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0 10:56

추억의 명화/ 라라랜드 (LA LA LAND)

서대남 영화 칼럼니스트

배우를 꿈꾸는 카페 여직원과 전통 재즈클럽 경영의 야망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꿈과 현실 사이서 갈등하고 서로 비슷한 처지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예술세계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이야기 뮤지컬로 풀어나가는 내용을 주제로 한 뮤직 로맨스가  ‘라라랜드(LaLa Land/2016)’다. 제목의 상징성은 황홀한 사랑, 순수한 희망, 격렬한 열정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로스앤젤스(L.A.)’의 별명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선 전개되는 시퀀스 - 뜨거운 태양, 주차장이 된 숨막히는 도로, 기어가다 멈춘 자동차, 그리고 요란한 굉음의 경적소리에 귀가 따갑고 고가도로에 멈춰선 범퍼 투 범퍼, 승용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차지붕 위서 노래하고 춤추며 널을 뛰듯, 서전트 점프를 하거나 설원을 활강하듯 청춘 남녀가 발랄하게 도약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도로는 꿈과 희망의 노래로 대규모 공연무대로 변한다. 영문도 모르고 필자 취향의 007의 제임스 본드나 인디아나 존스의 오프닝을 능가하는, 화려하게 펼쳐지는 역동적인 도입 장면에 매료돼 황홀하기만 했다. 

첫 장면부터 너무나 역동적이고 경이로운 분위기에 압도 당하는 관중에게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Emma Stone)’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은 바로 이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중지 손가락질 욕설을 하는 가운데 눈으로 마주친다. 교통체증 북새통 속에서도 대본을 외며 오디션 연습을 하느라 신호를 놓친 미아를 본 세바스찬이 마구 경적을 울리자 서로가 눈알을 부릅뜨고 욕설을 나눈게 단초다. 

서로에게 끌림으로 인연이 된 만남은 아니었지만 도로에서 알게 된 두 사람은 이 짧은 접촉 이후 우연히 몇 번을 더 만나고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데이트로 이어지고 급속한 사랑은 동거로 발전한다. 여배우가 되는 소원 성취를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하는 미아는 대학을 중퇴하고  6년간에 걸쳐 오로지 헐리웃 진출에 전력을 쏟았지만 오디션에 매번 낙방을 거듭하는 처량한 신세다. 화려한 헐리웃 환상에 젖어 원샷을 노리는 친구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제는 지쳐 실망과 외로움에 허덕인다. 

아마추어로 피아노 건반을 맴도는 세바스찬 역시 제대로 뭐 하나 이뤄 놓은 것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높은 빈털털이다. 그러나 재즈에 대한 열정은 차고 넘쳐 대중음악에 밀려 재즈를 멀리하는 대중이 늘어가고 있지만 언제고 정통재즈 연주가들 클럽을 만들어 ‘재즈시대’ 르네상스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망은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이같이 악연처럼 만난 두 사람의 꿈과 희망은 쉬이 의기투합하고 사랑도 과속으로 무르익는다. 달성하려는 꿈도 두 사람 모두 확고하지만 마주치는 현실은 거듭되는 실패와 실망 일색이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에 대한 갈망은 늦출 수 없어 두 사람은 이성적으로 가까워지는 한편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아갈 공통점을 발견하고 같은 고지를 향해 스스로의 꿈을 이루고 자신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예술세계에 목표를 두고 갖은 노력을 쏟으며 전진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어느날 세바스찬은 미아가 자기 엄마와 통화하는 내용을 엿듣고 돈에 크게 쪼들리고 있음을 알게 돼 우선 돈벌이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좋아하진 않지만 R&B (리듬과 블루스) 인기 클럽 리더, ‘키이스(존 리젠드/John Legend)’가 이끄는 클럽의 밴드에 들어가 활동을 재개한다.

