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화원(Garden of Evil)’.이번으로 98회째 영화 얘기를 쓰면서도, 장르를 따지는 건 아니지만, 옛 그리도 흔히 봤던 서부영화(Western)를 그간 한번도 다뤄 보지 않아 작심하고 어느 것을 소개할까 고르다가 보니 소위 서부활극 하면 시니어들 입에 자주 회자되는 작품들이 하두 많아 되레 선택의 갈등이 크긴 했다. 그래서 흔히 상상되는 스릴과 박력 넘치는 전통 스타일의 작품이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은 한 작품에 붓이 멈춘 게 이 영화다. 험준한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장엄함과 격렬한 스펙타클로 스릴과 서스펜스와 아기자기, 묘한 스토리로 내용 또한 그럭저럭, 1954년작 클래식을 쓰기로 하고 묵은 자료를 정리, 컴퓨터 자판을 열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심벌 종합세트 같은 명배우 게리쿠퍼(Gary Cooper)와 넘치는 박력에 미모까지 갖춘 톱스타 수잔 헤이워드(Susan Hayward)와 함께 냉소적 악역 연기의 상징, 리처드 위드마크(Richard Widmark)가 주연을 맡았으니 겉 포장이 화려해 일단 괜찮은 영화로 보이기에 무리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역시 개척기 미국의 서부를 무대로 가죽 재킷에 창 큰 모자를 쓰고 떼를 지어 말을 달리며 권총이나 라이플을 들고 총성을 울리거나 패싸움을 일삼던 사나이들이 때론 우정과 정의를 앞세워 프론티어 정신으로 상징되는 미국 문화와 역사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 웨스턴 무비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말 발굽 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트로트풍으로 유행했던 귀익은 서부 음악이나 휘파람과 함께 1950~60년대만 해도 학생이나 청장년들에게 크게 인기있는 웨스턴은 필자의 기억과 취항으로는 우선, 앨런 랫드(Alan Ladd), 진 아서(Jean Arthur), 밴 헤플린(Van Heflin)이 열연한 ‘세인(Shane)’이 젤 먼저 생각난다. 존 웨인(John Wayne)과 클래어 트레버(Claire Trevor)가 주연한 ‘역마차(Stagecoach)’,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명콤비의 ‘하이 눈(High Noon)’도 빼 놓을 수 없다. 이어 버트 랭캐스터(Burt Lancaster)와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가 주연한 ‘오 케이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 K.Corral)’와 존 웨인, 제퍼리 헌터(Jeffrey Hunter), 베라 마일스(Vera Miles)가 연기한 ‘수색자(The Searchers)’도 손꼽힌다.
또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에서 열연한 헨리 폰다(Henry Fonda)와 빅터 마추어(Victor Mature),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the Ugly)’서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엘리 월라치(Eli Wallach), 리 반 클리프(Lee Van Cliff)의 뛰어난 연기력이 마음에 들지만 예선 이름만 올리고 모두 다음으로 미뤘다. 이야기의 전개는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향하던 전직 보안관 후커(Sheriff Hooker/게리 쿠퍼)와 전문 도박사 피스크(Fiske/리처드 위드마크), 총잡이 루크 데일리(Luke Daly/카메론 미첼:Cameron Mitchell) 등 일행은 행해 도중 그들이 탄 배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불시에 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에 하선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리자 마자 곧바로 들머리 술집에 들어가 우선 목을 추긴다. 아름답고 매력적 모습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가수, 캔티나(Cantina) 역으로 분한, ‘야성녀(Untamed)’, ‘왕과 나(King and I)’,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등서 돋보였던 리타 모레노(Rita Moreno)가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미모의 한 여인이 황급히 들어와 인명 구원을 요청한다. 남편이 금광서 채광 작업 중 굉이 무너져 중상을 입은채 갇혀 목숨이 위태로우니 함께 가서 구조를 해주면 각자에게 2천달러 이상씩의 후한 사례금을 줄테니 제발 도와 달라고 연거푸 애걸복걸을 하자 돈 준다는데 거절 할 까닭이 없는 이들은 쾌히 수락한다.
