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포워딩(국제물류주선업) 시장은 대기업 물류자회사와 글로벌 기업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현대글로비스는 설립 후 지난 10여년간 그룹사 물량뿐 아니라 협력사(vendor) 물량까지 흡수하며 일약 국내 최대 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범한판토스는 그동안 LG그룹의 방계회사로 분류되다 최근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완전한 2자물류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로지텍과 별도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었던 삼성SDS를 물류기업으로 새롭게 육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로지텍은 매출액의 90%, 현대글로비스와 범한판토스는 매출액의 70% 이상을 모기업 물량을 기반으로 창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이 그룹 물량을 무기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면 외국계 물류기업들은 독보적인 해외네트워크와 저렴한 비용구조를 배경으로 국내 물류시장에서 점유율을 확장하고 있다. DHL을 비롯해 DB쉥커 퀴네앤드나겔 판알피나 지오디스 DSV 닥서 등 유럽계와 CH로빈슨월드와이드 익스피다이터스 등의 미국계, 어질리티 일본통운 시노트란스 등의 아시아계 글로벌 포워더들이 국내에 진출해 있다.
이런 가운데 국가기관인 조달청마저 토종 3자물류기업들을 외면해 원성을 사고 있다. 조달청은 지난 2000년부터 미주 유럽 호주 아시아 지역에서 들여오는 외자물자 수송기업을 최저가 낙찰 방식의 일괄운송 입찰을 통해 선정하고 있다. 2년마다 갱신되는 운송계약을 통해 도입되는 외자물자 건수는 2000여건, 물량 규모는 1만t에 이른다. 운임수입으로 계산할 경우 연간 20억원을 훌쩍 넘는다.
문제는 입찰 참가 자격이다. 조달청은 해상운임수수료 100만달러, 항공운송 매출액 100억원의 규모를 가진 포워더만 일괄운송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해상이면 해상, 항공이면 항공 등 소위 ‘주력사업’이 구분돼 있는 포워딩업계 특성상 해상과 항공 각각의 매출액을 요구하는 자격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국내 포워더 3500여곳 중 지난해 조달청 운송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기업은 30곳 정도에 불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두고 대기업 물류자회사와 글로벌 포워더만을 위한 입찰 기준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 조달청 물류입찰을 준비했던 한 토종 포워더도 턱없이 높은 기준 앞에 참여 의사를 접어야 했다.
입찰 기준이 턱없이 높은 매출액만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AEO(종합인증우수업체)나 우수국제물류주선업체와 같은 국가공인 물류 인증을 취득한 기업들도 자격이 안 돼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인정하지 않는 국가 공인 인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감지되는 이유다.
조달청은 물류기업들의 자격 기준 개선 요청을 “국가사업을 적기에 수행할 수 있는 견실한 업체를 선정하고자 한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거부했다. 국내 포워더 단체인 국제물류협회는 대한상공회의소에 ‘물류분야 규제개선 과제’로 이 문제를 상정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개선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국가기관의 물류를 수행하는 것인 만큼 계약사 선정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는 데다 터무니없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면 개선하는 게 옳다. 국내 포워딩 시장의 95% 이상은 중소기업들이다. 정부가 나서서 내실보다는 외형과 규모만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대다수 물류기업들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는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
조달청은 외자구매 물류 입찰을 해상 및 항공으로 나누어 실시하고 국가공인 물류인증을 심사에 반영하는 등 제도 개선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토종 포워더의 국가 물류 참여 기회를 넓히고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정책에 부응하는 조달청의 모습을 기대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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