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전하는 따뜻한 마음 한 그릇
“맛난 먹거리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우리네 희로애락과 함께한다. 하루의 마지막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김빠진 맥주는 우리를 분노케 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마시는 술은 무엇이든 달짝지근하고, 사랑을 뒤로한 이가 마시는 술은 아프고 쓰디쓰다. 좋은 음악이 삶의 애환과 더불어 생의 기쁨을 환기하고 애증의 눈물을 쥐어짜는 것처럼. 먹거리가 우리의 원초적인 감각을 이렇게 건드리는 까닭은 그것이 곧 생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치열하게 감각을 벼리지 않을 수 없다.” - 역자 김난주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2004년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와 2009년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에 이어 한국에 출간된 세 번째 에세이집 『부드러운 양상추』. 이 작품은 2011년 2월 일본에서 출간된 에쿠니의 최신작으로 에쿠니의 일상, 그리고 그 일상과 함께하는 음식들에 관해서 에쿠니 특유의 문체로 잔잔하게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먹거리를 둘러싼 언어와 소설, 여행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나날들이 이루어나가는 에세이집 『부드러운 양상추』에서 소설 밖 진짜 에쿠니의 모습을 지금 만나보자.
한 입 먹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배에 불을 밝힌 듯한 느낌이리라. 달콤함이 입안에 번지고, 힘도 불끈 솟으리라. 훈훈하게 몸을 데우는 동시에 허기를 살짝 채워주고, 기분을 달래주고 또 기운 나게 하는 그런 것.
『부드러운 양상추』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좋아하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추억, 풍경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음식을 (혹은 어떤 재료를)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그때 누구와 함께 있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에 관해 하루하루 일기를 써내려가듯 조곤조곤 털어놓는다.
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에 관한 단상이라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에쿠니 가오리는 한 잔 마시면 기분을 달래주고 기운 나게 하는, 진하고 따뜻하고 너무 뜨겁지 않은 ‘따뜻한 주스’, 옛 친구를 만난 듯한 푸근함이 느껴지는 ‘콜드미트’ 등을 먹으며, 혹은 과거에 먹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위로받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지만, 마음 맞는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게 웃고 떠들다보면 낮에 받았던 스트레스는 어느새 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위로한다는 흔한 한마디보다 진정으로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함께 먹는 수프 한 그릇에서 전해져오는 따뜻한 마음과 행복이 아닐까.
반복된 하루 사는 일에 지친 독자들은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으며 에쿠니 가오리가 전해주는 사랑스러운 나날들과 맛있는 음식들 이야기에서 위로받고, 또한 자신을 기운 나게 해주는 자신만의 음식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먹기만 한 이틀이었지만, 잊지 못할 광경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먹은 것이 아니라 낯선 이가 마셨던 것, 그리고 그 풍경.” 화창한 낮의 맛이 나는 음식 필라프, 친절한 비파, 고요한 포타주, 으스대지 않는 컵라면 등 에쿠니 가오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갖가지 음식들과 그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 그 자리.
에쿠니 가오리는 일상의 작은 순간을 포착해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그녀가 마음에 담았던 음식들과 그 때 만났던 사람들, 그곳의 풍경을 40개의 에세이 속에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각각의 에세이 속에는 각양각색의 음식들과 소설 밖 에쿠니 가오리의 일상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남편과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든지, 작업실에서 원고를 쓴다든지, 동생과 함께 쇼핑하며 거리를 걷는다든지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나 그녀가 회상하는, 얇게 저민 소고기를 구웠을 때 프릴처럼 오글오글해지는 하얀 기름살 ‘꼬들꼬들’을 좋아하고, 바다에서는 레몬 빙수밖에 먹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모습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또한 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길치인 자신이 무사히 제 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자랑스러워하는 등 에쿠니 가오리의 인간적인(?) 모습도 살짝 엿볼 수 있으니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책에 실린 사랑스러운 일러스트 또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왜 아삭한 양상추가 아니라 부드러운 양상추인지 궁금하다면, 소설 밖 진짜 에쿠니를 알고 싶다면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와 그녀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혹은 소설을 읽을수록 궁금해졌던, 매력적인 작가이자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인 에쿠니 가오리의 일상과 내면을 한껏 엿볼 수 있는 이번 작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에쿠니 가오리 Kaori EKUNI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에쿠니 가오리는 미국 델라웨어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언제나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1992)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나의 작은 새』(1998)로 로보우노이시 문학상을 받았고, 그 외 저서로 『수박 향기』, 『잡동사니』, 『우는 어른』 등이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와 『반짝반짝 빛나는』,『호텔 선인장』,『낙하하는 저녁』,『울 준비는 되어 있다』,『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도쿄 타워』,『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홀리 가든』,『장미 비파 레몬』,『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좌안 1· 2』,『제비꽃 설탕 절임』, 『빨간 장화』,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등으로 이미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은 바 있는 에쿠니 가오리는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서,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 3대 여류 작가로 불린다.
역자 - 김난주
경희대학교에서 우리 문학을 공부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역서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낙하하는 저녁』,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웨하스 의자』,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홀리 가든』, 『차가운 밤에』, 『장미 비파 레몬』,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좌안 1·2』, 『제비꽃 설탕 절임』, 『소란한 보통날』 등 다수가 있다.
< 김보람 기자 brkim@ksg.co.kr >많이 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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