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6 09:11

기획/ 가격에 기술까지 무장한 중국조선 ‘대응책 없나’

中 조선 성장·새금융회계기준 등 위험변수 가득
일감 1000만CGT 붕괴시 독 폐쇄 잇따라 발생

‘일감절벽’으로 신음하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가 또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가격 경쟁력과 정부지원 등으로 무장한 중국 조선과의 1위 싸움이다. 저가 수주로 물량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 조선의 행보에 국내 조선사들은 속수무책이다. 채권단의 수주가이드라인에 따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내년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회계기준 ‘IFRS15’와 바젤 III도 조선사들에게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완연한 기지개를 켤 날은 언제 올까.

‘선가 후려치기’로 中 조선 기세등등

글로벌 공룡선사들의 잇따른 선박 확보로 올해 글로벌 컨테이너 선대는 2100만TEU를 돌파했다. 해운사들은 대형 컨테이너선을 주로 국내 조선소에 발주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특히 ‘역대 최대 규모’의 굵직굵직한 발주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조선소 차지였다.

머스크라인은 2011년 대우조선해양에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하며 선박 대형화 경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당시 머스크가 발주한 컨테이너선은 경제성, 에너지 효율성, 친환경성을 모두 만족시킨 ‘트리플-E’급 선박으로 주목을 받았다. 머스크의 선박 발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척의 대형 프로젝트 완료 시점에 1만9600TEU급 컨테이너선 11척을 대우조선에 재발주하며 우리나라 조선사와 신뢰관계를 돈독히 했다.

삼성중공업도 일본 선사 MOL에 2만TEU급 컨테이너선의 본격 운항을 알리는 명명식을 가졌으며, 한진중공업 역시 CMA CGM으로부터 2만600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며 조선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잠잠할 것으로 보였던 해운사들의 초대형 컨테이선 발주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CMA CGM은 9월 2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9척에 대한 발주를 확정지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CMA CGM의 발주건도 국내 조선사들이 따낼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거래는 과거와 달랐다. 중국 조선소가 과실을 수확했다. 관심을 모았던 CMA CGM의 대형 선박 건조는 중국 후둥조선과 상하이와이가오차오조선에 돌아갔다.

현대중공업과 후둥조선이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지만 CMA CGM은 중국 조선소의 손을 들어줬다. 가격이 당락을 갈랐다. 현대중공업은 척당 1억7500만달러를, 후둥조선은 1억6000만달러의 선가(船價)를 각각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오션얼라이언스 동맹과 중국 정부의 선박금융 지원 등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중국 조선업계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선가 후려치기’를 단행하며 호시탐탐 세계 조선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2014년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신조가격은 1억5500만달러였지만 현재 1억4200만달러까지 떨어졌다. 2억750만달러에 달했던 LNG선(174K급) 역시 1억8200만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다. 모두 역대 최저 수준이다. 선가가 저렴한 시기를 틈타 발주에 나선 선주들을 노려 중국 조선사들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일감을 빨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중국 조선사들이 자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낮은 선가로 선주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저임금 노동력, 낮은 철강재 가격, 내수물량 등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고부가선종 시장진입을 목표로 기술력을 끌어올리며 선주들의 마음을 돌리고 있다. 선가가 싸다보니 중국 조선소로 일감을 돌리는 일본 선주들도 상당하다. 자국 조선소에 대부분의 일감을 맡겼던 터라 일본 선주들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중국 정부는 손자병법에서 언급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 전략으로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조선기술을 흡수하고 어느 정도 기술자립이 되면 가차 없이 몰아내는 등 자국 조선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중국공업신식화부가 발표한 향후 5년간의 계획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국 조선소가 더 많은 해양장비를 개발하거나 공사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산업 구조조정 및 개선을 통해 경쟁국인 한국과 일본을 추월하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계획 하에 중국 정부의 야심작인 ‘화이트 리스트’가 가동 중이다. 중국 정부가 경쟁력 있는 조선사들만 선정해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1년 동안 수주, 건조, 인도 실적이 없거나 경영파탄에 직면한 조선소 등을 지원 명단에서 제외하고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나 파산절차를 통해 솎아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000여개에 달하는 조선소를 70개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2020년까지 전 세계 해양시장에서 약 35%, 고부가가치 선박시장에서 약 40%의 점유율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선박건조 노하우 축적과 가격 경쟁력, 정부의 정책 등 3박자를 갖춘 중국 조선업이 이제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CMA CGM의 초대형선 신조거래를 가져간 건 그만큼 중국 조선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선사들의 발주 소식이 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CMA CGM에 이어 다른 대형선박 수주까지 놓치게 되면 국내 조선사들의 설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감절벽’에 분위기 뒤숭숭, 조선 최대행사 연기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수주 전략에 국내 조선사들의 분위기는 어둡다. 올해 수주량은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일감 잔고는 메말라가고 있다. 1~8월 누적 수주량에선 중국이 우리나라를 앞서며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중국은 421만9200CGT(195척)를 수주, 점유율 33.1%를 차지하며 한국을 앞섰다.

