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불균형에 시달리던 정기선시장 위기가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로 터져 나왔다. 수십 년 간 쌓아온 해운산업 강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정부의 섣부른 판단으로 한국 해운의 위상은 벼랑 아래로 추락했다.
국적 선사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주력사업부문인 원양 컨테이너부문의 경쟁력이 글로벌 선사대비 지속적으로 약화되면서 부실화됐다. 미흡한 선박투자와 구조조정으로 인한 수익 사업의 매각 등은 몇 년간 지속된 시황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으로 끌고 갔다.
결국 한진해운은 8월31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원양항로 선복량 7위 한진해운의 공백은 바로 해상운임 인상으로 이어졌다. 운임하락세를 보이던 동서항로는 2배 가까이 운임이 치솟았고 미주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던 한진해운을 대체하기 위해 경쟁 선사들이 앞 다퉈 서비스를 늘렸다.
한진해운 부실화로 인한 일시적인 교란요인이 제거되면 다시 운임경쟁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강도는 이전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작년 4분기 이후 머스크라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사들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진해운 부실화 사태를 운임정상화의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한진해운 부실화의 학습효과로 화주들이 저렴한 운임보다는 적시성 등 품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신인도가 우수하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우량 선사로 주요 화주들이 이동하면서 상위 선사들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자금 없어 못한 선박투자, 운임경쟁력 상실 초래
프랑스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컨테이너 선복량 상위 15개 선사들이 여타 선사들에 비해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 기준 글로벌 컨테이너 선복량은 2075만TEU로 파악되고 있으며 선복량 기준 1위 선사는 머스크라인으로 320만TEU를 기록, 15.4%를 점하고 있다. 2위인 MSC와 CMA CGM은 각각 280만TEU, 230만TEU로 13.4%, 11.1%를 차지하고 있다. 1~3위 선사의 합산 점유율은 39.9%에 달하고 있으며 1~3위 선사와 여타 선사와의 격차는 상당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우에는 각각 61만7천TEU, 43만6천TEU로 글로벌 선복량 점유율이 3.0%, 2.1%에 그치고 있다. 1위 선사인 머스크라인의 선복량 대비 한진해운은 19.3%, 현대상선은 13.6%로 시장지배력이 크지 않은 수준이다.
15대 선사의 선복량 기준 평균 용선비중은 54.8%이다. 이 가운데 홍콩 OOCL과 범아랍선사인 UASC의 경우 사선위주의 선대투자로 용선비중이 경쟁회사 대비 상당히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상위 선사들의 경우에는 머스크라인 44.9%, MSC 61.8%, CMA CGM이 56.2%로 평균 내외를 나타내고 있으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우 55.6%, 62.1%로 평균 수준대비 큰 차이는 없는 상황이다.
상위 선사들은 선대운영효율성도 높은 수준이다. 최근 진행 중인 신조선 투자의 평균 선박규모는 1만3천TEU 내외로 초대형선박 투자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상위 5개 선사 머스크라인, MSC, CMA CGM, COSCON, 에버그린의 발주 비중이 56.0%에 달하고 있다. 상위 5개 선사의 경우 1만3300TEU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의 선복량 비중이 18% 수준을 보여 최근의 투자를 고려할 때 비중은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스신용평가 곽노경 실장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우 1만3천TEU급 이상의 초대형선박을 확보하지 못해 지속되는 운임경쟁에서 지위를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정기선 시장은 선대 대형화와 함께 선사들 간의 합병으로 얼라이언스의 합종연횡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선사들은 지속적인 선대확충을 진행해왔으며 규모의 경제 확보가 용이한 대형 컨테이너 선박에 대해 활발히 투자했다. 정기선 시장 수급불균형이 지속되자 선사들은 인수 합병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다. 지난 3월 중국선사인 코스코와 차이나쉬핑(CSCL)이 합병했고 7월에는 싱가포르 선사인 NOL(APL)이 CMA CGM으로 흡수 합병됐다. 2014년 중 칠레 선사인 CSAV를 합병한 하파그로이드는 중동 선사 UASC와 합병을 진행해 4대 얼라이언스가 내년 4월 3대 얼라이언스로 재편될 예정이다.
