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년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의 수요예측이 매번 실패하고 있습니다. 수요예측이 실패하면 공항 개발계획은 백지화될 수도 있습니다. 개별 공항의 수요예측을 따르지 말고, 상황에 맞는 개발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합니다.”
지난 2016년 1월에 있었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 공청회에서의 일이었다. 한 항공정책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주요 공항시설 개발이 수요예측에만 지나치게 얽매이면서 수요가 과부족인 곳은 ‘유령공항’으로 전락하고 예상보다 많은 곳은 수요가 설계 용량을 초과하고 있다며 수요예측의 허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항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의 목소리를 배제한 공항 개발은 필히 난개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공항 개발지역의 인구보다 항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의 취항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지역별 여객수요 예측에 따라 공항 개발을 주장하는 측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였다.
항만터미널시설 개발도 이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지난달 해양수산부는 전국 주요 항만의 터미널운영사 최고경영자(CEO)와 ‘항만민자사업 CEO 간담회’를 가졌다. 주요 운영사 CEO들은 물동량 성장세 급감과 부두 과잉공급에 영업실적이 크게 악화되면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해수부가 추진 중인 추가 부두 개장은 최대한 늦춰달라는 게 업계의 속내다.
한 운영사 CEO는 “부산항 하역료가 베트남을 제외하면 세계 최저수준에 가깝다. 업계의 과당경쟁과 기본적인 수급의 문제”라며 부두 개발이 지속되면 항만하역시장 경쟁력은 크게 추락할 거라고 주장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논리다. 업계는 부두개발을 악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날 참석한 CEO들이 운영하는 부두도 개발 타당성을 인정받았기에 조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수년째 손익분기점도 못 넘겨,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일부 운영사는 최소 운영수입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MRG사업 청산 시 순수 하역수입으로 승부하는 데 불편함을 보였다. 특히 컨테이너부두는 16개 민자부두(48선석) 중 4곳(19선석·부산신항만·부산신항컨테이너터미널·울산동방아이포트·포항영일신항만)이 운영되고 있다. 부산신항만을 제외하면 수익성이 좋지 못한 편이다.
세계 해운시장이 선사들의 합종연횡과 얼라이언스 재편, 선박 대형화 등에 직면하면서 터미널업계의 고군분투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 와중에 해상물동량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 주요 항만들이 ‘자동화’에 눈을 떠 자칫 항만시설 경쟁력에서도 밀릴 조짐이다.
향후 진행될 항만 개발 타당성 조사는 항만 경쟁력 제고와 업계의 불만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조사방법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컨테이너부두는 우리나라를 기항하는 주요 선사를 대상으로 취항 의지를 조사해 타당성분석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국내 최대 항만 부산신항조차 평일엔 선석이 놀고 주말엔 빡빡해 화물이 지체되는 비효율성을 보이고 있다. 광양항 ‘투포트’ 정책은 이미 학계와 업계로부터 실패한 정책으로 지적받고 있다. 컨테이너부두였던 광양항 3·4번 선석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선사들의 기항이 뚝 끊기면서 지난 2016년 12월부터 자동차부두로 기능을 전환했다.
인천항은 300만TEU 시대를 선언하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주요 원양항로 화물은 여전히 부산에서 처리되고 있다. 화주들이 비싼 육상운송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부산에서 화물을 수출하는 건 촘촘한 역내항로 선사망이 저렴한 해상운임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항만개발지역이 신규 물동량을 유치할 수 있어도 선사가 기항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항만당국은 타당성분석을 개선해 추가 부두 조성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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