우리나라가 347만6800만CGT(104척·27.3%)를, 일본이 108만5100CGT(58척·8.5%)를 각각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전년 108만2100CGT 대비 3배 많은 일감을 확보했지만, 2015년 실적인 807만4600CGT와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수치를 보였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의 빈 곳간을 채워준 효자선종은 올해도 탱크선이었다. 2015년부터 발주량이 크게 증가한 탱크선은 굶주린 조선사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해양플랜트 발주가 주춤한 사이에 탱크선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조선사들의 수주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현대중공업은 20척 중 13척을, 현대삼호중공업은 전량이 탱크선으로 수주량을 채웠다. 삼성중공업 역시 수주잔고의 절반 이상이 탱크선으로 이뤄져 있다. 유가와 선가가 동반하락하자 선주들은 발주를 늘렸다. 2014년 5월 6600만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15만8천t급 수에즈막스 유조선 가격은 최근 5400만달러로 1000만달러 이상이나 하락했다.

선박 수주량을 1년새 늘린 조선사들이지만 얼굴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조선사들의 가장 큰 고민인 일감 증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쟁국 중에서 가장 적은 일감을 보유하고 있다. 8월 말 한국의 수주잔량은 1609만9800CGT(374척)로 집계됐다. 저가수주로 일감을 확보한 중국(2583만4100CGT·1352척)에 크게 밀리고 있다. 세계 3위인 일본(1612만1400CGT·620척)과는 간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의 곳간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 올해 1월 수주잔량은 2000만CGT대가 깨졌으며, 8월 말엔 1600만CGT대를 기록했다. 올해 안에 1500만CGT대 붕괴가 예상된다. 우리나라 대형 3사의 건조생산 능력은 약 1400만CGT로 추정된다. 2년 내 1000만CGT대 붕괴가 현실화된다면 가동 중단을 늘린 독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대형조선사들의 올해 수주 목표 달성도 안갯속이다. 현대중공업은 9월21일 기준 51억달러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이는 올해 수주 목표액 84억달러 대비 59.5%의 달성률이다. 삼성과 대우 역시 각각 55억달러 17억5천만달러를 기록, 각각 84.6% 38.3%의 이행률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선업계의 최대 잔치인 ‘조선해양의 날’ 행사도 올해 12월로 연기됐다. 지난해 행사는 12월로 미뤄졌다가 결국 취소됐다. 매년 9월 공로자들을 포상하고 축하하는 자리가 13년 만에 처음으로 무산된 것. 지난해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부회장직을 없애는 한편,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일감절벽에 직면한 조선사들의 상황이 어렵다보니 협회로서도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이제는 안전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중국 조선사들의 공격적인 행보에 국내 조선사들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정부는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이유로 까다로운 수주가이드를 내걸며 저가 건조계약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결국 ‘돈 되는 일감만 따오라’는 게 채권단의 방침이다. 그러나 건조 선가가 크게 하락했고 중국 조선소까지 저가 수주 공세에 뛰어든 상황에서 원가 이하의 운영비 보전차원을 고려한 수주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내년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회계기준 ‘IFRS15’도 국내 조선사들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IFRS15의 가장 큰 특징은 ‘수익 인식 시점’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현재 회계기준은 공사 진행률에 따라 수익 인식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고객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시점에 수익 인식이 이뤄져 조선사들의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 대부분 선주들은 선수금을 조선사에 먼저 건네고 나머지 금액은 인도시점에 한꺼번에 주는 헤비테일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로서는 2~3년간 인도 물량이 많지 않아 이번 제도 시행으로 매출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밖에 국제은행자본규제 기준인 바젤 III 도입도 조선업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바젤 III 시행으로 은행들은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새로 마련된 자본건전성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기본 자본은 6%, 보통주자본비율은 4.5% 이상을 각각 유지해야 한다. 위험도가 높은 투자를 축소하고 안전 자산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돼 신용도가 높지 않은 업종이나 중소기업의 경우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일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사들의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이 막힐 수 있다. RG발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할 경우 조선사들은 일감이 끊겨 고사 직전에 이를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IFRS15로 악순환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 전략 선종(LNG선, 대형컨테이너선, LNG추진선박 등)에 대한 수주가이드라인 완화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의 단가 후려치기와 채권단의 가이드라인을 극복하려면 우리나라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이창희 교수는 “최근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중심으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해외 유수의 선주 또는 발주자들은 2014년부터 수차례의 회의와 세미나를 열어 각자의 요구수준이 반영된 한국조선소안전표준화(Korean Shipyard Safety Standardization·KSSS)를 개발해 비계, 고소, 밀폐, 기타 일반 안전에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첫 시도를 통해 국내 조선해양플랜트산업에 적용되는 안전체계와 규정을 재정립하고, 조선3사가 경쟁이 아닌 협력의 관점에서 안전이라는 공통의 실천적 의지를 갖고 ‘안전의식’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발주자와 선주로부터 잃은 과거의 신뢰를 단순한 가격이 아닌 신뢰와 믿음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국과의 수주 경쟁력에서 앞서 진정한 챔피언으로 거듭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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