컨 사업 의존도만 높아진 구조조정의 ‘덫’
글로벌 선사들은 정기선 침체에 사업다각화로 위기를 버텨왔다. 일본계 선사, 중국계 선사, 머스크라인 등을 중심으로 사업 다변화 수준이 높은 편이다. 특히 일본계 선사들인 NYK, 케이라인, MOL 등은 컨테이너운송 이외에도 건화물, 탱크선, 자동차전용선, 카페리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컨테이너부문의 매출비중은 42~57%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하파그로이드, CMA CGM, 에버그린 등 상위 선사들의 경우 컨테이너사업 비중이 97~100%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세계 1위 머스크라인은 컨테이너 부문이 매출 중 68%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사업다각화를 토대로 한 환경 변화 대응력이 경쟁사 대비 크게 저하됐다. 현대상선은 2000년대 초반 국내 컨테이너터미널을 매각하는 한편 고정거래처(현대자동차그룹)를 확보하고 있는 자동차운송부문을 매각했다. 최근에는 채산성이 양호한 LNG 및 벌크 전용선부문을 매각했다. 한진해운도 2009년 분할 당시 안정적인 사업인 부동산임대, IT서비스, 선박관리사업 등이 제외됐으며 2014년 중 벌크 전용선 사업을 한앤컴퍼니측에 매각했다. 2015년 이후에는 계열사에 항만관련 자산 및 아시아 역내항로 사업을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속적인 구조조정 및 사업부 매각으로 한진해운은 2015년 기준 컨테이너 비중이 92%에 이르고 있다. 현대상선도 컨테이너부문 비중이 77%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현대상선은 올해 벌크 전용선 사업을 추가적으로 매각해 컨테이너 사업비중이 80% 이상으로 늘어났다. 양대 국적선사들은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컨테이너부문에 대한 사업의존도가 높아졌지만 채산성이 높은 사업을 양도하면서 상위기업들이 주도하는 원양 컨테이너 시장의 가격경쟁에 대한 대응능력이 점차 약화됐다.
머스크라인이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보여 왔다. 반면 국적 선사들은 업계 평균대비 저조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2011~2015년 기간 동안 평균 영업이익률(EBIT/매출액)은 머스크라인이 4.2%, 업계평균 -0.6%인데 반해, 한진해운은 -2.0%, 현대상선은 -4.8%에 그쳤다. 특히 2012년 이후 국적 선사의 영업수익성이 업계 수준을 상당 폭 하회하고 있다. 글로벌 선사 대비 미진한 투자로 인한 점진적인 경쟁력 저하, 채산성이 양호한 사업의 외부매각 등이 누적돼 영향을 미쳤다. 올해 들어서는 국적 선사와 해외 선사와의 수익성 격차가 더욱 확대됐다.
나이스신평은 “업계 최상위의 비용구조를 확보하고 있는 머스크라인도 적자를 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임경쟁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수준으로 보인다”며 “한진해운 부실화에 따른 운임상승 상황 및 주요 화주들의 비가격요소 중시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하반기 이후 상위 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들의 영업수익성 제고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국적 컨테이너 선사의 경우 경쟁선사 대비 상당히 저조한 수익성과 낮은 사업다변화 수준 등을 감안하면 기본적인 원가구조와 업무 현황에 대한 대응력이 열위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기선 시장이 회복되거나 상당한 수준의 원가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경쟁선사 대비 저조한 수익성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년간 벌어진 수익성 격차, 차입금 부담 눈덩이
머스크라인을 중심으로 해외 컨테이너 선사들은 국적 선사 대비 양호한 수익성으로 안정적인 영업현금을 창출해 왔으며 이를 토대로 컨테이너 사업이 경쟁력 제고를 위한 선대투자를 진행해 왔다. 반면 국적 선사들의 경우 저조한 수익성으로 인해 영업현금창출력이 제한되는 모습이며 이로 인해 해외 선사대비 미진한 투자실적을 보였다.
국적 선사의 재무안정성도 해외 선사대비 열위한 수준이며 최근 수년간 그 격차가 확대됐다. 머스크라인의 부채비율은 100% 미만으로 그 외 주요 해외 선사도 200% 내외의 비교적 양호한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국적 선사들의 경우 최근 부채비율이 1000~2000% 내외 수준으로 매우 열위한 상태다.
국적 선사들의 경우 사업부 양도, 자산 매각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차입규모를 감축시켜 왔다. 2012년 말 8조5천억원에 이르던 한진해운의 총차입금은 벌크전용선 사업 양도, 터미널 및 항만관련 지분 매각 등이 진행되면서 2016년 6월말 4조9천억원으로 축소됐다. 같은 기간 현대상선의 총차입금도 현대택배 매각, LNG 및 벌크 전용선사업 양도, 현대증권 지분 매각 등의 자구계획 이행을 통해 6조7천억원에서 3조7천억원으로 줄었다. 대부분의 사업부문을 매각했지만 손실누적에 따른 자기자본 규모 위축으로 차입금의존도는 80% 내외에 머물렀다. 머스크라인의 차입금의존도가 20% 내외, 그 외 해외선사의 차입금의존도 또한 45% 내외에 머물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국적 선사들의 차입부담은 매우 과중한 수준으로 전반적인 재무구조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들의 보유 자산을 고려한 자체적인 재무적 대응능력을 살펴보면 머스크라인 및 일본선사들이 재무적 융통성이 양호한 수준이다. 머스크라인은 유사시 안정적인 수익성을 내고 있는 터미널사업, 석유 및 가스개발사업, 해양시추사업 등을 활용해 주력사업인 컨테이너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할 여지가 높다. 해운사업 내에서의 다각화 수준이 높은 일본 선사들의 경우에는 컨테이너부문 이외의 자산 비중이 매우 크다. 특히 벌크선 사업의 자산규모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벌크선의 상당부분이 고정 화주와 연계돼 있어 선박가치의 질적인 수준도 높은 수준이다. 일본 선사들은 그 외에도 물류, 터미널, 부동산, 여객 운송 등 다양한 사업과 관련된 자산도 보유하고 있어 유사시 활용이 가능하다.