그곳 산악길을 잘 알고 언어 소통에도 두움이 되는 또 한사람의 현지인(비센트 마다리아가:Vicente Madariaqa)과 함께 모두 5명이 지체없이 말고삐를 조이며 첩첩이 쌓인 험난한 산길을 달린다. 초조해 하면서도 침착하게 일행을 리드하는 매력적이고도 활발한 여인, 수잔 헤이워드가 분한 리아 풀러(Leah Fuller)는 남편이 갇혀있는 산세 가파른 험로와 준령을 앞서 간다. 밤이 깊어지면 인디언의 공격에 대비 사주경계를 하며 야영도 되풀이 한다. 우여곡절, 목적지를 향하는 끔찍한 여행 도중, 야영 한밤에 리아를 몰래 불러내 욕망을 채우려는 루크 데일리의 해프닝도, 서로를 숨기며 한 여인을 두고 벌이는 남자들의 내재된 경쟁심과 인내와 자제도 엿보이고 본능이 빚는 남자 세계가 노출되기도 한다.
한때 금광 붐으로 성시를 이뤘던 목적지에 접근하자 그 일대는 화산폭발에 인한 용암분출로 교회와 첨탑만 남고 거의 황폐한 불모의 상태로 변했다. 그래서 현지 교회 사제들이 붙인 이름이 바로 ‘악의 화원’이고 아파치들은 이곳을 성역으로 여겼다. 의식을 잃은채 하체 중상을 입고 흙더미 속에 누워 있는 리아의 남편, 존 풀러(John Fuller/휴 말로웨:Hugh Marlowe)를 본 후커는 즉시 골절로 옴싹 못하는 하체를 치료해 정신을 차리게 해준다. 그러나 의식을 찾은 남편은 금때문에 아내에게 이용당했다고 화를 내며 “당신네들도 저 여자 거미줄에 걸려 금광 노가다를 면치 못 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등 알고 보니 이들 부부는 금을 둘러싼 이해관계로 불신이 쌓여 언성을 높여 다투기도 한다.
어떤 의도에선지 리아는 자기들이 이곳을 떠나는 줄 알면 근처서 노리고 있는 인디언들이 공격을 해 올 게 틀림없으니 모든 일행은 묻은 금을 가지고 몰래 그곳을 떠나고 자기만 홀로 남아 불꽃을 올리며 그들을 속인 뒤 기회를 봐서 뒤를 따르겠다고 일행의 우선 탈출을 계속 종용하고 피스크도 남겠다고 자원한다. 그러나 부상의 몸으로 일행과 같이 겨우 말을 탔던 존은 금광을 잊지 못해 중도서 되돌아 오다 아파치들의 화살을 등에 맞고 나무 십자가를 꽂은 무덤으로 산골짜기에 묻힌다.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무릅쓰고 곳곳에서 출몰하는 인디언들과 쫓고 쫓기며 죽이고 죽으며 험준한 바위산길로 탈출하는 동안 비센트 마저 죽고 리아의 합류로 마지막에는 셋만 남는다.
피스크는 리아의 마지막 안전 귀환을 책임질 제비뽑기를 제안한다. 이기는 사람이 먼저 떠나고 지는 사람이 리아를 보호하며 끝까지 안전하게 지키는 약속이었다. 도박 전문가인 피스크는 속임수를 써 후커를 위너로 만들어 먼저 가게 하고 자기가 리아의 안전 탈출 책임을 지고 남아 목숨을 건 탈출에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은 아파치들의 파상 공세로 죽음을 맞게 된다. 운명의 순간 후커가 다가가 그의 마지막을 잠재워 배웅하는 깊은 우정을 보이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 서부 사나이들의 최후의 의리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돈 맛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총잡이들, 황금을 찾고 남편을 구조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택했던 리아와 고용인 후커가 대형 시네마스코프가 펼쳐 보이는 네바다의 황량한 평원과 장엄하게 붉은 노을로 에피로그를 장식한다. 둘만 남은 공간에서 가벼운 포옹으로 서로를 응시, 위로하고 격려한 후 라스트 선세트, 석양의 황혼 속으로 말고삐를 잡는 로맨틱한 최후의 모습은 서부영화 중 손꼽히는 이름난 라스트 신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황금과 인생의 무상을 묵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사라져가는 서부영화에 대한 감성을 일깨우는 추억어린 향수로 필자도 오래 기억하고 있다.
20세기 폭스에서 1954년 제작, 우리나라엔 필자가 부산 고교시절, ’56년에 지금은 없어진 을지로의 국도극장서 개봉했던 광고를 검색했다. 1932년 ‘야생마 메사(Wild Horse Mesa)’를 시작으로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 ‘흑장미(The Black Rose)’, 나이아가라(Niagara)’, ‘네바다 스미스(Nevada Smith)’ 등 80여편 이상을 만든 다작의 감독 ‘헨리 해서웨이(Henry Hathway)’의 작품 중 하나인 이 영화는 톱 스타 셋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50년대를 대표하는 웨스턴으로 아날로그적 서부 고전 로맨티시즘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음을 끝 글로 적는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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