원인은 불명이며 따라서 피보험자가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영국판결 The Popi M(1985)).
한편 화물이 선박과 함께 행방불명된 경우에는 현실전손으로 추정되고 그 현실전손은 일응 부보위험인 해상위험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보험자는 전보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보위험으로 인한 손해라는 추정은 보험자가 부보위험이 아닌 다른 위험 내지 면책위험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하고 그 가능성이 보다 우월하거나 동일함을 입증하는 경우에 한하여 깨어지게 된다(대법원 1991년 5월14일 선고 90다카25314판결).
다. 해상보험소송에 있어서의 입증책임의 특수성
해상보험에 있어서는 보험자가 항해하는 선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위험으로 인하여 손해가 야기되었는가를 직접 입증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해상보험소송에서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입증원칙을 요구하게 되면 피보험자는 입증의 부족으로 인하여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게 된다.
따라서 해상보험분야에서는 일찍부터 엄격한 입증원칙을 완화하는 법리가 형성되게 되었다.
또한 해상보험약관중 협회적하보험약관 ICC/A의 소위 전위험담보(all risks)의 경우에는 다른 약관과는 달리 피보험자의 입증책임이 더욱 완화돼 피보험자로서는 멸실 또는 훼손이 발생하였다는 사실과 그러한 멸실 또는 훼손이 우연한 성질의 것이라는 점만 입증하면 되고,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 또는 사고로 인하여 멸실 또는 훼손된 것인가 하는 점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 판례 평석
영국 해상보험법의 법리에 의하면, 어떠한 보험사고가 추정전손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는 피보험자가 이를 입증하여야 하고 따라서 그가 선박을 구조하고 수리하는 비용이 보험가액을 초과한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여야 한다.
한편 영국 해상보험법상 보험자는 보험증권에서 달리 약정하지 않는 한 부보위험에 근인(近因)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서만 책임을 지고 부보위험에 근인하여 발생하지 아니한 손해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선박의 수리비는 해당 보험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한정돼야 하고 보험사고로 인하여 발생하지 않은 수리비는 제외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피보험자로서는 해당 보험사고가 추정전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위부를 하기 위해는 우선 해당 피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아니하였으면 이 사건 선박이 수리가 필요하지 아니한 상태였음과 보험사고 후에 발생한 수리비를 입증하거나 혹은 위와 같은 선박의 보험사고 전무하자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해당 피보험사고로 인해 손상을 입은 선박 부분을 특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수리비를 입증해야만 할 것이다.
이 사건 보험계약은 전손담보(Total Loss Only)계약이므로 선박의 훼손으로 인한 수리비가 추정전손에 해당한다는 것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로서는 이 사건 보험사고로 인해 훼손된 이 사건 선박의 수리비가 보험가액을 초과한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하고 이 사건 보험사고가 추정전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보험자인 피고가 원고가 위부통지 시점 혹은 위부통지의 거절 시점에 보험금 청구소송이 제기된 것과 마찬가지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명시의 의사표시가 없었던 이상,
이 사건 피보험자인 원고가 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한 시점까지 현출된 모든 객관적 사실과 상황을 기초로 그 객관적인 수리비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위 대법원 판결이 해상보험 소송에 있어서의 입증책임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수리비의 산정방법과 추정전손 해당 여부에 관해는 객관적으로 실제 발생한 사실을 기초로 해 엄격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이유로 선박수리비가 선박의 가액을 초과해 추정전손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것은 일응 수긍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이 추정전손의 인과관계 판단에 있어서 영국 해상보험법상의 근인설에 따르지 않고 피보험자가 입은 재산상의 손해가 보험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끝>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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