반면, 국적선사들은 다년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자체적인 재무적 융통성을 대부분 소진한 상황이다. 자산 중 대부분이 선박으로 구성돼 최근의 시황을 감안할 때 선박가치가 장부가를 상당 폭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 그 외 자산의 경우도 대부분 매출채권 등 영업용자산으로 유사시 활용가능성이 낮은 수준이다. 다만 현대상선의 경우 올 상반기 중 1조원을 상회하는 현대증권 매각 대금의 유입으로 한진해운 대비 비교적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면서 단기적인 재무적 대응능력을 확보했다.
65억弗 지원 받은 1위 선사 vs 구조조정 채찍질에 신음한 국적선사
원양 컨테이너 산업의 경우 해당 국가 내 제조업의 원재료조달 및 판매, 물류 관련 전후방 산업과의 높은 연관성 등 기간산업의 특성으로 유사시 정부로부터의 직간접적인 지원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영업실적이 급락하고 재무안정성이 급감한 주요 글로벌 선사들이 해당 정부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수혜 받은 이력이 있다.
최대 선사인 머스크라인은 덴마크 정부로부터 5억달러 규모의 수출신용기금을 지원을 받았으며 정책금융기관을 통해서도 62억달러의 금융차입을 지원받았다. 3위 선사인 CMA CGM도 프랑스 국부펀드로부터 1억5천만달러를 지원받고 대출보증 등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지원도 추가적으로 확보한 바 있다. 특히 중국 국영선사인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은 중국 수출입은행으로부터 5년간 95억달러를 지원 받았고, 중국 정부는 자국 선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요구되는 해외 인수합병(M&A)에 필요한 대규모 금융지원을 추가적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정부로부터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수혜 및 자구노력에 힘입어 해외 주요선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또한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 아래 상대적으로 저금리로 조달된 대규모 자금을 활용해 초대형 선박 투자 등 적극적인 투자로 컨테이너 부문의 경쟁력을 제고했다. 직접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된 자국 선사들에 대한 주요 국가의 지원과 비교해 국적 선사들이 지원받은 방식이나 규모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주요 선사들의 2011~2015년 기간 동안의 누적 순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1위 머스크라인이 13조8천억원 규모에 달하고 MOL이 5조8천억원, 코스코가 4조5천억원, NYK가 4조3천억원 등으로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반면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각각 1조3천억원과 6천억원으로 주요 선사 중 최하위권의 투자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선사 대비 상대적인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저하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적선사들의 경우 머스크라인, CMA CGM 등 상위 선사들에 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했으며, NYK, MOL, 케이라인 등 일본선사들처럼 다변화된 사업포트폴리오를 확보해 컨테이너 부문의 부진한 실적에 대응할 수 있는 사업다각화 수혜 수준도 미진했다. 특히 현대상선의 경우 2016년 중 벌크 전용선 사업 양도로 사업 다각화 정도가 더욱 저하된 상황이다. 국적 선사들은 정기선 업계에서 최저 수준의 수익성을 기록했고, 결국 지속적인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재무경쟁력은 대폭 약화됐다.
한진해운의 경우 법정관리 개시로 인해 기존 CKYHE얼라이언스에서 사실상 퇴출되고 기존 화주들의 이탈이 진행되는 것을 비롯해 영업네트워크가 급속히 와해되고 있다. 원양 컨테이너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주요 기간노선의 구축에 1조5천억원 내외의 투자비용과 장기간 사업경험 축적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항만시설, 내륙물류, 영업네트워크 등 유무형자산의 확보 및 유지가 중요하다. 법정관리에 따른 사업기반의 상당한 훼손을 감안하면 추후 한진해운의 경쟁력 회복 가능성은 낮다. 회복되더라도 기존의 사업기반을 단기간 내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자율협약이 진행되던 현대상선은 지난 7월 채권단과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을 위한 약정을 체결했다. 이에 힘입어 2016년 6월말 각각 2129% 및 81%에 달하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각각 200%, 57% 내외 수준으로 대폭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비롯해 기존 대비 재무경쟁력이 상당히 개선됐다. 하지만 해외 경쟁선사 대비 열위한 사업경쟁력과 EBITDA(상각전영업이익) 적자가 지속되는 등 동종업계 최저 수준의 수익성을 감안할 경우 정기선 시장의 본격적인 회복이 수반되지 않는 한 개선된 재무경쟁력이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나이스신평 곽노경 실장은 선박펀드 활용을 통한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 투자,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 및 전문 인력 흡수 등을 통한 조속한 사업경쟁력 제고의 선행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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