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려는 건지 생색내려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가 발표한 해운업 지원정책을 해운업계는 이렇게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 연말 해운과 조선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 예정대로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연내 지원하는 조선산업 지원책이 발표됐으며 해운업에선 초대형선 도입을 돕는 선박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정부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서 조성한 선박펀드를 활용해 신조선을 지은 뒤 나용선(BBC)을 주는 형태로 선사들의 초대형 에코선박 도입을 지원할 계획이다. BBC는 BBCHP(소유권이전부나용선)와 달리 소유권이 원 소유자인 선박펀드에게 남게 돼 선박을 빌리는 선사는 선가 하락이나 부채율 부담에서 자유롭다.
운임공표제와 한국해운거래소 설립, 부산신항 내 연근해선사 전용부두 설립, 해운기업 부실 방지를 위한 정보공유 강화 등 해운시장안정화 정책도 제시됐다. 이중 운임공표제는 빠르면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불이행 선사에겐 과징금 부과나 등록취소, 기항 금지, 항만시설사용료 감면 제외 등 고강도 제재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구조조정 확정안을 받아든 해운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요청했던 유동성 공급 지원이 선박지원 프로그램 하나로 크게 쪼그라든 까닭이다. P-CBO 발행이 한 차례 연장됐다고 하지만 신규 물량이 아닌 차환 물량에 한정되는 것이어서 유동성난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새롭게 꺼내든 신조 지원 프로그램마저 ‘부채비율 400% 이내’라는 단서를 달아 정부의 지원 의지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현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700~800%대에 이른다. 현재보다 절반 이하로 부채율을 낮춰야만 선박 신조를 도와주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일부 외국 선사 사례를 통해 부채비율 기준을 정했다고 밝혔다. 머스크라인이나 CMA CGM, 일본 선사 등의 부채비율이 우리나라 선사보다 매우 낮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선 “부채비율이 400% 이내라면 정부에 손을 벌리지도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이번 지원책을 평가절하했다. 마치 ‘떡하나 주면 살려주겠다’고 으르는 호랑이처럼 비친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집을 세놓는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재무건전성을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부의 부채비율 기준을 비판한다. BBC 방식으로 이뤄지는 이번 신조 지원프로그램 특성상 금융권에서 설립한 SPC(특수목적법인)가 선박의 원 소유주이고 선사들은 선박을 용선하는 임차인에 불과해 선사에게 재무구조 개선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선주협회는 지난달 18일 우리나라 양대 컨테이너선사의 회사채 차환 100%를 지원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지난 2년 동안 자구계획을 통해 확보한 5조5000원의 유동성이 차입금 상환과 15%대에 이르는 P-CBO 이자 지급에 고스란히 빠져나가며 재정난이 심각해진 까닭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부채비율을 반으로 낮추면 도와주겠다는 조건부 신조 선박 지원이었다.
정부는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7%를 담당하고 있고 5대 외화가득원인 해운산업을 지금처럼 홀대해선 안 된다. 무엇이 우리나라 국민경제와 산업발전에 이득이 되는 길인지 정부당국자들이 심각히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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