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S마리타임의 달리버 고직(Dalibor Gogic) 수석연구원은 아시아-유럽간 컨테이너항로가 내년엔 유럽중앙은행이 내놓고 있는 다각적인 경기부양책을 배경으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향후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각이 많다는 점에서 그의 견해는 사뭇 주목된다.
해운거래정보센터(MEIC)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고직 연구원은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벌크선의 경우 시황 부진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높은 해체량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탱크선 시장은 저유가를 기반으로 수요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파나마운하 확장과 관련해선 탱크선과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운임과 비용, 선박 대형화 측면에서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한국 해운기업들의 사업 분야가 벌크선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며 탱크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고직 수석연구원과의 일문일답.
Q. 제2수에즈운하가 최근 개통했으며, 파나마운하 확장공사도 내년 준공할 예정이다. 잇따른 운하 확장이 해운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수에즈운하의 경우 확장에 따른 변화 폭이 크지 않겠지만 파나마운하 확장은 큰 영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가스 수송시장을 보면, 멕시코만(미국 동안)에서 극동 지역으로 가는 운송노선에서 VLGC(초대형가스운반선)가 수익 등의 측면에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도 같은 노선에서 시간과 비용이 모두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2017년이나 2018년 전엔 이 같은 변화가 가시화되진 않을 것 같다.
원유운반선의 경우 수에즈막스 선박이 파나마운하를 지나는 게 가능해진다. 당분간은 화물을 가득 싣고 가지는 못하겠지만 미국 동안에서 미 서안이나 남미 서안의 정유소로 향하는 해상 노선이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컨테이너 시장에선 캐스케이딩(선박전환배치)의 영향으로 북미 및 남미 시장에서 대형 선박이 늘어날 전망이다.
Q. 건화물선 시장이 어렵다. 향후 전망을 듣고싶다.
요즘 시장 참가자들이 건화물선 시장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운임 붕괴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철광석을 보면 올해 상반기에 호주와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수송되는 해상물동량은 소폭 늘어나는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엔 일시적으로 중국의 철강 생산량이 고점을 기록하면서 수프라막스 운임을 떠받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반덤핑 움직임들이 있기에 중국의 철강 수출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중국은 남은 철강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고민하게 될 거다.
석탄의 악화된 여건은 파나막스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2년 연속 중국 석탄 수입량이 줄어들었다. 올해 상반기엔 중국 석탄 소비가 3.5% 감소했다. 특히 중국의 열연탄(thermal coal) 수입은 40%, 야금용 석탄 (metallurgical coal)은 30%나 감소했다. 중국 연안 지역의 원자력발전이나 수력발전이 이유로 보인다. 향후에도 중국정부의 이산화탄소(CO₂) 저감 정책과 맞물려 석탄은 침체가 계속 될 걸로 본다.
신조선 발주량이 10월1일 기준으로 전체 선복량의 16%에 달할만큼 많다는 점도 부정적이다. 케이프나 파나막스시장은 16%, 수프라나 울트라막스는 25%에 이른다.
내년에도 건화물선 전망은 불투명하다. 수요가 강세를 띨 선형이 별로 안 보인다. 희망을 갖고 지켜봐왔던 인도의 석탄 수요도 자국 생산이 가시화될 전망이어서 결론적으로 (건화물선은) 내년에도 힘든 한 해를 보내리라 생각한다. 특히 수프라막스 울트라막스는 내년에 가장 힘든 상황을 맞을 걸로 본다. 시장을 떠받치고 있던 중국 수출이 줄어들면서 하락 압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프나 수프라막스는 선령이 젊어서 해체량도 많지 않을 것 같다.
Q. 벌크선사들이 최근의 시장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내 의견은 선주들이 새로운 신조 발주를 자제해야 한다는 거다. 탱크선 시장은 2022~2023년 인도 예정인 신조선 발주가 줄어 향후 전망이 밝은 편이다. 반면 건화물선 선주들은 공급과잉이 심각한 상황에서 신조선 발주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Q. 벌크선 폐선량이 크게 늘었다. 시황 회복에 긍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을까?
