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승선근무예비역제도를 축소 또는 폐지할 방침인 가운데 승선근무예비역을 상선사관으로 개칭해 미국과 같이 준(準)해군 또는 제4군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승선근무예비역제도 토론회’에서 한국전략문제연구소 김기호 박사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를 통해 배출된 해기인력들이 국가 비상시에 육·해·공군과 함께 국가안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예비역’이란 명칭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미국은 해군과 상선대를 국가 해양력의 양대축으로 설정해 상선대의 제4군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연방상선대학 학생은 해군예비사관후보생을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졸업생은 최소 6년간 예비역 장교로 복무해야 한다. 학생 전원에 등록금과 기숙사 제복 교재가 제공된다.
미국은 안보선대제도 326척을 운영 중으로, 이 가운데 비상시 즉시 동원 가능하도록 지정한 해운안보계획(MSP) 선대 60척에 척당 30여억원, 긴급예비군(RRF) 50척에 연간 300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도 미국을 벤치마킹해서 승선근무예비역제도를 상선사관 또는 승선사관으로 개편하고 차출 인원도 현행 1000명에서 13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전체 상선사관, 즉 준해군은 병력 5만명, 선박 1060척에 이르게 된다. 3년간 승선복무하는 현역 개념의 선봉대 3900명, 40세까지 편성되는 예비역 2만800명, 40~60세 근로소집 2만6000명 등이다.
전시특례상 장교나 부사관 등의 간부로 편입되는 40세 이하의 예비병력은 본대 군수지원을 맡고 근로소집 대상자는 인력·항만통제, 군수지원, 노무지원 등의 후방 근무를 맡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박사는 상선사관을 해군 4.1만명 160척과 더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 해군력은 9만명 1200척의 대군으로 거듭나 6만명 810척인 북한 해군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해군은 북한뿐 아니라 미국(32만4000명) 중국(24만명) 일본(4만5400명) 등에 견줘도 열세에 놓여 있다.
그는 승선근무예비역을 개편해 제4군으로 편성할 경우 실질적인 국방력을 증강시키게 돼 형평성 또는 특혜 등의 논란이나 시비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승선근무예비역은 현역 입영 대신 3년간 배를 타면 군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하는 병역제도로, 2007년 병역법 개정과 함께 도입됐다. 국방부는 저출산에 따른 병역 자원 감소를 이유로 2023년까지 대체복무제도를 폐지 또는 축소하는 한편 승선근무예비역도 규모를 현행 1000명에서 500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병무청장이 배정인원을 점차 줄여나갈 경우 법적으로 제도가 유지되더라도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승선근무예비역은 대체복무제도와 다른 제도
이윤철 해사법학회장(한국해양대 교수)은 특혜나 공익성, 병역자원 감소 등 승선근무예비역제도와 관련해 불거지는 논란을 해운업계 차원에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교수는 우선 승선근무예비역과 대체복무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띤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도 폐지 정책의 연장선에서 승선근무예비역 존폐 여부를 검토하는 국방부를 에둘러 비판한 대목이다.
병역법은 대체복무와 승선근무예비역을 아예 분리해 규정하고 있다. 대체복무가 단순 승선복무를 통해 잉여인력 활용과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게 목적이라면 승선근무예비역은 비상시 활용할 수 있는 국가필수 해양인력 확보를 목적으로 하며 항해사와 기관사가 그 대상이다. 복무기간도 현역만 배정하는 승선근무예비역은 3년인 반면 대체복무제도는 현역은 2년10개월, 보충역은 2년2개월이다.
이 교수는 또 승선근무예비역이 특혜라는 일부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승선근무예비역이 특혜라면 부유층이나 고위공무원, 정치인, 법조인 등 사회지도층 자녀를 비롯한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고, 특혜를 악용한 부작용들이 나타나야 하지만 오히려 지원율이 하락하고 있다. 승선근무가 젊은이들에게 3D가 아닌 4D(Dirty Dangerous Difficult Distant) 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사실상 현역인 승선근무예비역은 국방비를 절감하고 해군간부병력을 증강하는 효과가 있어 병역자원 감소와 청년실업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정부가 해기사를 해군예비병력으로 양성하거나 미국과 같이 제4군으로 편제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대학교 김인현 교수를 좌장으로 한 토론에서 해양수산부 엄기두 해운물류국장을 비롯해 목포해양대 김득봉 교수, 한국해기사협회 이권희 회장, 에이치라인해운 선원노조 권기흥 위원장 등은 모두 승선근무예비역이 폐지 또는 축소될 경우 한국해운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해기사 양성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엄 국장은 특히 “역할이나 공공성, 복무기간이나 고립된 합숙생활 등 모든 면에서 승선근무예비역이 현역병보다 책무가 무겁다”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형평성 논란을 일축했다.
김득봉 교수는 일본이 2011년 3월 일어난 동북부 대지진 당시 해외 선박들이 지진 지역 기항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자국선원과 자국선박을 동원해 물류대란을 막은 사실을 예로 들며 재난이나 비상상황에 대비해 승선근무예비역이 존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 김경중 인사기획관은 “병역 자원 감소에 대응해 전환복무 폐지와 대체복무 감축 등 현역병 확보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국가 정책적 필요성, 병역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해 연내에 승선근무예비역을 포함한 병역제도 개선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김 기획관은 2020년대 초반 인구절벽으로 병역자원은 35만명에서 22만~25만명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이고 국방부는 상비병력 규모를 62만명에서 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13일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 부산해사고 인천해사고 학생들이 세종시 해양수산부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해양계의 승선근무예비역제도 유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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