키이스 말대로 정통 재즈가 아닌 퓨전음악을 하는 ‘메신저’라는 그룹을 운영하면서도 이들은 많은 인기를 얻고 순회 공연도 하게 된다. 그러나 부부처럼 지내던 미아와는 서로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게 되고 어쩌다 찾아온 미아는 메신저 공연 음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한편 자신도 오디션에 연거푸 떨어지자 세바스찬 권유대로 직접 대본을 써 자비로 혼자만 무대에 서는 1인극을 기획했으나 흥행엔 완전 참패하고 만다. 한 두 관객과 친구 몇 사람 뿐인 공연장은 황량했고 게다가 밴드 촬영으로 세바스찬 마저 눈에 띄지 않다가 뒤늦게 달려 오긴 했으나 실망한 미아는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만의 스타일을 담을 수 있는 각본으로 배우의 꿈을 키워가려던 미아에게 뜻밖에 그녀를 찾는 캐스팅 콜이 세바스찬에게 걸려온다. 미아에게 드디어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걸 알아 챈 그는 그녀의 집이 어느 도서관 근처라는 기억을 더듬어 무작정 찾아 나선 후 대충 예측 지점에 이르러 흥분한 나머지 무작정 클랙슨을 울려 재회하는 장면은 너무나 환희로운 기억으로 회상된다. 최종 오디션을 거친 미아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파리 촬영을 떠나 요란스런 스케줄을 소화하며 스타덤에 다가선다. 

화면은 5년이란 세월이 흘러 변화된 현실을 역력히 읽어간다.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남편을 맞아 애기를 갖고 성공한 여배우의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차량행렬로 길이 막혀서 약속시간에 늦을 것으로 생각되자 사랑스런 딸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부부는 그냥 아무 곳에나 가서 뭘 좀 먹자고 들어가다 미아는 상기되는 업소 간판을 보며 지난 날 그녀가 세바스찬에게 재즈클럽을 열면 사용하라고 그려줬던 기억을 되살리며 긴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입장을 하고 보니 옛 연인 세바스찬이 눈에 띄고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시선은 놀란 표정으로 마주친다.

세바스찬은 꿈꾸던 재즈클럽을 운영하는 자기 업소에서 옛 사랑을 재회, 능숙한 솜씨로 미아와의 테마를 연주한다. 에필로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지난날 세바스찬이 크리스머스에 정해진 캐롤을 치지 않고 멋대로 즉흥연주를 하다가 클럽 ‘보스(J. K. 시몬스/J.K. Simmons)에게 해고당하던 날, 미아가 마음에 들어 칭찬을 하려고 다가서자 격렬한 키스세레를 퍼붓던 장면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연인으로 발전해 사랑을 나누며 즐겁게 지내고 이어 환상 속에서 애기를 갖는 등의 환각 파노라마로 지금의 남편 자리에 세바스찬을 대입시켜 사랑을 완성한 스토리를 전개시켜 보인다.

그러나 세바스찬은 현실로 돌아와, 가슴아픈 심경을 억누르며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미아도 남편과 함께 클럽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눈빛 사랑으로 서로 아디우스를 고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에 만났던 두 사람은 서로가 다른 길로 미완성의 무대를 만들어 왔지만 “이 영화는 마법이다”라고 했던 선전 문구처럼 꿈을 쫓던 이들 청춘의 열정과 사랑은 헤어짐을 뛰어넘어 연출자가 선사하는 비현실적인 마지막 영상을 통해 못다 이룬 사랑이 순각적이나마 관객에게 완성된 사랑으로 종결된다.

최고의 드럼영화 ‘위플래쉬(Whiplash)’로 전 세계 영화음악 팬들을 열광시켰던 ‘다미엔 차젤레(Damien Chazelle)’의 이란성 쌍둥이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되레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y’와 ‘마크 러팔로(Mark Ruffalo)’ 주연의 ‘다시 시작하는 노래(Begin Again/2013)’가 전반적으로 오버랩되는 연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세계 언론들의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세계 유수 영화제가 연달아 초청,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여우 주연상, 시카고 영화제 여우주연상,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 수상과 함께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드디어 라이언 고슬링은 2017 제74회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엠마 스톤은 여우주연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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