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13:15

부산-美 터코마 녹색항로 ‘풀어야할 숙제는’

정부, HMM 메탄올 컨선 앞세워 2027년 시범운항 목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녹색해운항로를 취항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HMM이 짓고 있는 9000TEU급 메탄올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이 녹색해운항로 구축의 첨병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해양수산부 해사산업기술과 이치경 사무관은 지난 9일 부산 명지동 한국선급 오션홀에서 열린 해사산업통합클러스터(MacNet) 전략세미나에서 “2027년 시범운항을 목표로 우리나라 부산 울산항과 미국 시애틀 터코마항을 잇는 한미 녹색해운항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환경 규제 강화에 대응해 우리나라는 해운항만 분야의 탈탄소 전환을 주도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해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80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회의에서 2050년까지 국제해운에서 무탄소를 달성하기로 의결했다.

이와 별도로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역내 항만을 운항하는 5000t(총톤)급 이상 선박을 대상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U ETS)를 도입했다. EU ETS는 할당받거나 구매한 한도 내에서 탄소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EU는 기업들에게 올해 40%, 2025년 70%, 2026년 이후 100%의 배출권을 사도록 강제화했다. 이 조치로 EU 해역을 운항하는 국적선 137척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6200억원을 웃도는 환경 비용을 물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부산항, 녹색항로의 기종점으로 육성”

우리나라 정부는 녹색해운 정책을 주도해 국제해운의 탈탄소 실현에 기여하고 친환경 선박 신조 등의 신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2022년 5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같은 해 8월 열린 한미 해운회의에서 녹색해운항로를 구축하는 데 합의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정상회의에서 조홍식 기후환경대사는 우리나라의 부산항과 미 북서부 항만 간 녹색해운항로를 구축하는 이행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4월 완전 자동화 항만인 부산 신항 7부두 개장식에서 “부산항을 탄소 배출이 없는 녹색해운항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녹색해운항로란 무탄소 연료와 친환경 기술을 활용해 해상운송 전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항로를 일컫는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선박도 필요하지만 무탄소 연료를 공급하는 인프라를 항만에 구축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정부는 사전 타당성 연구를 거쳐 부산-시애틀·터코마 구간을 메탄올 연료를 쓰는 컨테이너선 녹색항로, 울산·마산-시애틀·터코마 구간을 메탄올 연료를 쓰는 자동차선 녹색항로로 각각 개발하기로 했다.

시애틀과 터코마는 지난 2015년 노스웨스트 시포트 얼라이언스(NWSA)로 통합 출범해 사실상 한 항구처럼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향후 선사 항만 연료공급자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그린메탄올 e메탄올 등의 청정 연료 확보 방안을 수립한 뒤 2027년부터 시범운항에 돌입한다는 구상이다. 

 
▲왼쪽부터 해양수산부 이치경 사무관, HMM 김영선 팀장, 부산항만공사 이응혁 부장
 
 
컨테이너선 녹색항로엔 메탄올 연료를 사용하는 HMM의 9000TEU급 신조 컨테이너선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HMM은 지난해 2월 국내 조선소 2곳에 친환경 대형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했다.

현대삼호중공에서 7척,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에서 2척을 각각 건조하는 친환경 선단엔 메탄올과 벙커C유(선박용 중유)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엔진이 장착된다.

HMM은 내년 4월 현대삼호중공에서 준공하는 1호선을 시작으로 2026년 5월까지 순차적으로 국내 최초의 메탄올 추진 신조선 시리즈를 인도받을 예정이다. 

벙커링 인프라 구축·비용 분담은 해결과제

녹색항로 계획에서 가장 큰 문제는 HMM이 소속된 디얼라이언스 회원사들이 한국 정부의 계획에 동의하느냐다. 현재 디얼라이언스는 부산-터코마 구간에서 2개 노선을 운항 중이다. 부산과 밴쿠버 터코마를 잇는 PN3, 부산·광양과 프린스루퍼트 밴쿠버 터코마를 잇는 PN4다.

이 중 HMM은 PN3에 3척의 선박을 넣고 있다. 부산-터코마 노선을 우리 정부가 목표한 녹색해운항로로 전환하려면 PN3에 HMM을 포함한 디얼라이언스 회원사가 친환경 선박을 나눠서 투입하거나 HMM이 메탄올 추진 선대를 단독으로 배선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현재 부산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클랜드를 연결하는 PSX의 경우 디얼라이언스 서비스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지만 HMM이 단독 운항하고 있는 터라 PN3을 HMM 선대로 꾸리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높은 비용 부담은 큰 걸림돌이다. 올해 2월 세계 최초의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인 1만6000TEU급 <아네머스크>호는 울산항에서 선박 대 선박(STS) 방식으로 그린 메탄올 연료를 공급받아 시선을 끌었다. 당시 청정 연료 가격은 일반 벙커C유보다 10배가량 비쌌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세미나에서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HMM 김영선 R&D 팀장은 “얼라이언스 소속 선사들이 공동운항하는 노선의 경우 운항 선대 전체를 친환경 선박으로 바꾸는 건 어려울 수 있다”며 “HMM에 할당된 선박만 메탄올 연료를 사용하는 제한된 녹색항로로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메탄올 연료를 경제적인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치경 사무관은 “이미 구축돼 있는 산업용 그레이 메탄올(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생산한 메탄올) 공급망과 항만 인프라를 활용해 선박 연료용 친환경 메탄올 공급망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용 메탄올 수입량은 연간 200만t 정도로, 이 중 60%가 울산항으로 들어온다. 아울러 산업용 메탄올 저장 탱크 용량은 총 39만t으로, 울산항 15만t, 여수광양항 14만t, 평택항 10만t 정도다.

부산항만공사(BPA) 이응혁 국제물류지원부장은 “녹색항로를 실현하려면 친환경 연료의 국제적 합의와 높은 연료비 분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부산항은 대규모 유류 저장시설을 갖추고 있는 울산항과 협업해 선사들이 필요로 하는 친환경 연료를 공급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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