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와 법조계에서 해사법정제도 도입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한국선주협회와 한국해법학회, 고려대해상법연구회는 지난해 연말 해사법정중재활성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추진위는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통해 해사법원과 해사중재원의 국내 설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해사법원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나라 해운산업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해사법률 인프라 확충은 느린 걸음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해운 5위, 조선 1위, 무역 7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연간 1만척을 크게 웃도는 선박들이 부산항을 드나들고 있다.
산업의 발전으로 관련 소송이나 법적 분쟁이 크게 늘었음에도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사전문변호사는 70여명 정도에 불과하다. 1980년대 30여명에서 크게 늘지 않았다. 기업들이 해운과 관련된 법률 서비스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해운 · 조선산업의 법률 비용이 국외로 대거 유출되는 건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의 3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해사관련 소송도 이를 따르고 있다. 해운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법관들의 전문성 부족 문제가 대두되는 배경이다. 재판부의 비전문성은 소송지연과 판정에 대한 불만을 초래한다. 이는 곧 해사소송에서 한국 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아울러 해사전문 중재기구도 설치돼 있지 않아 대한상사중재원에서 해사업무까지 함께 보고 있는 실정이다. 상사중재원은 매년 10여건의 해사분쟁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국의 경우 가까운 중국이 해사법원을 설치 · 운용하고 있다. 10곳의 해사법원엔 570명의 판사가 배치돼 66개 종류의 해상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중국은 해상법 교수가 100여명에 이를 만큼 법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해상법 강국인 영국은 런던에 해사법원을 두고 충돌 구조 운송 책임제한 저당권 사건을 전담토록 하고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은 해사법원은 없지만 해상사건만 처리하는 전담 판사를 둬 전문성을 확립하고 있다. 해사법원이 없는 나라들도 해사전담 중재기구를 운영함으로써 각종 분쟁을 해결하고 있다. 싱가포르 일본 미국 등이 그 예다. 특히 싱가포르는 해사중재 처리 건수가 40건을 넘을 만큼 그 활약이 남다르다.
최근 열린 해사법정제도 국제세미나에선 해사법원 제도 도입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해사법원을 1심법원으로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해상사건이 많은 서울이나 부산이 후보지다. 인천과 광주에 지원을 두는 것도 모색할 수 있다. 법원 내에 해상사건 전담부서를 두거나 보직이동을 하지 않는 전담판사를 두는 것도 차선책으로 검토 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우리나라는 행정법원 가정법원 특허법원 등의 전문법원을 이미 운영 중이다. 나아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를 확대해 도산법원을 설립한다는 청사진도 제시돼 있다. 연장선상에서 ‘대법원 사실심 충실화 사법제도개선위원회’는 지난 6월 특성화 법원 제도 도입 대상에 해사분야를 포함했다. 이 제도는 기존 법원을 각 분야별로 전문화하는 방식이란 점에서 독립법원 체계인 해사법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해상 사건은 부산지법, 국제거래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증권은 서울남부지법, 언론 사건은 서울서부지법 등에서 맡는 식이다.
해사법정추진위원회는 사법부와 연계해 올해 안으로 법원에 해사전담부를 설치하는 등 기초여건을 조성한 뒤 2017년에 1심 해사법원을 설치한다는 내용의 구체적인 계획안을 내놨다. 다만 독립법원으로 운영할 만큼 적절한 수의 해상 재판 수요가 있는지가 해사법원 도입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상사건 취합과 입증작업, 해상법 전문인력 확충, 법령정비 등 해사법원 설립 실체화를 위한 적극적인 준비 작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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