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물류기업이 북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운송 경로를 다변화하고 현지 내륙운송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관세·통관 정책의 불확실성과 운송망 적체에 더해 최근에는 현지 인력난으로 트럭 수배도 어려워지면서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국제물류협회(KIFFA)는 지난 9월29일 FKI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북미 물류시장 진출전략 세미나를 열고 북미시장의 구조 변화와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선임연구위원은 “멀리 돌아가더라도 길이 있는 게 더 중요해졌다”며 비용 절감보다는 화물을 목적지까지 안정적으로 보내는 역량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성우 선임연구위원은 지정학적 충돌과 미국의 정책 변화로 글로벌 생산거점과 물류 경로가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대미 직접 수출이 줄어드는 대신 동남아와 멕시코 등을 거치는 물량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미국 서안항만에서 동안항만으로 물동량 중심이 이동하는 흐름에 주목했다.
|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이성우 선임연구위원이 북미 물류시장 현황을 소개했다. |
그는 미국 내 제조업 투자와 물류 인프라 여건에 따라 조지아·테네시 등 동부·동남부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국내 물류기업도 지역별 산업과 운송 수요에 맞춰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서안항만 중심의 철도·트럭 연계운송에만 의존하지 않고 목적지와 화물 특성에 맞는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나마운하의 통항 제약도 주요 위기 요인으로 지목했다. 동북아발 미국 동안행 컨테이너 화물의 약 46%가 경유하는 파나마운하는 최근 가뭄으로 통항 제약이 커졌다. 화물 적재량이 줄고 통항 슬롯 확보 비용이 늘면서 물류비가 상승하고 운송기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게 이성우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운하 상황에 따라 경로를 바꿀 수 있도록 캐나다 멕시코 등을 활용한 대체 운송망을 확보해야 한다며 “최소한 3~4개의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정적인 운송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운송 지연에 대비한 안전재고도 여러 지역에 분산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지 노동력 부족도 물류 운영의 변수로 꼽았다. 이성우 위원은 지역별로 인구 감소가 심화되고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이 맞물리면서 물류창고 자동화가 촉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수반되는 화물 운송 수요가 늘면서 트럭과 운전기사 확보가 어려워지고, 관련 화물을 운송하는 오픈덱 트레일러가 부족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운송인력난…북미 내륙운송망 확보 시급
한범규 LX판토스 책임컨설턴트도 북미 내륙운송망 적체와 트럭 운전기사 확보를 현장의 애로사항으로 지목했다. 이민자 운전기사의 면허 규제가 강화되면서 운송인력 확보에 부담이 커진 데다 현지 직원 채용도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 ▲LX판토스 한범규 책임컨설턴트가 대응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
그는 “북미 물류는 해운과 항공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내륙운송이 가장 핵심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해상 선복 확보에 그치지 않고 항만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연결하는 철도·트럭 운송망을 갖춰야 북미지역에서 물류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LX판토스는 현지 물류센터 확보와 철도·트럭 연계운송을 추진하고, 제한적으로 자율주행 화물 운송을 운영하며 내륙운송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한 책임컨설턴트는 관세·통관 정책과 관련해서는 예측에 의존하기보다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산 반제품을 한국에서 재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한 화주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 세관이 한국에서 실질적 변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중국산으로 분류하면서 예상 수준을 웃도는 관세가 부과됐다. 그는 생산·가공 거점을 옮길 때도 원산지 판정과 통관 요건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북미시장의 잦은 관세·규제 변화와 운전기사 부족 등을 물류 운영의 위험 요인으로 꼽으며 “물류 가격에도 리스크 프리미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험에 대응하는 비용도 물류비에 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화주가 고정된 비용으로 계약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자체 자산이 없는 포워더는 비용 변동 위험에 크게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모든 위험을 화주에게 떠넘기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계약 구조를 통해 화주와 물류기업이 위험을 합리적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훈 한국해양진흥공사 팀장은 펀드를 활용한 현지 물류거점 확보 지원 방안을 소개했다. 먼저 펀드를 조성한 뒤 물류센터를 매입하고 국내 기업을 임차인으로 모집하는 방식이다. 이 팀장은 “물류센터를 직접 매입하는 기업뿐 아니라 현지 시설 임차를 검토하는 기업도 상담할 수 있다”며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다만 행사 현장에서 제기된 트럭 등 내륙운송 사업으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엔 해양수산 분야 중심의 사업 범위에 따른 제약이 있다고 답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정연수 물류지원실 차장은 “단순 운송을 넘어 인증과 통관, 현지 보관, 내륙운송 등 해외 소비자에게 제품이 전달되는 전 과정을 포괄해 수출물류를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대미 수출품목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재 중심의 B2C 물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하며, 초기 소량 B2C 판매로 수요를 확인한 뒤 판매가 늘면 현지 재고를 활용하는 B2B2C 방식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원제철 한국국제물류협회 회장은 중소 포워더도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해진공과 코트라에 요청했다. 금융지원 계획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과 기관 간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물류를 통한 원가 절감의 발판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원 회장은 “우리 물류기업도 한국에서 북미로 가는 물류를 넘어 북미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며 “현지 네트워크 확대와 정보 제공, 기업 간 협력, 전문인력 양성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국제물류업계는 지난 7월 한국국제물류사업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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