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7 16:16
기획/정기선-벌크선 시황해석 극과극
BDI 바닥 울상 vs 시황조절로 비수기 선방
연료유 상승은 모두 부담
●●●벌크선 시장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건화물선운임지수(BDI)는 1천포인트선이 위협받으며 시장 관계자들의 한숨을 쉬게 했다. 지난달 벌크수송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4위 해운기업인 대한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창명해운이 대선조선에 발주한 벌크선 4척을 인도를 앞두고 취소하는 등 벌크선사들은 더블딥을 맞아 경영 안정화에 안간힘이다.
반면 정기선 업계는 벌크선 시장과 대조적이다. 운임수준도 여전히 안정적이어서 벌크선사들에 비해 느끼는 체감시황은 매우 양호한 편이다. 비록 북미항로의 시황 급락으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올해 들어 미국 소비시장의 회복기미가 보이면서 다시금 상승세를 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벌크선 운임 물동량 늘어도 약세 이어져
2월 들어 BDI는 바닥없는 추락을 계속 하다 상승 반전하긴 했지만 향후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4일 1043포인트로 바닥을 찍은 BDI는 15일 현재 1236포인트까지 올라섰다. 4일 찍은 1043포인트는 금융위기에 따른 해운불황이 한창이던 2009년 1월 이후 2년 만에 최저 수준이었다.
벌크선 시장의 약세는 선복과잉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세계 벌크선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중국의 철광석 수입은 지난해 4분기 이후 꾸준히 늘고 있음에도 벌크선 시황은 하락세가 계속된 까닭이다.
중국해관총서에 따르면 중국의 철광석 수입량은 지난해 10월 4572만t, 11월 5738만t 12월 5808만t으로 증가곡선을 그려 왔으며, 특히 올해 1월엔 6897만t으로 껑충 뛰었다. 1월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8%, 전달인 12월에 비해 18.8% 각각 늘어난 것으로, 월간 최대치다. 이전까지 최대 실적은 2009년 9월의 6455만t이었다. 중국 철광석 수입량 증가는 철강업체들이 가격 상승을 우려해 철광석 재고량을 크게 늘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철광석 가격은 1월 현재 t당 151달러로, 최고치인 2008년의 154.4달러선에 육박한 상태다. 앞으로도 주요 철광석 생산국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브라질에서의 기상이변 등으로 철광석이나 석탄 등 주요 원부자재의 가격 상승은 계속될 조짐이다.
물동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BDI는 지난 1월 한 달 동안 하락세를 멈추기는커녕 급기야 1천선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 수준까지 급락했다. 이달 들어 비록 하락을 멈추고 상승하고 있다지만 선사들이 수익을 내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어 앞으로도 해운업계의 어려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벌크선 시장의 침체는 물동량은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 선박공급은 한계치에 다다랐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의 철광석 수입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 화물 수송에 주로 쓰이는 17만t(재화중량톤)급 안팎의 케이프사이즈 선박 운임이 하락일로였다는 점에서 선복량 과잉이 벌크선 시황에 얼마나 악영향을 주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케이프사이즈운임지수(BCI)는 15일 현재 1488을 기록했다. 곡물이나 석탄 수송을 맡고 있는 7만t급 안팎의 파나막스선운임지수(BPI) 1803보다 낮다.
실제 용선료에서도 케이프사이즈선박은 파나막스선박에 크게 밀린다. 2월 중순 현재 케이프사이즈 일일 평균 용선료는 7100달러선이다. 1만4천달러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파나막스선 용선료의 절반 수준이다. 소형선박인 5만t급 이하의 수프라막스선 용선료(1만2천달러선)에도 크게 뒤처진다. 선박량 과잉과 연료유 가격 상승으로 대형 선박의 매력이 떨어진 까닭이다. 해운 시황 고점이었던 지난 2008년 상반기 케이프사이즈 선박 용선료가 20만~25만달러선까지 치솟았던 것에 견줘 최근 용선료 수준은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벌크선사들 운영자금 확보 비상
클락슨에 따르면 케이프사이즈선박량은 1억7220만t에서 2억800만t으로 20%나 늘어났다. 올 한 해에도 이 선형은 전체 선대의 27% 수준인 5730만t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선박 과잉 문제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선복 과잉과 함께 벌크선 시장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형 홍수 등으로 철광석과 석탄 공급 차질이 본격화될 전망이어서 향후 전망도 썩 밝지 않은 상태다.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석탄 생산지인 퀸즈랜드의 기록적인 폭우로 전체의 75%를 넘는 석탄광산 40여곳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호주산 유연탄가격은 한 달 만에 30% 이상 올라 t당 300달러에 육박한 상황이다.
