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산 북항의 새로운 통합 터미널 운영사가 탄생했다. 지난 11월15일 신선대부두(CJ KBCT)와 감만부두(BIT)는 통합 운영 체제인 부산항터미널(BPT) 시대를 선언했다.
BPT의 탄생은 북항 터미널 운영사들의 경영 악화가 배경이다. 신항 1-1 PNC터미널 개장과 더불어 북항의 화물은 속속 신항으로 이전했다. 원양선사들의 선박대형화 추세는 최신식의 시설을 갖춘 신항으로의 화물쏠림 현상을 부채질했다. 부산항 물동량의 절반 이상을 처리했던 북항은 2012년 44.6%, 지난해 33.9%까지 점유율이 곤두박질치며 주도권을 신항에 완전히 빼앗겼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운영사들은 수요부족으로 하역료 출혈경쟁에 나서고 있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10년전 20피트 컨테이너(TEU)당 10만원선에 달했던 하역료는 오늘날 4만원선으로 반토막났지만, 이마저도 비싸게 보는 선사들이 많다”고 말해 북항 운영사들의 채산성이 바닥까지 드러났음을 시사했다.
북항통합 이해득실 미묘한 ‘온도차’
상황이 악화되자 해양수산부는 2014년 국무회의에서 4사가 하나로 통합할 것을 안건으로 제시해 압박에 나섰다. 신선대·감만·신감만·자성대 운영사가 운영사 통합으로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도 개선하라는 주문이었다. 해수부 관계자는 “북항 물동량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주도하지 않을 경우, 지역경제와 일자리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전했다.
각사의 지난해 재무제표를 보면, 매출액과 영업이익에서 동시에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자성대를 뺀 신감만(DPCT), 신선대, 감만 부두의 영업이익은 모두 악화됐다. 대표적으로 감만부두(BIT)는 물동량이 줄자 한진 세방 인터지스가 공동출자해 합병에 나섰지만 영업이익은커녕 순이익도 못내는 말 그대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감만부두는 지난해 104억원의 영업손실, 11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감사를 맡았던 부경회계법인에서도 계속기업으로서의 유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신선대부두도 12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2014년 72억원 대비 손실 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반면 신감만부두의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크게 줄었지만 6억원 흑자를 거뒀고, 자성대부두(HBCT)는 1년 전 12억원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52억원을 기록했다.
자성대부두와 감만부두 일부를 함께 운영하던 HBCT는 주력 사업인 자성대부두의 화물량이 급감하자 2027년까지 사용하기로 돼 있던 감만부두 1개 선석 운영권을 스스로 반납한 바 있다. 부실사업의 일방적 계약파기란 비난 속에서도 선제적으로 군살 줄이기에 나선 결과, 만성적자를 면치 못하던 두 운영사와는 달리 실적 반등을 일굴 수 있었다. 신감만과 자성대부두로서는 통합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북항 터미널들의 경영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BPA는 4개사와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협상을 벌였다. 결과는 신선대와 감만 터미널 간 양자통합으로 끝났다. 일부에서 이를 두고 ‘반쪽’ 통합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기대와 달리 통합법인 설립에 자성대와 신감만은 참여하지 않았다. 참여했을 때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게 가장 큰 이유다. 북항 터미널 운영사 간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점엔 동의하면서도, 만성적인 실적 악화에 임대료까지 체납한 신선대, 감만부두와 통합하는 건 회사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두 회사의 입장이다.
