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 미국과 일본이던 시절에는 수출제조업 중심의 국가 경제성장이 이루어져서 서울-부산간 경부축을 따라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부산항은 우리나라의 수출입 거점항만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또한 세계 제1, 제2의 간선항로인 태평양 항로와 유라시아 항로가 겹치는 구간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우위로 인하여 동북아시아의 환적 거점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 중국으로 바뀌고 한중 산업 및 무역 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지면서 인천항과 평택당진항을 필두로 하는 한반도 서해안 항만들이 급속히 발전하게 됨에 따라 우리나라 수도권의 대중국 수출입화물이 부산항을 통하지 않고 서해안항만들을 통하여 직접 중국의 항만들로 해상운송되면서 수출입화물의 부산항 집중도는 점차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항만이 거대화되면서 부산으로 향하던 중국의 환적물량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나라의 수출입 화물이 서해안 항만들을 통하여 중국의 거점항만에서 환적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부산항의 위기는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GDP 기준 세계 제2위인 일본이 집중 개발했던 고베항의 경우 한때 세계 4위의 컨테이너물동량을 처리한 글로벌중심항(Hub-port)이었으나 고베지진 이후 파괴되었던 시설은 1-2년 만에 원상회복하였는데도 고베항을 거점으로 수출입하던 화주들이 일본 서해안 지역항만들을 통하여 부산항에서 환적하게 되었고 일본의 국내 항만들이 발전하면서 국내 수출입화물이 분산처리되면서 고베항의 수출입집중도가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때 고베항은 화주와 선주들에 대한 대책과 대체항로 등을 갖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부산항에게 환적물량마저 빼앗긴 바람에 세계 3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글로벌 거점항만에서 10년 만에 일개 지역항만으로 몰락해 버린 것이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고베항에 이어 세계 3, 4위를 다투던 타이완 카오슝항의 몰락이 진행되고 있다.
타이완의 경제침체로 수출입화물이 늘지 않고 있으며, 중국 본토의 화주들이 카오슝항에서 환적하지 않고 푸지앤성의 샤먼과 푸저우 항만을 통하여 직접 수출입하거나 홍콩 등 타 항만에서 환적하는 바람에 카오슝항의 컨테이너 취급물량이 주변 경쟁항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고베의 몰락이 급속히 찾아 온 반면에 카오슝항은 그동안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최선을 다하여 대안을 마련해 왔으며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양극화되었던 냉전기의 세계경제가 구 소련의 몰락으로 미국중심의 글로벌 경제체계가 구축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중국 등 신흥 강대국의 등장으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가고 있는데도 타이완은 아직 이데올로기의 딜램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타이완이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본토와 동일한 경제블록을 형성한다면 푸지앤성의 화주들이 카오슝항을 거점항으로 활용하게 되고 카오슝의 부흥이 예상되지만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카오슝항의 앞날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자 이제 부산항에 대하여 얘기해 보자.
부산항의 수출입 및 환적 화물의 기종점(OD) 분석을 해보면 중국, 미국, 일본, EU의 물량이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이 주변 항만들과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화물들이며 부산항이 그들에 비하여 경쟁 우위에 있다고 자신 있게 내 세울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무엇인지 잡히지 않는다. 부산항 관계자들이 그냥 열심히 포트세일즈를 하고 발로 뛰어서 경쟁항만들과 싸워 이기기에는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현재 부산항은 남북한간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북으로 막혀 있는 섬나라의 동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 여건상 고베와 카오슝에 비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국가경제력에 비하면 부산항의 여건은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부산항의 기능을 분산시키는 광양항이 있고 서해안 항만들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어 우리나라 수출입화물의 부산항 집중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으며, 중국의 지역거점항만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 가고 있고, 부산항의 최대 환적화물인 일본 서해안 지역 항만물동량들이 자국 거점항만으로 회귀하거나 다른 경쟁항만으로 전이되고 있어 부산항 물동량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경제발전이 정체된다면 수출입물동량이 늘지 않게 되어 부산항의 위기는 불을 보듯 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쟁항만들에 비하여 장래 물동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이러한 불안감이 현실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된다.
그럼 부산항의 위기는 극복될 수 없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몇 가지 가정 하에 긍정적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첫 번째 가정은 한반도 남북경제의 완전한 개방과 단일시장화이다.
남북경제개방으로 한국은 대륙과 직접 육로로 연결될 수 있어 만주지역의 경제권에 한반도경제권에 일착되므로 우리나라의 경제권역이 크게 확대되어 부산항의 잠재물량이 많아지게 된다.
두번째는 부산항, 마산항, 울산항 등의 항만과 김해국제공항, 울산공항, 사천공항 등의 공항 및 국토의 관리 업무을 통합하는 동남권 국토해양청을 신설하고 부산항만공사과 김해국제공항 등을 통합하여 가칭 부산포트오소리티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이다. 항만 만으로 글로벌경쟁력을 확보하는데는 한계가 있으며, 항만과 공항, 정보거점이 일체형으로 발달된 통합항(Integrated Port: sea, air & telecom port) 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부산항의 살길은 기존 태평양항로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겠지만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대체항로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유라시아 해상항로와 해륙복합운송의 확산에 의한 글로벌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방안인데, 부산과 극동러시아 간 해상운송을 강화하고 TSR을 적극 활용하여 시베리아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산업투자와 무역을 활성화함으로써 부산항이 유라시아대륙, 특히 러시아의 동쪽 관문(Gateway)이 되는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 간 해상교역량은 2004년에 1천4백5십만 TEU에서 2005년에는 1천6백만 TEU로 10% 증가하였고, 2006년에는 1천8백만 TEU로 12% 증가하였으며, 당분간 10%대의 물량 증가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기적으로 러시아의 컨테이너 시장이 연간 18-22% 정도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한-러 교역로 강화는 부산항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을 기대된다.
그동안 상떼뻬째르부르크와 북해 및 발트해의 항만들을 이용하던 한-러 교역로를 흑해와 카스피해를 활용하는 대체항로를 개발하여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흑해의 여러 거점항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러시아의 흑해 항만인 노보르시스크와 타간로크 등의 항만에 대한 정부차원의 활용방안 모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타간로크항의 경우 항만구역이 협소하고 배후도시가 항만에 밀착되어 있어 항만배후수송이 어려우므로 과감한 리모델링이 이루어지거나 인근에 대체 신항만이 건설되어야 하므로 우리나라의 우수한 항만개발 능력을 활용하여 한-러 합작이 이루어진다면 부산항을 거점으로 하는 한-러 교역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항의 몰락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며, 한번 몰락한 항만은 다시 일어선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세계 항만사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부산항의 위기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국가적 중대사로 인식하여야 한다. 또한 부산항의 위기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더 늦기 전에 정부의 강력하면서도 전향적인 부산항 살리기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