선사들은 현재 운임 수준으로는 수익 내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운영비 마련도 힘들 정도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운임은 크게 떨어진 반면 연료유 가격은 상승탄력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박 확보를 위해 받은 대출금의 이자상환도 녹록치 않은 실정이다. 운영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한 중견 벌크선사 관계자는 “현재의 시황에선 벙커(연료유)를 충족하기에도 급급하다. 운항비와 함께 (대출금의)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수준까지 시황이 올라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앞으로 운영자금 확보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벌크선사들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은행권과 금융조건 조정에 나서고 있다. 대출금 상환 일정을 뒤로 미룬다거나 금리 조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다. 나아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한국정책금융공사를 통해 선박담보대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9년 이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한 세일즈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용선) 방식의 구조조정 펀드를 운영 중이긴 하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섭외해야하는 환매사나 법률회사 비용이 선사들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같은 선사 관계자는 “금융사가 직접 대출하는 브리지론 형태로 해운사 지원이 이뤄진다면 현재 몇 십만달러가 아쉬운 (벌크) 선사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북미 설연휴 이후 시황 회복세
컨테이너선 시장은 벌크선 시장과 비교해 안정적인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 해운분석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원양 정기선사들은 지난해 130억달러의 순익을 일궈, 20009년의 150억달러 적자에서 큰 폭의 흑자경영으로 돌아선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지난 금융위기 시절 150만TEU에 달하는 선박을 계선(운항대기)했던 컨테이너선 업계는 최근 들어선 다각적인 사업전략으로 시황 부진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컨테이너선사들은 작년 말 시황 부진이 예상되자 재빠르게 기간항로인 유럽항로나 북미항로에서 일부 항로를 중단하는 등 시황 안정화를 꾀했다.
지난해 말 독일 하파그로이드 일본 NYK 홍콩 OOCL로 구성된 그랜드얼라이언스(GA)가 지난해 말 극동-유럽항로 4개 노선 가운데 하나를 잠정 중단한 것이나 머스크라인이 동남아-북유럽노선인 AE9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항로에서 뺀 것이 이런 맥락이다. 한진해운과 케이라인 코스코 양밍의 CKYH얼라이언스도 올해 들어 아시아-북유럽서비스5(NE5)의 한 항차를 쉬는 방법으로 선복 조절에 나선 바 있다. 현대상선 APL NYK의 뉴월드얼라이언스(TNWA)는 음력 설을 맞아 북미항로에서 일시적인 운항중단을 단행했다.
현재 유럽항로 물동량은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비록 PIGS로 불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국가의 재정위기로 지중해 항로가 부진한 모습이지만 북유럽 지역과 러시아의 시장상황이 양호한 까닭이다. 특히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운임 인상으로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러시아 수출을 진행해왔던 대형화주들이 해상으로 수송모드를 전환한 것도 시황안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컨테이너트레이드스태티스틱스(CTS)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발 유럽행 물동량은 1352만4천TEU로 2009년에 비해 17.7%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 물동량은 금융위기 이전의 2008년 물동량 1349만4천TEU도 넘어서 시황 회복에 성공했음을 보여줬다. 현재 한국발 유럽항로 운임은 20피트컨테이너(TEU) 기준으로 1400~1500달러 사이인 것으로 파악된다. 비수기를 맞아 지난해 연말에 비해 200~300달러 정도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8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북미항로는 음력 설 이후 조금씩 회복되는 모양새다. 특히 TNWA가 음력 설 전후로 선박 한 항차 운항을 중단하면서 소석률(선복 대비 화물적재비율)도 크게 늘어났다. 게다가 대형 전자회사들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북미지역 수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만큼 3월 이후 다시금 실적 만회를 위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선사들은 기대 중이다.
자동차화물 공략, 남북항로 강화
정기선사들은 올해 타깃을 자동차 관련 제품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미항로의 경우 자유무역협정(FTA)이 의회 비준 절차만을 남겨 두고 있어 CKD(자동차 반제품)나 타이어 등 자동차 부품 수출이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 관련 제조기업들은 한미 FTA가 발효 될 경우 대략 30% 가량 물동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선사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뿐 아니라 한국GM(옛 GM대우) 등의 자동차 물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4월께 의회 비준이 떨어진다고 볼 때 북미항로는 2배 이상 화물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발 북미항로 운임은 미 서안의 경우 40피트컨테이너(FEU)당 1800~190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수준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선사들은 4~5월 운송계약(SC)에서 FEU당 미서안 400달러 미동안 600달러의 운임회복에 나설 계획이다.
북미항로 취항선사 관계자는 “부정기 시장이 많이 안 좋지만 정기선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며 “선사들이 유동적으로 선복관리에 나서고 있는데다 물동량도 꾸준해 비수기라고 하지만 시황은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남북항로 공략도 정기선사들의 경영 키워드가 되고 있다. 지난해 한진해운이 김영민 사장의 남북항로 강화 공언 이후 아시아-남아프리카-남미를 잇는 항로를 개설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선 현대상선이 남북항로 전담팀을 신설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유럽과 북미항로는 경쟁도 치열한데다 대형선박이 집중 투입되고 있어 수익성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아프리카나 남미 등 신흥시장 진출로 성장동력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벌크선사나 컨테이너 선사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유가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부산항과 싱가포르항에서 거래되고 있는 선박연료유(IFO 380 CST 기준) 가격은 t당 620달러 안팎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12월 500달러를 넘어선 뒤 2달여만에 100달러가량 상승했다.
정기선사 한 관계자는 “올해는 운임회복 뿐 아니라 연료유 상승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선사 수익성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본다”며 “선사들은 비용 도입 뿐 아니라 슬로스티밍(감속운항) 등으로 연료비 절감을 위한 방안 마련에 더욱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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