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7 09:52

추억의 명화/ 인턴(The Intern, 2015)

서대남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계가 풍년으로 근년들어 방화나 외화가 홍수처럼 쏟아져 넘쳐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닦고 봐도 볼만한 영화가 없어 늘 안타깝던 참에 2015년 가을에는 갑자기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1943년생)’와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1973년생)’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40년 차이의 두 남녀 주역이 보기 드물게 열연한 ‘인턴(The Intern)’이란 작품이 선을 봬 필자는 물론 기억에 남는 영화 한 편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뭇 영화 매니어나 팬들에게 흐뭇한 선물이 되고도 남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필자도 입소문으로 “인턴 보셨나요?” 또는 “인턴 보세요!”를 연발하며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인턴 권유를 했다. 이는 아마 그 스토리의 주제가 70대의 주인공이 퇴임 후 느즈막 다시 인턴사원으로 새 직장에 들어가 젊은 시절부터 평생을 쌓은 샐러리맨 노하우로 30대 여성 벤처 CEO를 적극 도우며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엮어 내는 모습에서 어쩌면 필자를 대입시켜 유쾌한 대리만족을 실컷 즐기기라도 하듯 영화 내도록 화면에서 눈을 못 떼고 쾌재와 흥분속에서 관람을 했다.
여주인공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창업 1년반만에 놀랄만한 성공을 거둬 의기 양양한 30대의 젊은 여사장이다. 

30살의 나이에 종업원 220명을 거느린 어엿한 중견기업 CEO로 조직을 이끌지만 동분서주 숨쉴 새 없이 뛰면서 일도 해야하고 직원들의 복지문제도 챙겨야하는가 하면 거래처와의 영업활동도 게을리할 수도 없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남편과 딸 아이도 신경을 써야하기에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업무추진도 활동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처리하고 심지어 회사 내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상황을 체크하고 직원들을 독려해야 할 정도로 분주했다.

그러던 어느날 대외적으로 역동적이고도 비전있는 도약적인 회사 이미지 메이킹과 사회 공헌도를 높이기 위해 친구의 권유에 따라 나이 많은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니어 인턴을 모집하게 된다. 이에 70세의 나이로 전화번호부 제작회사에서 40년을 근무, 부사장까지 지내고 명예 퇴직한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이란 노인이 지원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무료함을 달래려 여러 분야를 익히며 살아가는 중이지만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던 김에 신생기업에서 시니어 인턴을 뽑는다니, 이때다 하고 만반의 준비로 응시, 당당하게 합격의 영광을 안는다. 

인터뷰 당일 맞선이라도 보러 가듯 말끔히 정장으로 차려입고 단장한 노인이 수차례에 걸쳐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고치는 모습은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신입사원 지원자 이상으로 긴장된 분위기를 자아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렵사리 합격하여 벤이 맡게 된 보직은 CEO 줄스를 보좌하는 직속 부하 비서직 인턴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사생활 간섭 받기를 싫어하는 터에 40세나 위인 할아버지 뻘 선배, 벤을 상대하기가 불편하고 쑥스러워 줄스는 깐깐하게 별로 도움받을 일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또 이 신생 회사는 자유분방한 기업문화를 가진 인터넷 전문 의류판매 기업으로 추호의 헛점도 용납되지 않는 살벌한 분위기마저 감돌며 조직원 전원이 고군분투 하는 직장이다.

그러나 벤은 기죽거나 실망하지 않고 회사 일이라면 무슨 일이건 앞장서 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고 연륜으로 몸에 밴 노련함을 발휘하며 동료 직원들에게 다가가 어려운 점을 풀어주고 친구가 되어 해결사 노릇을 다해 모두의 친구가 되고 인기짱의 조직원으로 자리매김한다. 윗 사람이 퇴근하기 전에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가 하면 음주운전을 하려던 기사를 밀치고 CEO 퇴근길 운전을 대신도 하며 그밖에 깔끔한 책상정리로 작업장 분위기를 일신하고 줄스의 어린 딸 고민도 들어주는 등등 온 갖 면에서 세심한 배려로 기업문화에 융화되고 친근감과 성실함으로 신임을 얻는다.

