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2 10:08

글로벌 패권, 에너지 그리고 물류

기고/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성우 본부장


지난 5월 7일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15%에서 7%로 줄이는 조치를 단행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국민들의 유류비 부담을 완화해 주기 위해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15%까지 낮추었고 점진적으로 해당 세금 완화조치를 환원시키는 중이다.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국가 세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조치이나 최근 유가가 상승하는 기조에서 유류세의 환원은 국민들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이즈음 해서 국제유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 다른 요인들이 작용해서 결정되는지 모두가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가 중동산 에너지를 수입할 때 단위당 원유는 2%, 가스는 30%의 비싼 아시아 프리미엄을 주고 구매한다. 이것도 경제학 논리에 의한 것인가? 참고로 한중일 삼국은 전 세계 가스의 60%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대량 구매를 하는 주요 고객이 더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한다는 건 경제학 논리에 맞지않다. 결국 이 대목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의 결정은 경제논리로 포장된 정치공학이 숨어 있고 이면에는 글로벌 패권을 쥐기 위한 열강들, 특히 미국이 군사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물류 길목을 지키면서 상황에 따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다양한 전략전술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5년 미-사우디 간 ‘페트로-달러’ 협약을 완성하면서 걸프지역은 자국의 ‘에너지 기지’, 일본-한국-중국은 ‘상품-제조업기지’로 연결해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는 기둥을 공고히 세웠다. 미국은 자국과 동맹국에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보장받게 되고 원유 구매시 달러를 사용하게 됨으로 인해 달러의 힘을 더욱 강화해 글로벌 금융을 완전히 장악하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또한 원유 공급을 지렛대로 동맹국을 관리할 수 있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국은 연간 5000억 달러(600조원)를 투자해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걸프만, 말라카 해협, 남중국 해협 등 주요 해상 물류루트를 군사력을 통해 지켜주는 대신 중동과 동북아 3국은 미국의 국채를 사들여 그 부담을 분담하는 다양한 형태의 연결고리 정책을 펼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한편,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는 미국의 에너지와 상품기지를 기반으로 글로벌 패권을 잡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미국은 걸프라는 에너지 기지와 동북아라는 제조업 기지를 분리시켜서 성장시킨 게 아니라 중동국가들의 에너지에 동북아 제조업 기지가 의존하도록 가치사슬을 만들어 놓았고 심지어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불리한 조건으로 중동 에너지 자원에 75%를 의존하도록 했다. 동북아 3국의 입장에서는 초기에는 이러한 기형적인 에너지 수급 구조에 순응할 수 없었으나 국가 경제가 성장할수록 왜곡된 에너지 수급 구조는 삼국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중일 삼국 내부에서 당연히 문제 제기가 됐고 동북아 에너지 안전보장 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가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진행됐다. 한편, 이 무렵 지구촌 에너지 산업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세일혁명을 통한 미국의 에너지 자립이다. 미국의 에너지 자립은 중동의 전략적 가치 하락으로 연결됐다. 두번째는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재부상이다. 중국은 미국의 제조업 기지 역할을 통해 축적한 자본을 기반으로 300년 전의 번영을 목표로 성장을 주도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긴 침묵을 깨고 과거 냉전시대의 G2를 위해 유럽 중심 정책에서 아시아 중심 정책을 기반으로 북극권과 시베리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세번째는 원유 중심의 획일적인 세계 에너지 산업이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로 넘어가게 되면서 에너지 공급사슬 체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부분이다. 기 언급한 3가지 요인은 에너지 자원을 달러와 연동시켜서 글로벌 금융을 장악하고 군사력을 기반으로 해상물류거점과 루트를 확보한 미국에 큰 도전이 되고 있고 새로운 국면이 세계 질서 재편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특히 이 회오리의 중심에 우리나라가 있는 동북아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생명줄과 같다. 얼마 전 미국 나사가 제공한 인공사진에서 본 한반도의 사진이 에너지가 생명이라는 것으로 분명이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한반도에서 에너지 공급선이 끊긴 북한의 밤은 암흑 그대로였고 반면 우리나라의 밤은 불빛으로 가득했다(<그림-1> 참조). 결국 수입된 에너지가 전기로 빛을 발하고 있고 이게 국가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에너지를 수출입하기 위해서는 물류가 필요하고 물류가 결국 글로벌 에너지의 공급사슬을 책임지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수백조원대의 돈을 투자하면서 지키고 있는 요충지들은 모두 물류거점들이다.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걸프 해협, 말라카 해협 등이 해당 물류거점들이고 미군들이 주둔하거나 항공모함이 활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국이 해당 물류거점을 쥐고 있는 동안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국가들이 중국과 러시아이다. 이들은 미국과 글로벌 패권을 놓고 도전하는 국가들인데 전략적 물류거점의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자국의 국력을 외부로 확장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표도르 대제(1672~1725) 시대부터 남진을 통해 크림반도를 확보했고 이를 기반으로 흑해로 진출했다. 이후 중동지역을 통해 남진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미국은 사우디아리비아를 중심으로 걸프만의 수니파 국가들을 통해 시아파 국가인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방패막이로 지속적이 전쟁을 치루면서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왔다. 최근 러시아는 기존 유럽중심 정책을 포기하고 아시아 중심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물류루트와 천연가스(LNG)와 재생에너지로의 글로벌 에너지 구조 재편을 기반으로 글로벌 패권에 재도전을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견제를 벗어나 북극항로라는 물류루트와 극동러시아라는 물류거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에너지 물류루트를 만들어 보자는 의도이다. 한편 2010년 이후 국력에 자신을 가진 중국이 ‘일대일로’라는 국가전략을 통해 미얀마 자욱퓨항, 파키스탄 과다르항 등을 개발하면서 미국이 지키는 동남아의 말라카 해협을 우회해서 중동과 아프리카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물류거점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또한 작년 1월 발표한 빙상실크로드라는 국가 전략을 통해 러시아 협력을 통해 북극항로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주 핀란드에서 열린 북극이사회에서 마이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개발과 참여를 크게 비난한 것도 이들의 행동에 대한 미국의 일종의 견제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글로벌 패권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싶어 한다. 이는 그들의 전략적 행동에서 알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전쟁으로 초토화되고 있는 시리아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의 힘의 충돌이라 할 수 있는데 중동의 전략적 가치 하락으로 해당 전쟁도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자국의 세일가스를 기반으로 에너지 가치사슬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고 중동의 원유대신 자국 세일가스 수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이미 미국이 자국의 동남부 지역에 가스수출 항만들을 건설하고 있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북극권 국가들이 북극항로 활용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미국이 기 언급한 것처럼 올해 북극이사회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항로 개발에 대한 비난을 한 부분도 자국의 세일가스 수출에 경쟁자가 될 북극 천연가스의 물류루트를 사전에 견제하자는 취지로 풀이가 되고 있다. 미국이 남방항로 주도에서 북극항로의 주도까지 이어 나가면서 에너지 공급사슬 체계가 원유에서 천연가스 등으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물류거점과 루트를 기반으로 글로벌 패권을 이어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파악된다. <그림-2>는 미국과 열강들 사이 글로벌 물류거점과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그림으로 설명해 두었다. 이미 남방물류루트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고 새로운 변화는 러시아가 북극지역을 에너지 자원 수출을 위한 항만건설과 북극항로 개척, 중국의 러시아 북극권 항만 개발 참여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세일 수출을 위한 미국 동남부지역 에너지 수출항만 건설 등이다.