신선대와 감만부두 운영사는 2013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부지를 임대하기로 BPA와 계약했지만, 임대료를 장기 체납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에 따르면, 신선대부두는 2015년 2월부터 월 35억원의 임대료를 체납했었다. 감만부두도 매월 내야하는 임대료 24억원을 2015년 8월부터 체납했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신선대부두는 494억원, 감만부두는 297억원의 임대료를 미납한 셈이다. 하지만 신감만과 자성대부두는 임대료를 꼬박꼬박 지불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4사가 통합하지 않고 경쟁체제를 유지했다면 신선대와 감만 부두의 영업손실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사의 평가가치는 자동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렵게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는 신감만과 자성대부두 입장에서는 통합 시기를 장기화에 나설수록 우호적인 지분이 제공돼, 굳이 통합을 서두를 필요가 없는 셈이다. 정부가 주도해 만성적자인 두 기업은 살리고 상태가 양호한 두 기업은 뒷전 취급했다고 자성대와 신감만부두가 주장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CJ대한통운의 한 관계자는 “운영사 4사와 BPA 간 5자대화에서 통합 참여 시 임대료 감면 및 유예, 국적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GTO) 육성을 위한 신항 2-5단계 운영권 제공 등의 혜택을 받기로 애초에 언급됐다”며 “통합 운영사의 지분율 평가가치는 시설, 화물 처리량, 자산 등으로 평가돼, 통합할 경우 신선대나 감만 터미널이 가졌던 임대료 체납이나 부채 문제는 지분율에 반영돼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BPT 통합운영사가 출범하기 전 증자를 통해 임대료 체납건과 모든 부채가 해결됐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집안문제’ 동부 빠지고 장금상선 부상
신감만과 자성대는 재무제표와 임대료 체납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통합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사실 집안 문제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합병에 반대하는 신감만과 자성대부두가 기업 내부 문제로 인해 북항 통합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5부두에 위치한 자성대부두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북항대교를 기준으로 혼자 동떨어져 있는 자성대 터미널은 북항 재개발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북항재개발 사업은 4부두까지 포함된다.
신감만부두의 경우 문제가 조금 다르다. 65%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 동부익스프레스가 동원그룹에 매각되는 절차를 밟고 있지만 진전이 없다. 동부익스프레스의 자회사인 동부인천항만이 해수부와 체결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계약 문제를 두고 동원그룹에서 인수가를 약 900억원 인하해 4700억원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동부익스프레스는 기업가치를 할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이를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동부익스프레스가 동원그룹의 요구를 들어주면 지분을 출자한 사모펀드사 KTB프라이빗에쿼티(KTB PE)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진퇴양난인 셈이다. 동부익스프레스 관계자는 “KTB PE에게 매각 권한이 상당부분 넘어갔기 때문에 인프라 투자 여부나 신감만부두의 가치를 설정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최대주주가 자사 매각에 여념이 없다보니 신감만부두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부산항 통합 운영사는 이번 통합으로 유휴 선석 2개를 BPA에 반납해 130억원을 돌려받고, 임대료도 15% 감면받는다. 반면 신감만부두는 합병에 동참하지 못한 탓에 임대료를 비롯 각종 시설비용을 꼬박꼬박 내야 한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북항 터미널 업계에서 내년에도 이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적선사인 장금상선이 부산항터미널의 최대주주로 등극하며 터미널 사업에 전격 진출, 해운항만계의 큰 관심을 사고 있다. 아시아역내 항로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이 선사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장금상선은 지난 6~7월 BIT의 지분을 주당 6원에 사들여 총 3000만원에 지분 전량을 확보했다. 장금상선의 BIT 인수로 공동출자 멤버였던 한진해운 세방 인터지스는 자금 압박에서 벗어났다.
장금상선의 한 관계자는 BIT의 지분 인수를 두고 국부유출을 막아보자는 차원에서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고 전했다. 북항의 채산성이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서 외국계 터미널 운영사(GTO)로 부두 주권이 넘어가면 국부도 유출되고 선사들도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그는 “외국계 GTO가 터미널을 장악하면 화물 처리량이 작은 국적 인트라선사들은 원양선사보다 수익이 적어 선석을 안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통합법인 순항 가능할까
BPT가 순항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세계 7위의 국적선사인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국내 항만 물동량 처리실적도 고꾸라질 위기에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북항은 부산항 전체 환적물동량 중 24.5%를 처리하고 있다. 국가간 처리실적을 보면 부산을 거점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화물이 49만8000TEU로 2위에 올랐다. 한진해운의 이탈로 근해 환적 물동량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BPA 관계자는 “두 개 운영사가 먼저 통합하게 됐지만 북항 경영이 좋지 못한 만큼 단일운영체제로 통합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라며 “거시적으로 볼 때 내년 4월 얼라이언스 재편 시 북항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하므로 단일 운영사 체제는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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