능력있는 벤처 신화의 주인공, CEO 줄스도 직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밥먹듯 야근을 하는 직원들의 고충에 무관심하고 조직원의 사생활이나 개인적 고뇌가 기업의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등 젊은 여성 CEO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보살피며 가족까지 챙기는 벤에게 “당신은 나의 인턴이자 최고의 친구”라며 좋아하고 한때 자신을 지나치게 채근하는 벤이 싫어 타부서로 보내려고까지 했으나 벤과의 격의없는 대화로 더욱 친근해 진다. 

나이든 인턴을 달갑잖게 봤던 줄스가 벤의 한결같이 사려깊은 돌봄에 의지하게 되자 드디어는 2박3일간의 캘리포니아 출장을 같이 갈 정도로 가까워진다. 

출장중 저녁 시간 호텔에서 몸과 마음의 피곤함을 달래려는 듯 은근히 벤에게 몸과 마음을 기대던 장면은 나이를 초월한 조직내 믿음의 크기를 보여주는 감동적 조직문화로 가장 인상적 장면이었다.

한편 줄스는 점차 커져가는 회사의 양적 팽창을 감당하며 가정일을 함께 처리하기 힘들어 자기의 업무를 덜어 줄 새로운 CEO를 영입하자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여 새로운 후보의 물색에 나선다. 그 까닭 중 하나는 충실한 가정부 노릇을 다 해오는 것으로 알았던 남편이 몰래 딴 여자를 알고 지내는 불륜 행각이 벤에게 목격되었고 이를 줄스에게 알려야 하나 마나를 두고 망설였으나 이미 그녀는 오래 전부터 알고 고민해 왔었단 충격적 사실을 접하곤 너무나 놀란다. 호사다마라듯 이들 부부에게 이같이 보이지 않는 그늘이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줄스는 벤에게 고심을 상담하며 크게 실망은 했지만 일에만 매달려 가정에 불충실했던 본인의 잘못으로 돌리며 남편을 놓치거나 혼자 사는 것도 싫고 외롭게 살다 혼자 무덤에 가는 건 더욱 싫다며 새로운 CEO를 낙점한다.

그러나 벤은 줄스의 창업정신과 기업성장에 대한 애착을 공유라도 하듯 이를 적극 말리며 퇴사도 불사하겠다고 극구 반대한다. 벤의 끈질긴 설득과 격려는 줄스를 움직였고 이는 그녀의 내심 바람이기도 했던 것. 남편 역시 과거를 뉘우치며 용서를 빌자 줄스는 결국 그 힘든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맘 먹고 평화를 되찾는다. 

젊고 아름답고 발랄한 젊은 여성 CEO, 그리고 나이들어 주름지고 혐오의 대상같은 시니어 인턴이 한 기업 조직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이룩하는 성공적인 앙상블과 하모니, 누구나 놓쳐선 후회할 것 같은 가슴 찡한 작품이다.

‘문 스트리트(Moon Streets/1973)’를 첫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대부(The Godfather 2/1974)’에 이어, 월남전 소재의 ‘디어 헌터(Deer Hunter/1976)’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1976)’, 두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작 ‘분노의 주먹(Raging Bull/1980)’과 그후 ‘카지노(Casino/1995)’와 ‘웩더독(Wag the Dog)’ 등등 수많은 로버트 드 니로의 작품에 이어 최근에 접한 인턴은 일흔넷 나이에 걸맞은 노역을 소화, 다시 그의 진가를 보였다.

또 메릴 스트립과 출연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2006)’에서 열연한 앤 해서웨이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Night Rises/2012)’와 ‘레 미저러블(Le Misreable/2012)’, ‘인터스텔라(Interstella/2014)’로 85회 아카데미와 영국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아 우리에게 바싹 다가왔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중견 여우로서의 연기력를 돋보였단 생각이다.

주로 여성 취향 로맨틱 코미디로 잘 알려진 시니어 여성감독 ‘낸시 마이어스(Nancy Meyers/1949)’가 멜 깁슨과 헬렌 헌트를 캐스팅한 ‘웟 위민 원트(What Women Want/2000)’, 잭 니콜슨과 키아누 리브스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2003)’, 카메런 디아즈 및 케이트 윈슬렛과 주드 로의 ‘로맨틱 홀리데이(The Holiday/2006)’, 메릴 스트립과 스티브 마틴이 함께한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2009)’ 등등에  이어 인턴서 메가폰을 잡아 줄스와 벤의 연령을 뛰어넘는 직장 메이트로서의 조화로움에 지금 필자가 처한 입장을 의식하는 편견을 떨칠 수 없는 여운으로 남는게 이 작품에 대한 또 하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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