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언론에서 금융당국발로 정부가 두 선사의 합병을 지시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기사는 두 회사가 합병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정부가 “합병에 반대하는 근거를 사유서 형태로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이 두 기업의 합병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해운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가능성은 업계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종종 제기됐다. 두 선사를 통합함으로써 국내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토록 한다는 게 합병설의 근거다. 세계 9위인 한진해운과 19위인 현대상선이 통합하면 선복량 100만TEU를 가진 세계 4~5위권 컨테이너선사로 도약하게 된다.
중국에선 유사한 형태의 해운기업 통합작업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은 정부 주도로 합병을 추진 중이다. 나뉘어 있는 선복량을 하나로 합쳐 경쟁선사들을 따라잡겠다는 게 중국 해운당국의 속내다.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의 통합기업은 155만TEU의 선복량으로 머스크라인, MSC, CMA CGM에 이은 세계 4위권 해운사로 뛰어 오르게 된다. 두 선사는 최근 고위 임원으로 구성된 TF(태스크포스)를 발족하고 합병을 구체화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산술보다 합병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따져봐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지금까지 해운업, 특히 컨테이너선 분야의 합병은 주력 사업이 차별화돼 있을 때 주로 일어났다. 최근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함부르크수드가 나란히 칠레 CSAV와 CCNI를 인수한 경우가 그렇다. 두 독일 선사는 칠레 선사를 앞 다퉈 인수함으로써 부진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머스크라인이 사프마린과 피앤오네들로이드를 잇따라 인수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피앤오 인수는 외형 확대의 측면도 강했지만 그와 함께 전용터미널 확보 등 약점을 보완하는 성격도 컸다. CMA CGM의 델마스 인수, 하파그로이드의 CP쉽스 인수 등도 같은 경우다.
오히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처럼 엇비슷한 사업형태를 띠고 있고 레드오션에서 경쟁하고 있는 선사간 합병은 시너지보다는 리스크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함부르크수드의 합병이 불발된 게 비근한 예다. 두 선사는 서로 차별화된 사업영역이 있음에도 리스크 상승을 이유로 과감히 합병을 포기했다. 한진해운도 언론보도에 대해 해운노선이 겹친다는 이유를 들어 ‘합병 추진은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내 해운업계는 금융당국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추진하기에 앞서 해운업계 지원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게 순서라고 말한다. 금융권이 안정적인 COA(장기수송계약) 선박을 선호하고 컨테이너선을 기피하는 실정에서 정부의 해운 지원 없이 국내 양대 기업 합병이 추진된다면 성사되더라도 성공적인 결말을 보기 힘들다는 이유다. LNG·벌크 전용선 부문, 해외 터미널 운영권 등 알짜사업 매각 전에 합병이 논의됐다면 좀 더 현실성이 있었을 거란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해운산업에 10조원을 지원했다.
시급한 해운업 지원책으로 대출금리 인하를 들 수 있다. 정부의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주택담보대출금리는 2%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국내 선사들은 7~10%의 비싼 이자를 주고 선박을 도입하고 있다. 해운기업이 이자로만 연간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내는 배경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해운 순위는 세계 5위에서 6위로 떨어졌다. 최근 몇 년 간 비약적으로 성장한 싱가포르에 한 계단 밀렸다. 해운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종합지원책이 조속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국 해운의 위상은 더욱 약화될게 뻔하다.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 해운 구조조정의 시발점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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