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14 17:34
/법무법인 세창 김현 대표변호사
■ 대법원 2004. 7. 8. 선고 2004다8494 판결, 손해배상
【원 고ㆍ상 고 인】 S 수산 주식회사
【피 고ㆍ피상고인】 Y 해운 주식회사
【피고보조참가인ㆍ피상고인】 주식회사 H 해운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9/4자에 이어>
1. 들어가며
운송인은 화주의 화물을 안전하게 취급해 온전한 상태로 수하인에게 인도해야 할 계약상의 의무가 인정되며, 불완전한 상태로 화물을 인도할 경우 운송인은 대부분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급격한 기상이변이나 높은 파도 및 해일은 운송 상황에 있어 전문적이고 경험적인 지식과 능력으로 위험을 예방해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는 능력이 검증된 운송인도 피할 수 없는 위험이며, 이러한 경우에도 운송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운송인이 신이 아닌 이상에야 부당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헤이그 조약 및 우리 상법 제788조 및 789조에서는 운송인이 면책되는 경우를 열거해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불가항력’이 포함돼 있다. 즉, 상기와 같은 경우 운송인은 화물에 대한 손상 및 멸실이 있더라도 이를 배상할 책임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불가항력은 보통 기후적 변화 즉, 급작스런 돌풍이나 해일, 높은 파도와 같은 이상 기후에 의해 문제시돼 왔다. 그러나 사안의 경우 바닷속 부유물에 의해 선체가 찢겨져 나감으로써 화물창의 화물에 대해 손상 및 멸실이 발생하였다. 즉 지금까지 접해왔던 것과는 다른 ‘불가항력’의 사유가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저의 장애 역시 불가항력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서 그에 대한 법원의 해석 역시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더군다나 원고의 상고 이유는 운송인의 면책 시에 화주가 주장할 수 있는 대부분의 주장이 포함돼 있어서 이 또한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원고 주장의 요지 및 대법원의 판결 요지를 살펴보고, 운송인의 면책사유인 불가항력의 의의에 대해 재고해 보는 것으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2.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원고의 화물을 부산항에서 파키스탄 카라치 항까지 피고가 운송하기로 하는 운송계약을 체결했고, 피고는 피고 보조참가인에게 다시 운송을 의뢰했다. 피고 보조참가인은 원고의 화물을 스리랑카까지 운송한 후 그 곳에서 카라치 항까지 운송하기 위해 L호에 환적해 운송했는데, 수심 100m 정도의 해상을 운송하던 중 해저의 수중물체에 선박이 충격당해 원고의 화물이 선적돼 있던 3번 화물창의 철판이 5m 정도까지 찢어져 바닷물이 유입돼 바닷물에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L호는 자체적으로 응급 복구했으나, 여의치 않아 우선 베라발 항에 도착해 철판을 보강하고 정박시설이 잘 구비된 인근 피파바브 항으로 이동해 임시수리를 마친 후 카라치 항에 도착해 화물을 인도했다.
한편, 화물은 인도받은 후 화물의 손실을 발견한 수하인이 이를 원고에게 통지했고, 이에 운송상의 책임을 이유로 원고가 운송인인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자 피고와 실제 운송을 담당한 피고 보조참가인은 위 사고는 운송인도 어쩔 수 없었던 불가항력에 의한 손실로서 상법 제788조 및 제789조에 따라 면책된다고 항변했다.
제1심 및 원심은 피고의 이러한 주장을 인정해 피고 및 피고보조참가인의 면책을 판결했다.
3. 원고 주장의 요지
이러한 원심의 주장에 대해 원고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주장했다.
① 원심 판결은 증거 불충분 등 심리 미진의 위법이 있다.
② 이 사건 선박 L호는 선박의 외철판이 찢어지는 등 그 상태 등의 의심이 가므로, 물적 감항능력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보여지는 바, 이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기에 피고 및 피고 보조참가인은 면책될 수 없다.