탱크선이나 건화물선 선주들의 입장에서 해체가 늘어나는 건 공급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올해 케이프사이즈의 신조 발주량과 해체량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결과 8월과 9월엔 물동량이 상승하면서 운임도 일시적이지만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길게 보면 더 많은 선박해체가 일어나야 시장의 균형도 이뤄질 거라 본다. 내년 신조선 인도량이 많다. 이런 상황이라면 올해 3000만t(이하 재화중량톤), 내년에는 3000만t 이상의 선박이 폐선돼야 한다. 파나막스에선 선령이 높아 해체량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Q. 탱크선 시장은 건화물선에 비해 나은 시황을 보이고 있다. 향후 시장추이를 어떻게 보나?
탱크선 시장이 긍정적인 이유는 유가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올해 석유 비축량 규모가 늘고 있고 정유시장 가동률도 높은 편이다. 내년에도 저유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중국 등의 극동 지역에서 수요가 유지될 것 으로 판단된다. 이른바 중국 위기는 탱크선 시장에선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다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지속된 운임 강세로 내년 신조선 인도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전체 탱크선대의 8%가 내년에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탱크선 시장의 수익성은 양호할 걸로 본다.
Q. 최근의 저유가 기조가 수요 측면에서 해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저유가는 유조선 시장엔 당연히 좋은 요인이 될 거다.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에서도 연료비가 운항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낮은 유가는 긍정적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저유가로 해운이 나쁜 영향을 받진 않을 거다. 장기적으로 봐도 우리가 직면한 공급과잉이 저유가를 비난할 상황은 아니다. 석탄의 교역량이 줄어드는 것도 저유가 때문이라기보다 환경 문제에 따른 대체에너지 수요 확산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Q. 컨테이너선 시장에선 극초대형선(ULCS) 공급이 크게 늘고 있다.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올해 굉장히 많은 양의 ULCS 발주가 있었다. 10월까지 200만TEU의 선박이 발주됐으며, 이중 절반 정도가 1만8000TEU급 이상의 선박이었다.
거시적으로 보면 최근의 미국 경제 회복이 그 배경이다. 올해 미국 GDP(국내총생산)가 2.5% 정도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동차나 가전제품, 주택 설비 등이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내년에도 미국 수요는 강세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신차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주택 건설 또는 매매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미국달러가 아시아의 엔화나 위안화보다 강세를 띠어 (수요 강세) 추세가 이어질 걸로 본다.
유럽항로는 올해 하락했지만 내년에 다시 반등할 것으로 기대한다. 유럽중앙은행이 여러 경제부양책을 내놓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또 유로화도 내년 중반 이후 엔이나 위안화에 비해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본다. 다만 수요가 공급에 도달할 만큼 성장세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Q. 유망한 항로 또는 시장이 있다면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현재의 유가나 정유 수요를 볼 때 LR2(10만t급 안팎)급 탱크선이 내년이나 내후년까지 높은 수익을 낼 것으로 생각한다. LNG선은 뉴파나막스를 이용해 호주에서 극동으로 수송되는 노선에서 호조를 띨 것으로 보이며 2018년 이후엔 미동안-극동 노선이 좀 더 유망할 것으로 본다.
VLCC(초대형유조선) 시장의 경우 전 세계 수요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시장이 향후 몇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
Q. 한국 해운시장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한국의 많은 시장 참가자들이 건화물선 시장의 심각한 부진에 많은 우려를 갖고 있는 걸 알게 됐다. 한국 조선기업들이 건조하는 선박 유형이 상당수 벌크이고 선주들이 많이 갖고 있는 선박도 벌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상황을 같이 보면 건화물선의 미래는 많이 불투명하다.
반면 탱크선은 좋은 편이어서 SK해운 등은 비교적 좋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벌크 쪽에 치중하고 있는데, 미래를 위해선 사업다각화에 신경 써야 한다. 현대상선은 예외적으로 벌크 부문을 축소하는 시도를 하고 있지 않나? IHS의 신조선 발주 데이터에 따르면 전통적인 벌크에서 가스선이나 LNG선 유조선 쪽으로 전환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선사들도 그런 추세를 눈 여겨 보면서 향후 시황 사이클을 준비하고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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