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영 한국머스크 프로(왼쪽 위) 가족이 중국 상하이의 쇼핑가인 난징루를 관광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우리 항만 견학팀은 일정 3일 차에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양쯔강 하구와 황푸강이 만나는 지리적 위치를 바탕으로 중국 동부의 대표적인 항만 도시인 상하이에 가기 위해 우쑹커우국제크루즈터미널에서 간단한 입국 소속을 마쳤다. 일본의 사세보와 상하이는 분위기가 달랐다. 사세보가 역사와 군항의 모습이 강한 도시였다면, 상하이는 거대한 항만 시설과 현대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견학을 통해 항만은 단순히 배가 정박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물자,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하이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상하이 타워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게 뻗은 건물은 거대하고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던 중국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마치 하늘을 향해 비틀어 올라가는 듯한 독특한 형태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고,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건물들과 도로 위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가 작은 모형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다음으로 간 곳은 황푸구 구시가지에 자리한 ‘예원(豫園)’이었다.
이곳은 상하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명나라 시대 양식의 정원으로, 당시 관료였던 반윤단이 부모님의 평안한 노후를 위해 1559년부터 무려 18년에 걸쳐 만든 사적인 공간이었다. 그 이름부터가 ‘평안하고 기쁘다’라는 뜻을 품고 있으며, 강남(江南) 정원 특유의 섬세하고 화려한 미학을 대표해 1982년 중국 국가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있었다.
| ▲신희철 캡틴석유화학 사장(가운데) 가족이 <코스타세레나>호 선내를 관광하고 있다. |
하지만 정원이 이름처럼 평안하고 기쁜 위로를 건네줬냐고 묻는다면, 현실은 철저히 정반대였다. 부모의 평안을 바랐던 지극한 효심과 정원이 본래 품었을 고즈넉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입구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밀려드는 엄청난 인파와 무질서한 분위기, 여기에 숨이 턱 막힐 듯 덥고 습한 상하이의 날씨까지 겹치면서 감상은커녕 사람들에 휩쓸려 버티기조차 버거웠다. 400년 전의 훌륭한 건축미를 찬찬히 눈에 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고, 솔직히 말해 다시 발걸음하고 싶지는 않은 크나큰 아쉬움과 피로감만 남긴 장소가 되고 말았다.
흔히 인원이 많은 대가족 여행은 짐을 꾸리기 전부터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식당에서는 다 같이 앉을 자리가 있을지, 행여나 아이들이 지루해하지는 않을지, 어른들은 체력적으로 버거워하시지 않을지, 여행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신경 써야 할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크루즈는 우리 가족에게 그야말로 맞춤형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이동의 고단함이 완벽히 사라졌다. 한 번 승선해 짐을 풀어두면 매번 숙소를 옮기거나 짐을 쌌다가 푸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편안하게 잠들고 쉬는 동안, 배가 알아서 다음 목적지까지 데려다줬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한 공간 안에서 함께이면서도 각자의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친정 엄마와 우리 세 자매, 그리고 혈기 왕성한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하다 보니 누군가는 조용히 쉬고 싶고, 누군가는 활동적으로 놀고 싶어 하는 등 원하는 바가 매번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크루즈 안에서는 굳이 모두가 똑같은 일정을 억지로 강행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내의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찾아다니며 신나게 누볐고, 어른들은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방해받지 않는 여유로운 휴식을 누렸다. 서로의 취향과 체력을 존중하며 각자의 속도에 맞춰 여행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크루즈 가족 여행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었다.
| ▲일본 사세보항을 방문한 강창우 국제해운대리점협회 전무(오른쪽 위에서 첫 번째) 일행 |
여기에 더해진 따뜻한 배려는 이번 여행의 온기를 한층 짙게 만들어 줬다. 항만 견학 프로그램을 주관한 협회 측의 세심한 준비가 곳곳에서 빛을 발했는데, 특히 며칠간의 크루즈식이 슬슬 물려갈 때쯤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해 주신 간식 꾸러미와 아이들에게 준 선물은 정말 다정하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이런 세심한 손길과 배려가 모여 우리 가족의 특별한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완벽한 추억으로 남게 됐다.
여행의 막바지에 뜻밖의 변수가 찾아왔다. 궂은 날씨와 거센 풍랑으로 마지막 기항지였던 제주도 입항이 전면 취소된 것이다. 내심 제주 관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처음엔 아쉬움과 서운함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코스타세레나>호가 보여준 대처 방식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정 변경에 대한 사과에 그치지 않고, 모든 승객에게 100달러를 즉각 지급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합리적이고 확실한 대처 방식은 훌륭한 서비스 문화를 엿 볼 수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제주에 내리지 못한 서운함은 이 뜻밖의 100달러 덕분에 유쾌하게 상쇄되고도 남았다.
뜻하지 않게 선상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여행이란 얼마나 많은 곳을 눈에 담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머물며 얼마나 많이 웃었느냐가 훨씬 더 짙은 잔상을 남기는 법이다. 비록 예정된 기항지를 모두 밟진 못했지만, 친정 엄마와 우리 세 자매, 그리고 아이들까지 3대가 한 배를 타고 파도를 넘으며 나눈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만큼은 그 어떤 눈부신 풍경보다 깊고 단단하게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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