③ 이 사건 선박 L호의 사고 후 대응에 있어서 몇몇 항을 전전하는 등 피해가 가중되었는 바, 그 대응이 부적절했으므로, 이러한 미숙한 대응으로 손해가 발생했고 따라서 피고 및 피고 보조참가인은 이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④ 수심 100m라면 그리 깊다고 할 수 없는 해저라 할 것인데, 이러한 사고 지점에서의 대응 미숙은 인적 감항능력의 결여일 뿐 불가항력 사유에는 해당할 수 없으므로, 피고 및 피고 보조참가인은 상법 제788조 및 제789조에 따라 면책돼서는 아니된다.
4.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위와 같은 원고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원심 판단과 같이 피고 및 피고 보조참가인의 면책을 판결했다. 이하는 그 중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을 인정한 요지이다. “해상을 운행하던 선박이 수중에 있는 물체와 충돌해 화물이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당시 수심이 100m 정도이고 그런 수중물체가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수면 위의 부유물도 발견할 수 없어 미리 사고를 예견하거나 방지할 수 없었던 점에 비추어, 위 사고는 상법 제789조 제2항 제1호, 제2호에 규정된 해상 고유의 위험 내지 불가항력 또는 상법 제788조 제2항 소정의 항해과실에 의한 사고이므로 운송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없다.”
5. 사 견
이미 지난 호에 소개한 판결문에서는 원고 청구 기각의 사유를 조목조목 판단하고 있으므로, 별도의 평석은 생략하고, 다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대한 필자의 사견을 밝혀보고자 한다.
1) 원고의 항변
원고는 손실이 발생했는데 법리상 이를 청구할 수 없게 되었기에 이러한 운송인의 면책 규정의 적용을 배제해 그 손실을 만회해보려 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와 같이 사례는 운송인이 면책을 주장하고 화주는 운송인의 책임임을 주장할 때 드러나는 법리가 모두 잘 나타나 있다. 운송인은 운송 전문가로서 그에 걸맞는 보수를 받게 되는 바, 그러한 전문성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하는 감항능력의 유무는 항상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며, 이러한 사고가 사람이 어쩔 수 없었던 불가항력이 아닌, ‘인재’임을 주장해 그 책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는 법원이 판단한 바와 같이 사고 선박의 철판의 두께나 항해 전의 구비장비 및 서류 등을 적절하게 갖추고 있었고, 사고 후 대응도 당시 상황에 맞는 적합한 판단이었던 바, 물적·인적 감항능력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보여진다. 대법원의 입장도 같다.
2) 운송인의 면책사유인 불가항력
대부분의 불가항력이 문제됐던 사례는 태풍으로 인한 해상의 위험 고조로 인한 사고, 이른바 ‘황천’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급작스런 기후 변화는 아무리 전문가인 운송인이 지휘하더라도,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이를 뛰어넘어 손실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운송인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국제조약 및 국내 상법 규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안과 같이 바닷속 장애에 의한 경우는 흔치 않다. 갑작스런 암초를 만날 수도 있고 이 사건과 같이 바닷속에 부유하는 물체에 부딪쳐 선체에 파손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판례에는 해저의 물체가 어떤 것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으나, 이를 매단 부표가 떠 있다거나 기타 이를 미리 인지해 피할 수 있었던 사정이라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역시 법원이 판단한 바와 같이 운송인도 어쩔 수 없었던 사유 즉 불가항력에 의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운송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판단되며 이를 다시 확인한 대법원의 입장은 옳다고 생각된다.
3) 결 론 : 이 판결의 의의
이와 같이 위 판결은 시사하는 두 가지 사유에 의해 그 의미가 있다.
첫째, 운송인의 면책에 대해 화주가 운송인의 책임을 주장하는 근거에 대한 지침으로 삼을만하다. 특히 감항능력이야말로 운송인의 전문인으로서 가늠하는 척도이므로, 이에 대한 개념 및 그 적용 범위 등은 익혀 둘 필요가 있는 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판례이다. 비록 원고의 청구가 기각됐지만, 이런 형태와 법리로서 운송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하므로, 다시 한번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다.
둘째, 불가항력이란 비단 해상에서의 기후 뿐 아니라 해저 기타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운송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불측의 손해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역지사지로 ‘내가 운송인이어도 어쩔 수 없는 손실’이었다면 운송인은 면책되는 것이다. 물론 운송인은 운송에 있어 전문가이므로 일반 상식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적어도 불가항력의 범위 및 정도에 대한 판단을 정립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끝>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