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8 10:06

여울목/ 새주인 맞은 팬오션의 사회적 책무

팬오션이 새주인 찾는 과정을 마무리 지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파산부는 지난 12일 서울법원종합청사 3별관에서 열린 관계인집회에서 팬오션이 제출한 변경회생계획안을 인가했다. 이날 변경회생계획안 찬반 표결에서 회생채권단 87%, 주주 61.6%가 찬성표를 던졌다. 1.25대 1의 주식 감자에 반발해 보이콧을 선언했던 소액주주들의 참담한 패배였다.

이로써 팬오션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닭가공업체인 하림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아들였다. 하림은 지난 17일 오후 2시께 팬오션에 인수단을 파견하고 본격적인 경영권 인수 작업에 들어갔다. 10명으로 구성된 인수단엔 팬오션 출신들이 대거 포함됐다. 추성엽 전 대표이사를 비롯해 정갑선 전 전무, 김혁기 전 상무, 유재욱 전 차장 등이다. 나머지 6명은 하림 임원으로 구성됐다. 경영권 인수는 신주발행, 유상증자와 감자, 신주 상장 등의 절차를 거쳐 7월 말 모두 마무리될 전망이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도 동시에 종결된다.

국내 1위 벌크선사의 법정관리행은 전 사주의 경영철학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강덕수 전 회장은 팬오션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신조 발주한 32억1200만달러 중 90%에 이르는 28억9400만달러를 STX조선측에 ‘묻지마 발주’토록 했다. 선가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59척의 선박 중 9척을 뺀 나머지가 STX에 싹쓸이 발주됐다. 조선을 성장시키고자 했던 강 전 회장의 무리한 발주 전략은 탄탄한 선사를 부실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팬오션 사태는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한국 해운산업의 신인도 추락이 첫 피해였다. 해외 해운업계에선 국내 1·2위 기업이 나란히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더이상 한국 해운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팬오션의 법정관리로 독일 콘티사는 시부인 과정을 거쳐 수천억원의 용선료를 떼인 바 있다.

국내 기업들도 피해를 보긴 마찬가지였다. 산업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을 비롯해 선사 하역사 지방해운대리점업체 등 팬오션과 거래한 수많은 업체들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봤다. 팬오션과 상사거래로 얽힌 국내외 업체는 2000여곳이 넘는다.  회사채 채권은 무려 1만여건이 신고됐다.

회사 직원들도 피해에서 예외일 순 없었다. 특히 팬오션의 경우 직장을 잃은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직원들마다 우리사주로 인해 평균 1억원 안팎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정관리와 매각 과정에서 수차례 감자가 진행되면서 주주들의 피해도 컸다. 요즘 팬오션이 거두고 있는 영업이익은 많은 이들의 눈물과 희생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림이 M&A(인수·합병) 과정에서 큰 이득을 봤다는 사실도 변경회생계획안 인가 과정에서 확인됐다.

매각이 마무리되면 팬오션은 오너 리스크를 털고 재도약에 나서게 된다. M&A를 진두지휘한 추성엽 전 대표이사와 정갑선 전 전무 등의 경영진 합류가 확실시 된다.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서 새출발하는 만큼 하림 김홍국 회장과 새 경영진은 앞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과거 강덕수 전 회장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팬오션의 안정적인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해 인수 과정에서 천명해온 글로벌 곡물유통기업 도약 프로젝트가 문제점은 없는지 사전 리스크 분석과 검증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정도경영, 윤리경영을 통해 국가경제와 한국 해운산업 발전에 이바지 해야 한다.

아울러 김유식 관리인이 팬오션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우리사주 대출금 회수 소송도 취하하는 미덕을 보여야 한다. 전 사주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신 고통 받고 있는 전현 직원들을 대상으로 채권추심에 골몰하는 건 국가와 국민의 배려를 발판으로 재기한 기업의 도리가 아니다. 하림의 통 큰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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