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11월, 기자가 바라본 광양항 컨테이너부두 전경은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갠트리크레인은 한 마리의 포효하는 맹수의 발톱과 흡사했고, 물위에 떠있는 컨테이너선은 역사책에 등장할 법한 위용을 뽐냈다. 광양항의 부두 전경도 인상적이었지만 바다에서 바라본 광양만의 풍경은 아직까지 기자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기자는 ‘광양항국제포럼’ 둘째 날인 7일 여수광양항만공사(YGPA)의 항만관리 안내선 < 월드마린 >호에 승선해 광양만에 위치한 시설들을 해상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2012년 YGPA가 자체 도입한 < 월드마린 >호는 여수광양항의 항만시설 유지관리와 2012여수세계박람회 주요 방문객들의 항만안내와 홍보를 위해 도입됐다. 35t 규모인 이 선박은 길이 17.95m, 너비 5.65m에 최고속력 33노트를 낼 수 있으며 최대 승선인원은 30명이다. 이순신대교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급부상 중인 < 월드마린 >호의 엔진이 굉음을 내지르자 가을 햇살 머금은 물결이 포말을 일으켰다.
< 월드마린 >호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자의 카메라 셔터도 바빠졌다. 언제 다시 이 풍경을 볼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기자의 눈에 포착된 장면은 카메라에 담겼고 사진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 월드마린 >호에 가장 먼저 손짓을 한 건 이순신대교였다. 1조644억원을 투입해 건설된 이순신대교는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과 전라남도 광양시 금호동을 연결하는 국내 최대 현수교로 총 길이가 2260m에 달하는 세계에서 4번째로 긴 현수교다. 100% 국산자재·장비·기술로 시공된 한국형 현수교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해 2월 개통한 이순신대교는 광양항 항만물류업계의 비용절감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광양간 화물 이동시간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는 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이순신대교는 여수석유화학단지와 더불어 야경을 만끽하기에 좋은 장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신대교 밑을 조금 지나 이동하니 좌측에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보였다. 1500㎡의 바다를 매립해 만들어진 광양제철소는 서울 여의도의 5.5배, 축구구장으로 치면 3500개의 어마어마한 크기라고 한다. 연간 생산량만 1800t에 달하는 광양제철소는 YGPA의 수입 중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직접 내려 공장을 견학할 수는 없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역군들의 열기가 배안에 있는 기자에게 전달되기에 충분했다.
▲이순신대교 너머로 광양항 후판부두가 보인다. |
광양만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묘도라는 섬은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거대한 비밀이 존재한다. 이 섬이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태풍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조수간만의 차가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1년 365일 가운데 360일 이상 하역작업이 가능하다. YGPA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던 묘도는 석유화학단지와 산업단지 등이 세워지며 인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최근 묘도는 이순신대교와 묘도대교, 산단 야경을 관람하려는 방문객이 크게 늘어 인기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광양만에는 묘도뿐만 아니라 송도·장도 등의 섬이 있으며, 해안에 따라 넓은 간석지가 형성돼 있다.
묘도가 시야에서 멀어져갔고 여수국가산업단지가 기자를 맞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었으니 바로 ‘사고’였다. 2012년에 발생한 한국실리콘가스 누출과 지난해 대림산업 폭발사고, 올해 < 우이산 >호 기름유출 등 여수산단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여수산단내 잇단 사고로 지역주민들은 이주대책 등 안전한 생활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눈 깜짝할 사이, 40여분의 시간이 흘러갔고 < 월드마린 >호는 광양항에 정박했다. 정박지 인근 컨테이너부두에서는 하역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컨테이너 박스가 4열에서 높게는 6열까지 무리를 지어 쌓여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풍성해진 느낌이 들었다. 컨테이너 박스는 단순히 네모난 상자가 아닌 ‘경제성, 신속성, 안전성’을 가져온 혁신적인 수송도구다. 저 많은 컨테이너들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항만이야말로 물류를 대표하는 공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광양만에 지는 붉은 노을을 뒤로 하고 기자는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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