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3 09:03

일본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 사세보항

일본·중국항만 탐방기(1)/ 국제해운대리점협회, 22차 해외항만견학 실시
글·한국머스크 안소정 프로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 사무국, 회원사 임직원과 가족이 부산항에서 출항하기 전에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바다를 향해 열린 대한민국의 관문, 부산항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거대한 ‘바다의 도시’ <코스타세레나>호(대리점 동방선박)였다. 끝없이 펼쳐진 컨테이너부두의 역동적인 풍경 속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뽐내며 정박해 있는 11만t급 크루즈선은 항만 견학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들뜨게 했다.

바다 위에서 함께한 우리 가족의 특별한 여행

지난해 처음으로 크루즈 여행을 경험했을 때만 해도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특별할까 하며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본 바다는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무거운 짐을 한 번만 풀어두면 다음 목적지에 닿아 있었고, 이동하는 동안 푸른 바다 위에서 유유자적 식사와 공연,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바다 위에서 즐기는 완벽한 호캉스’이자 이동의 피로를 지워버린 훌륭한 여행 방식이었다. 그 낭만적인 시간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이 바다를 누려야겠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그리고 마침 이번 사단법인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가 주최한 5박6일의 항만 견학 프로그램이라는 귀한 기회가 닿아 마음속에 품어뒀던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이번 항만 견학은 내게 훨씬 더 깊고 특별한 의미였다. 친정 엄마와 우리 세 자매, 그리고 각자의 아이들까지 무려 3대가 함께한 가족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세 자매가 엄마를 모시고 낯선 기항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인데, 재잘거리는 아이들까지 한 배에 올랐으니, 엄마에게는 딸들과의 오붓한 시간이자 손주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겹겹이 쌓는 여정인 셈이다. 3대가 함께할 5박 6일간의 일정이 소중한 시간으로 멋진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상상으로 <코스타세레나>호에 승선했다.

 
▲한국머스크 안소정 프로(오른쪽에서 첫 번째) 가족


설레는 마음에 밤새 잠을 뒤척였지만, 잔잔한 파도를 가르고 도착한 첫 기항지 일본 사세보항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크루즈 여행의 장점답게 여권 사본만으로 진행된 입국 심사는 복잡한 절차 없이 무척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한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거대한 햄버거 모양의 마스코트였다. 사세보항 역사를 몰랐을 때는 햄버거 인형이 왜 사세보항의 상징물인지 궁금했는데 역사의 의미를 알고 나니까 단순한 햄버거가 아니고 특별함이 느껴졌다. 

사세보항은 단순히 상선과 여객선이 드나드는 일반적인 항구가 아니었다. 과거 일본 해군의 군항으로 발전해 온 곳으로, 일본의 근현대사와 역사의 현장이었다. 현재까지도 일본 해상자위대와 미 해군 기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컨테이너가 끝없이 쌓여 있던 부산항의 역동적인 상업 물류 기지와는 달리 회색빛 군함들이 정박해 있는 사세보항의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세보 버거’는 미 해군이 주둔하며 자연스럽게 유입된 미국 문화가 지역 사회와 어우러져 탄생한 문화적 산물이자 지역의 대표 음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세보는 화려하거나 번잡한 도시라기보다는 조용한 소박한 소도시였고, 흩뿌리고 간 비 탓인지 습도가 높았다. 

하루 일정 중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이마리 도자기 마을’이었다. 일본의 도자기 발전은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때 건너간 조선 도공들의 기술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화려하고 번잡한 관광지와는 달리 마을 전체가 차분하고 고즈넉했다. 골목 사이에 위치한 상점들을 보면서 수백 년 전 이곳에서 흙을 빚고 가마에 불을 지폈을 도공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고 아름다운 조선 도공들의 역사와 삶이 함께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이 밟았을 길조차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페스코라인즈코리아 장동진 차장(가운데) 가족


일본에서 중국으로의 이동 시간은 꽤 길었다. 종일 바다 위에 떠 있는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가졌다. 그중 가장 가족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은 ‘Next number!’를 외쳤던 시간이었다. 선내에서 공연과 놀이 등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그중 우리 가족에게 뜻밖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킨 것이 빙고 게임이었다. 숫자가 하나씩 불릴 때마다 빙고판에 얼굴을 붙일 기세로 숫자를 찾았다. “있어? 없어?” “찾았다!” “마킹해, 빨리!”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진지했다. 숫자 하나가 끝날 때마다 다음 숫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외쳐대던 말, “Next number!, Next number!” 만약 억지로 아이들에게 영어 숫자 공부를 시키려 했다면, 이토록 눈을 반짝이며 열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빙고판의 숫자를 찾아내며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며, 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입가에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왁자지껄하게 즐겼던 선상에서의 이 빙고 게임은 먼 훗날 아이들이 마음속 보석상자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반짝이는 소중한 보물로 남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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