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해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협의체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기간산업·대기업그룹, 대기업, 중소기업 등 규모별로 나눠 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진행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나아가 금융기관들의 여신심사 역량을 강화해 한계기업을 정리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달 중으로 여신심사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건설 철강 석유화학을 비롯해 해운과 조선 등 기간산업에 한계기업이 몰려 있고 과잉투자가 집중돼 있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발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5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구조적으로 업종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건설 업종의 구조조정이 매우 시급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선 “한계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채권단에만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직접 나서 구조조정 속도를 높일 방침”이라고 한발 더 나아간 발언을 했다.
일련의 상황은 금융당국이 이미 해운조선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을 굳혔음을 의미한다. 그 내용이나 폭을 결정하는 절차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조만간 주무부처 차관 회의를 주최해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눌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해운산업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방침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해수부 측은 “해운 구조조정에 대해선 언론 보도를 통해서 접했을 뿐 금융위에서 통보받은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관련 부처와의 협의 없이 기업 구조조정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의 판단처럼 많은 국내 해운기업들이 열악한 재무환경으로 신음하고 있다. 올해 들어 벌써 세 곳의 선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정도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서 퇴출된 해운기업은 102곳에 이른다. 올해도 많은 곳이 외항해운 면허를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해운 불황이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일본 다이이치추오기선이나 산코기선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선사들의 재정난은 세계적인 추세다. 구조화된 수급 불균형이 전 세계 해운시장 불황의 근본 이유다.
건화물선운임지수(BDI)는 지난 2월18일 발표가 시작된 이후 최저치인 509를 찍었으며 이후에도 1000포인트 넘기는 게 힘들 만큼 지지부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컨테이너선 시장도 5년 전 2000달러를 호가하던 유럽항로 운임이 올해 들어 200달러대로 내려앉을 만큼 침체의 골은 깊은 편이다.
아울러 해운산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 축이란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수출입 물량의 99.8%를 담당하고 있을 만큼 해운은 수출 주도의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기간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외면은 여전하다. 김정훈 의원에 따르면 국내 상업은행의 총자산 대비 선박금융 비중은 0.2%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8%대에 이르는 영미계 은행과 비교할 때 국내 금융권의 해운 홀대를 알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정부가 해운산업 지원에 공을 쏟은 건 사실이다. P-CBO(신규발행채권담보부증권)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26곳의 중소형 선사가 1249억원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업계에서 바라는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는 점도 주지해야 한다.
우리는 IMF 시절 선박의 해외 헐값 매각으로 국내 해운력이 크게 퇴보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 5위로 올라선 한국 해운산업의 경쟁력이 후퇴되지 않도록 정부는 구조조정보다 지원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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