에너지 공급사슬 변화로 촉발된 글로벌 패권 경쟁이 에너지 최대 수입지역인 동북아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글로벌 에너지의 최대 소비지인 동북아는 과거 중동 의존 정책에서 벗어나 에너지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고자 준비 중에 있고 중국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실행 중에 있다. 일본 역시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격동하는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이 미흡해 보인다. 또한 이 에너지 패러다임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물류거점이나 물류루트 개발에 아직도 소극적인 것 같다. <그림-3>에서 보듯이 중국, 일본은 미국 LNG(세일가스) 수입을 최소화하면서 에너지 수급의 다양화를 노리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미 2대 수입국으로 중동에서 미국으로 바로 전환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2017년 기준 1500만 톤을 수출했는데 지금 추세라면 미국의 LNG 수출량은 2020년 7000만 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중동과 LNG 수입 장기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을 이미 계산에 두고 있고 더욱 통상압박 등을 통해 자국의 LNG 수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와 이미 손을 잡고 파이프라인(PNG)과 해상으로 수송되는 LNG를 대량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북극항로의 5대 항만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에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해당 항만들을 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역시 러시아 사할린 생산 LNG의 수입량 확대를 위해 러시아와 협상 중에 있으며, 러시아의 북극 에너지의 환적거점이 될 페블롭스키캄차트카항(캄차트카반도 소재) 개발 사업에 참여를 전제로 컨설팅을 해 주고 있다(<그림-2>참조). 모두 향후 자국 에너지 수급의 다양성 확보와 함께 시장 협상력 제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0년 이래 3차례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상업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북극지역 야말반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수송에 우리나라 조선사가 발주한 선박이 이용되고 있으나 수송에는 직접 참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북극항로를 따라 개발될 항만물류거점 개발에도 전혀 참여를 못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글로벌 패권을 우리가 논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강대국의 패권 전쟁에서 우리나라 이익을 최대화 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패권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에너지 자원의 동향을 빨리 파악하고 이에 상응하는 물류 루트와 거점을 선제적으로 개척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지경학적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에너지 물류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상응한 정부 정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권들이 들어설 때마다 국민들의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다만, 그 정책의 실효성이 문제이고 글로벌 흐름을 읽으면서 우리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교한 정책과 실현 가능한 세부계획이 필요하다. 지금의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 중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공급처 결정과 함께 에너지 공급사슬과 연결된 국제물류 관련 세부 전략과 사업들의 마련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향후 5년 이내 구축될 글로벌 에너지 공급사슬체계는 최소 30년 이상의 세계 시장의 질서를 결정할 중요한 사항이다. 그래서 정부는 한 분야에 국한된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물류, 조선, 철강, 자원개발, 금융 등으로 연결된 산업 연결고리를 잘 이해하고 관련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할 듯하다. 원유의 대체재인 천연가스에 대한 포스트 중동 관련 정책을 포괄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세일가스로 완전한 전환을 할지, 다변화를 통해 러시아 북극 천연가스와 호주 등의 다른 가스로 다변화를 할지, 그리고 에너지 수입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수송은 어떻게 하고 해당 운송선박의 건조는 어떻게 할지 중간 환적물류거점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은 어떻게 해야할지 등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서 촉발된 동인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진출과 네트워크 구축 전략을 재정립할 시점이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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