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ASF) 확산으로 중국 내 돈육(돼지고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해운사들의 냉동·냉장(리퍼) 컨테이너 박스 공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들어 선사들은 리퍼컨테이너 리포지셔닝(재배치)과 공급 등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즈리스트는 “갑작스러운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 증가로 가뜩이나 리퍼컨테이너 공급이 빠듯한 해운업계가 딜레마의 정점에 서있다”고 전했다. 남은 하반기에 인도되는 신조 컨테이너 또한 돼지고기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돼 공급 부족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돈육 수입 전년比 57%↑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를 강타한 ASF가 냉동컨테이너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통상 유제품, 돼지고기, 소고기, 고등어 등은 해상을 통해 수출되며,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리퍼컨테이너에 실린다. 올해 상반기 냉동컨테이너시장 물동량은 전년 대비 약 5% 증가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소비하는 중국이 지난해 ASF로 현지에서 돼지 1억마리가 사라지자 수입을 대폭 늘리며 냉동화물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돼지고기는 최근 외국산 수요가 크게 증가하며 올 1~8월 수입량은 전년 대비 57% 급증했다. 게다가 중국 중산층의 수입 규제 완화와 식습관 변화로 가금류와 소고기를 포함한 대체 수요가 늘어난 것도 물동량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냉동화물 수요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돼지고기 확대 정책을 펴고 있지만 모돈(母暾) 사육수가 이미 크게 줄어 공급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 컨설팅기업인 시버리의 로널드 벨드먼은 “이러한 추세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돼 앞으로도 리퍼컨테이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돼지열병과 더불어 농작물을 숙주로 한 전염병인 파나마병(TR4·Tropical Race 4) 발생이 선사들의 컨테이너 재배치와 수요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사들 리퍼 ‘컨’ 잇따라 신조
선사들은 올해도 냉동컨테이너 장비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 들어 머스크그룹의 컨테이너박스 제조사인 MCI(Maersk Container Industry)는 중국 동관에서 운영 중인 드라이 컨테이너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잠재 성장률과 수익률이 더 높은 리퍼컨테이너사업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폐쇄는 불과 3년 전에 문을 연 칠레 제조공장 가동 중단 이후 6개월 만에 이뤄진 결정으로 칭다오공장 만이 운영되고 있다.
MCI는 현재 리퍼컨테이너 제조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머스크그룹 관계자는 “엄청난 공급압박을 받고 있는 드라이컨테이너시장에 대한 도전적인 환경 속에서 이뤄진 것이며 동시에 리퍼 물량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파크로이트 역시 냉동컨테이너 신조에 나선다. 이 선사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된 20피트 컨테이너(TEU) 970개와 40피트 컨테이너(FEU) 1만2450개를 발주해 운송능력을 강화한다. 하파크로이트 관계자는 “총 21만TEU의 냉동박스 중에서 최첨단 10만개 이상을 처리할 수 있다”며 “그 중 일부는 운송 중 숙성과정을 늦추는 최신제어기술이 탑재돼 있어 과일과 채소의 유통 수명을 연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도 컨테이너박스 발주 선사 대열에 합류했다. 이 선사는 FEU 6000개의 최신 리퍼 컨테이너에 대한 투자를 지난달 결정했다. 이로써 ONE의 냉동컨테이너는 약 25만TEU로 확대됐다. 이 밖에 홍콩선사 OOCL 역시 최근 냉동컨테이너박스 4500개를 새롭게 도입하는 등 수익성이 높은 신선화물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국적선사인 현대상선도 올해 3월 영업물량 증가에 따른 추가 필요분을 확보하기 위해 리퍼 컨테이너박스 2580대를 발주했다.
드류리는 향후 5년간 리퍼컨테이너시장의 성장률이 4.5%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까지 전 세계 리퍼컨테이너 물동량은 1억34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리퍼컨테이너는 전체 컨테이너의 7%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컨테이너 수요는 2~3%인 반면, 리퍼컨테이너는 매년 5~6%의 높은 증가세를 시현하고 있다.
신선농산물 출하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오렌지, 약품, 분무용품, 사탕 등의 품목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어 향후 무역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엘니뇨와 같은 계절적 기후 요인에 지정학적 위험이 커진 데다 돼지열병이 발생하면서 2023년까지 리퍼 수송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선사들의 리퍼컨테이너 공급이 원활히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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