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5 11:41

칼럼/올해 말 입주할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 서서

수필가 白岩 / 이경순

수필가 白岩 / 이경순

10월1일로 60년이 된 한·미동맹이 중국·일본 문제에 대한 이해관계 상충으로 고비를 맞고 있다. ‘환갑(還甲)동맹’에 맞춰 방한한 척 헤이글 미 국방부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 연기를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제(MD)’에 참여하는 문제와 연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내각이 추진 중인 ‘집단적 자위권’을 사실상 용인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하고 있다.

MD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북한 등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이를 요격하기 위해 구축 중이다. 그러나 중국이 자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 입장은 고(高)고도의 MD보다는 저(低)고도의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를 선호한다. 양국 간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엇갈리는 셈이다.

미국은 또 군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에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지 않아도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가 공격받을 경우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한·미·일3국 협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군국주의화를 우려하는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사용 중인 중국 대사관은 대한민국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종로구 효자동 54번지에 있다. 이 지역이 고도 제한으로 그리 크거나 높지도 않다. 2010년 신축 공사에 들어갔던 명동 중국 대사관이 올 연말 안 입주를 목표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공사장 앞에 서니 130년 전 청나라나 패권을 꿈꾸는 지금의 중국에나 한반도는 목구멍 같은 전략적 요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관말직 하급 장교에서 몸을 일으켜 황제의 자리를 넘본 근대 중국의 풍운아 원세개(袁世凱1859~1916)의 입지전은 1882년 임오군란이 빌미를 준 청군의 조선 출병에서 시작된다. 오장경(吳長慶)의 막료로 조선에 온 그는 1884년 갑신정변 진압을 발판 삼아 출세가도에 올랐다. 정변이 수포로 돌아간 직후 고종이 부동항(不凍港)을 미끼로 러시아를 유인해 중국을 견제하는 비밀외교를 펼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영국은 1885년 4월 거문도를 점령해 러시아 극동함대의 태평양 진출을 막으려 했고, 중국과 일본도 두 달 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손을 잡았다. 그해 8월 원세개는 26세라는 새파란 나이에 고종의 국정 운영을 감독하는 ‘감국(監國)’에 임명되었다. 그때 그에게 맡겨진 주 임무는 조선이 러시아나 일본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윤치호가 훗날 청일전쟁 직후 “나는 조선에 대한 중국의 극악무도함을 너무도 증오하므로 다른 나라(일본)의 지배는 비교적 견딜만하다”고 일기에 적었을 정도로 원세개의 횡포는 극심했다. ‘Resident General (통감)’이란 그의 영문 직함이 웅변하듯, 그가 좌지우지한 10년(1885~1894)동안 조선은 중국의 반(半)식민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을 침략자로 본 것은 원세개를 ‘돈원(豚猿·돼지와 원숭이)’이라고 부른 윤치호 같은 개화파나 왕권을 제약받은 고종과 근왕 세력뿐이었다.

중국에 기대어 정권을 유지한 민씨 척족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이나 임오군란 때 천진으로 끌려가 유폐되었던 대원군조차 중국을 보호자로 보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중국이 여전히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인 오늘,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기치 아래 중국이 저지른 악행이 묻혔던 한 세기 전의 역사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내세우며 6·25전쟁이 마치 미국의 침략으로 일어난 것처럼 호도하는 중국에 대해 우리는 좌우를 막론하고 입을 다문다. 원세개에 대한 아픈 기억은 우리의 미몽을 일깨우는 일침이다.

다시 대사관저 문제로 돌아가, 서울 정동에 있는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는 130년 전의 분위기가 꽤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전통 기와집 모양과 대들보, 한국식 정원, 격자무늬 창살…” 이곳은 1883년 초대 주한 공사 푸트가 고종(高宗)임금의 권유로 사들였다. 키가 컸던 푸트는 한옥에 익숙지 않았던지 “일어서면 모자가 천장에 닿아 불편하므로 대사관을 새로 짓든지 해야겠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그러자 국무부는 “조선에서는 실내에서 모자를 쓰는 법이 아니다”고 회신했다고 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지금 이런 조언을 해줄 국무부는 없다.

미국 공사관에 이어 영국·프랑스·러시아 공관이 들어서면서 덕수궁 뒤편 정동은 유럽·미국 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의 종주국 행세를 하던 청나라 사람들은 길 건너 북창동 지금의 플라자호텔 주변과 명동에 모여 살며 차이나타운을 이루었다. 1882년 조선과 청나라가 맺은 조약에 따라 서울에 온 청나라 대표가 명동 입구의 집 한 채를 매입해 공관으로 사용했다. 대원군 심복으로 포도대장을 지낸 이경하의 집이었다.

1885년 스물일곱 나이에 조선 주재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온 원세개는 이 집을 무대로 10년 동안 조선의 정치·경제·외교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선 관료들은 그를 ‘원대인’ ‘감국대신’이라 불렀다. ‘감국(監國)’이란 중국이 속국에 파견하는 감독관을 말한다. 조선에 온 외교사절 중 원세개만이 앉아서 고종을 알현했다.

원세개는 각국 공사들이 회의하는 자리에도 언제나 통역관을 대신 보냈다. 나는 너희들과 격이 다르다는 거드름이었다. 1887년 고종은 박정양을 초대 주미공사로 임명했다. 원세개는 청나라 허락을 받지 않은 것이니 발령을 취소하고 북경에 사신을 보내 사죄하라고 고종을 압박했다.

명동 청나라 공관은 광복 후 대만 대사관으로 쓰이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자 다시 중국 소유로 넘어갔다. 올 연말 안 입주를 목표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대사관 건물은 10층짜리 업무용 건물과 24층 숙소용 빌딩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새 중국 대사관은 주한 외교공관 중 가장 크고 중국의 해외공관 가운데 워싱턴DC 다음 둘째 크기다. 보안을 위해 중국 국영 건설업체가 직접 시공을 맡았고 철근·시멘트 같은 건자재까지 중국서 들여왔다. 작업 인부들 역시 중국 국적자로 제한했다. 서울 중심가에 치솟은 새 중국 대사관 건물에 세계의 슈퍼 파워로 떠오른 중국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물론 대한민국도 구한말처럼 작고 힘없는 나라는 더 이상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1일 ‘건군 65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정부는 강력한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하면서 ‘킬 체인’(Kill Chain-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지 등을 탐지·타격하는 통합 시스템을 말함)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 등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대응 능력을 조기에 확보해 북한 정권이 집착하는 핵과 미사일이 더 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 칼럼 내용은 당사의 견해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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